괌에 도착했다. 바누아투에서 카드도 잃어버린터라 이제는 정말로 돈이 없다. 도착한 시간도 시련을 가중시키려는 듯 밤에 도착했다. 밤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히치하이킹이라도 하려고 하면 밤에는 차를 잘 세워주지 않는다. ‘밤’이라는 어두움이 주는 ‘만약’은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중국에서 발발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제 한국또한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시점이다. 공항안은 한산하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가 오늘의 마지막 때문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괌은 대중교통비도 비싸다. 특히 공항부터 도시로 나가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무조건 택시를 타야하는데 택시는 바가지가 굉장히 심하다.
괌은 정말 마지막 여정이기에, 택시비를 두 번 쓴다고 생각하면 식사를 못할 수도 있다. 지금은 잠잘 돈마저 없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히치하이킹에 도전해보기로 하고 공항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히치하이킹에 팁이 있다면, 차가 어쩔 수 없이 멈추어야하는 곳에서 하는 것이 좋다. 달려야하는 차도에서 히치하이킹 하는 사람을 태워주기위해 멈추는 것은 뒤에 함께 달려오는 차도 같이 멈추게끔 하는 민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가 멈출 수 있는 충분한 공간, 혹은 멈춰야만 하는 곳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이 팁이다. 도시로 가기위해 큰 도로로 합류해야하는 합류차선 앞 횡단보도에 서서 내려가는 차를 기다렸다. 승용차, 경차. 스타렉스, 등등 여러 차량을 시도해봤지만 실패다. 그러다가 선글라스를 낀 터프한 트럭기사가 내 앞에 내려섰을 때 창문을 바라보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위이이이잉
창문이 내려가더니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어 주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나이스 카! 나이스 선글라스!”
“고마워요”
“저 도시에 가야하는데 태워주실 수 있나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그냥 도시요, 도시 아무데나 갑니다. 목적지는 상관없어요.”
“음.. 그러면 가는길에 사람들이 많이 서는곳에 내려드릴게요 타세요”
허락받았다. 트럭에 오르는일은 어렵지 않다.
“영차~!”
잡을 곳도 마땅치 않고 바람이 세서 트럭 트렁크 앞쪽으로 바싹 붙어앉았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기 위해서 앞쪽으로 붙어서 트렁크에 가림막을 치는 가림막 지지대를 잡고 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대한 호텔들이 조금 보였다. 괌은 신혼여행지로 유명해서 그렇게 좋은 숙소가 아님에도 숙박비는 굉장히 비싸다. 그리고 그런 곳에 머물 돈이 없으며, 이곳엔 호스텔이나 도미토리도 없다. 철저히 관광지기 때문이다. 이 고마운 분이 내려준 곳은 K mart. 우리나라로 치면 코스트코급 쯤 되는 거대마트다.
“레미 제가 모셔다 드릴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에요. 안전한 여행 되시길 바래요.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가 생각나네요.”
“고마워요. 같이 사진한번 찍을까요? 괌에서 아들로 기억할게요. 만약 제가 한국에 박물관을 만들게 된다면 함께 찍은 사진이 제 박물관에 걸려있을거에요. 한국에 혹시 오게 된다면 꼭 연락해주세요.”
한국에 오면 연락해줄 것을 당부하고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 이력을 찬찬히 확인하던 그가 말했다.
“레미 대단한 분이었네요!?”
“아닙니다. 정말 태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다리 떨리면 늦고 가슴 떨릴 때 떠나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젊었을 땐 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여행이 있듯이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받는 대우와 여행의 스타일도 있는 것이다. 보기에는 이 거대한 마트에는 한국인들도 외국인들도 많이 온다. 수백대는 거뜬히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 주차장의 규모 괌은 완전한 관광도시화가 되어있었다. 마치 계획도시처럼 큼직큼직하게 지어져있는 건물들 쇼핑몰들의 규모가 신기했다. 괌에도 오지가 있을까? 작은 섬의 규모에 그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하지만 미지의 세계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내린 곳에서 이제부터 도미토리나 호스텔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관광지도에는 호스텔이나 도미토리에 대한 내용이 없다. 사람들에게 묻기로 하고 주차장에서 아무나 잡고 물었다. 하지만 그들도 호스텔이나 도미토리에 대한 정보는 몰랐고 마트 세큐리티와 직원들에게 물어도 알 수가 없었다. 호스텔과 도미토리가 없는 나라라니.. 이유가 있을거라는 생각과 함께 저 멀리 한국 소녀들이 보였다. 마트로 들어가는 발길을 잠시 세우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괌에 호스텔이나 도미토리를 찾고있어요”
“아.. 안녕하세요. 아저씨. 잠시만요 한번 찾아봐 드릴게요.”
