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1일

레저/여행

쿡아일랜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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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아일랜드의 수도인 아바루아가 있는 라로통가섬, 이 외에도 각각의 언어가 다른 열 몇 개의 섬이 있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나이지리아도 그렇다. 수백개의 부족이 서로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영역을 중요시하고 영역침범이 곧 전쟁으로 일어나는 일도 빈번한 것이다. 문화란 공유가 되고 이해가 되면 친구가 되지만 이해할 수 없고 혐오스러우면 ‘적’이 되는 것이다.

버스로 섬을 한바퀴 돌고 다시 수도 아바루아로 돌아왔다. 센트럴에서 음악을 하는 곳이 있는지 찾아다녀봐야겠다는 생각에 어제 밤 리조트에 잠시 들렸을 때 받은 관광지도를 펼쳤고, 음악을 하는 곳 등은 안보이고 산호가 다칠까봐 배도 못들어오게 할 정도로 많은 아름다운 산호를 보며 스노클링을 즐기고 마사지를 하는 등의 투어상품 등만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럴 때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귀를 열고 눈을 부릅뜨고 코를 벌렁거리며 다니는 것이다.

냄새와 소리 격한 흔들림이 있는 곳에 찾아가면 된다. 날은 덥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였다. 자외선도 강하지 않은 것 같고 사람들도 여유로워보인다. 너무 좋은 날씨구나 하며 탄복하던 중 이스라엘 깃발이 하늘색 차에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이스라엘!’

나에게 이스라엘은 정말 특별하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이스라엘 키부츠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던 것처럼 세계를 이끄는 유대인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나면 ‘다름’을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많이 배우게 된다. 차에 꽂혀있는 이스라엘기가 좀 특이했다.

보통은 차의 본넷 위쪽 혹은 앞쪽 모서리 등에 다는 반면 이깃대는 운전석 옆 문짝에 달려있었다. 문짝에 깃발이 달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가까이 깃발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차 주인이 언제올지는 모르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으로 차주의 이미지를 그려보았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을 것인가 로 말이다.

‘저 사람은 마르고 키가크네 생긴건동남아시아의 모습이지만 중동국가의 피가 있을 수 있겠다’

‘저 모녀는 참 보기 좋구나, 가정교육을 잘 시킨 것 같은데 저 모녀일까?’

‘길에 걸어가면서 먹는 모습이지만 저 종이가방을 쓰레기통으로 쓰는구나. 깔끔한 것 보니 잘 배운 사람이네 저사람일까?’

사람의 좋은 모습이 보이면 ‘저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이미지라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이미지, 수십 수만명의 유태인들이 민족의 이미지를 그렇게 가꾸어 온 것이다.

그러던 중 머리에 꽃을 두르고 흰머리가 희끗한 할머니인지 아주머니 인지 나이분간이 어려운 분이 마트에서 장을 봐오며 이쪽을 향해 오고있었다. 마트부터 주차장까지 오는 그 짧은 시간에 몇 안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아는척을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물론 섬이 작고 덩달아 인구도 작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인사를 하는 태도가 공경보다 높은 존경의 몸가짐 같은 느낌이다.

표정이 밝고 걸음걸이가 분명한 아주머니는 분명 예사사람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걸어오는 방향이 이스라엘 기가 있는 이 하늘색 차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지척까지 다가와서 나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나와 차를 번갈아가며 보다가 먼저 인사를 걸어왔다.
“Hi”
“안녕하세요! 저는 레미입니다 한국에서 왔어요. 혹시 이 차 주인되십니까?”
“네 반가워요. 이 차가 제 차 맞습니다 무슨일이시죠?”
“이스라엘 기가 있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저는 이스라엘을 사랑합니다. 특히 이스라엘 키부츠를요”
이스라엘 기를 보고 자신을 기다렸다는게 그녀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한모양이다.
“제 손주녀석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되었는데, 손주가 청소년기를 이스라엘에서 보냈어요. 제 아들이 어렵게 기회를 만들어 손주를 이스라엘로 보냈고 손주는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살고있어요. 전에 왔을 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배움을 얻고 있는지, 또 이스라엘에서 얼마나 성장하고있는지를 말해주며, 할머니도 이스라엘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면서 이 깃발을 줬어요.
“와 재밌네요. 키부츠는 무엇인지 아시나요?”
“키부츠는 잘 모르겠어요”
“이스라엘에 있는 집단 농장이에요. 이스라엘이 땅이없어 방황할 때 키부츠라는 마을 공동체로 서로 월급도 없이 봉사하며 함께 발전하며 만들었던 건