한동안 서서 검색을 하던 그녀들은 시간이 5분쯤 지나자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아저씨, 이 나라에는 호스텔이나 백팩커스같은 숙소가 없나봐요. 아무리 검색해도 안나오네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게 여기까지라서 죄송해요”
요즘은 외국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는 것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외국에 온 느낌이 안나 실망스럽다며 한국인이 안가는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들도 점점 많아진다고 했다. 나처럼 이렇게 갑자기 발걸음을 세워서 귀한 여행지의 시간을 뺏는 일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런 기억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 얼른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호스텔이나 도미토리가 없는 나라라니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까 차를 타고 건너오며 보였던 호텔 등의 큰 건물들이 있는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걸어가는데 뒤로 운동복을 입고 빠르게 걸어오고있는 동양인여성이 보였다. 머리띠를 하고 말총머리를 질끈 맨 머리에 분홍색 기능티에 검은색 긴바지를 입은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걷고있었다. 이렇게 야심한 밤에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면 이상하게 생각되리라는 생각에 아까 챙겨둔 지도를 일부러 요란스럽게 꺼내며 고민이 많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넌 그녀가 나에게 시선을 잠시라도 주길 기다렸다가 곁눈질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느껴지자 나도 고개를 들었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금방 고개를 돌렸고 난감한 내 표정을 보았을 그녀는 나를 신경쓰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녀를 불렀다.
“익스큐즈미!”
이어폰을 끼고있었지만 신경을 쓰고 있던 덕분인지 내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 내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일본사람같았다.
“이 주변에 호스텔이나 도미토리, 게스트하우스 같은곳을 찾고있어요.”
더듬더듬 영어로 이야기하려는 내게 그녀는 서툰 한국어로 응대해주었다
“싼 숙소를 찾으시면 퍼시픽스타에 오션뷰라운지로 가세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바로 앞에 큰 호텔을 가르켰다.
“저는 돈이 조금밖에 없어요”
“저기 지하에 잠시 쉴 수 있는 곳이 있어요.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요.”
“아 고맙습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천만에요”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이야기하느라 못걸은 거리를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조깅을 시작했고 금방 멀어졌다. 그렇게 퍼시픽스타 호텔로 가는길 마주 걸어오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 호텔이 한국사람들이 많이 묵는 곳인 것 같았다. 그렇게 찜질방에 도착했고, 찜질방 사장님은 놀랍게도 젊은 여성분이었다. 그녀는 미혼이었고 굉장히 살가웠다. 미국에 사는 우리 막내딸 같은 이미지였는데, 아르바이트 하는 한국인 직원과 이야기하는 모습이 꼭 엄마와 딸 같았다
“얼마인가요?”
“15달러에요”
“저는 씻고 4시간만 있다가 나갈건데 할인은 안되나요?”
“네 원래 얼마 안하는 곳이다 보니 할인같은건 없어요. 저기 저거 수건들고가고 여자샤워장 정리좀 해두고 나오면 난 퇴근할게.”
흥정은 사절이라는 듯 이야기하며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일을 할당하는 모습이 친해보였다.
“가족인가요?”
“왜요? 제가 엄마같나요?”
가족이냐는 질문에 도끼눈을 뜨고 본인이 엄마같냐고 묻는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여자는 나이가 적든 많든 평생 꽃이어야 할 존재. 꽃이라고 이뻐라 하면 꽃 아닌게 없고 들풀이라고 밟으면 풀 아닌게 없다는 말처럼 지나가는 한번의 장난끼로 딸같은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요 자매같아서 물어봤습니다”
“하하 아니요~ 나이차이가 얼마나 많이 나는데요~ 아 저기 저쪽으로 들어가시면 되요. 가방은 여기 홀에서 보관해드릴 수 있으니 필요한것만 챙기시고 가방은 맡기고 들어가셔도 괜찮아요.”
한결 친절해진 그녀의 말투에 가족들이 그리워졌고 괜히 코끝이 시큰해지는 느낌에 고맙다는 인사만 남기고 남자 샤워장에 들어갔다. 그렇게 씻고 입고있던 옷은 손빨래를 하고 깨끗하게 빨아온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카운터로 갔다. 예의 그 아르바이트 직원이 막내딸 같은 사장이 있던 자리에 앉아있었고 조금은 졸린표정이어서 미안했지만 할말은 해야했다.
“제가 여기 처음이고 가진돈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내일 어떻게 다녀야 할지 조금 막막한데 시티투어 버스 같은게 있다면 하루종일 그것만 타고 돌까 해요.”
“여기는 버스도 비싸서 운전하실 수 있으시면 차를 렌트하시는게 훨씬 경제적이실 거에요. 그래도 버스가 좋으시면 내일 이 바로 옆에 호텔 1층에 여행사가 있으니 거기서 물어보시면 되어요.”
버스표도 관광용 버스표를 사려면 여행사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면 렌트비는 좀 저렴한가요?”
“차에 따라 완전 다른데 제가 듣기로는 넘버원 렌트카라는 곳이 좋은데 찾기가 어려운 위치에 있다고 들었는데 설명한번 해드릴까요?”
"네 부탁해요”
그녀가 내가 가지고 있는 관광지도에 현재위치와 생각하는 저렴한 렌트카샵을 소개해주었다. 내일 일정이 정해졌다. 그녀가 소개해준 곳도 가보되 발품을 팔아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잠을 청하러 들어갔고 커다란 홀이 하나 있었는데 직사각형처럼 길쭉한 홀이 있었다. 내일을 위해 캠코더를 충전하려고 하는데 여행의 막바지일수록 더 조심해야한다는 생각에 베게 커버 안에 카메라를 넣고 베게를 끌어안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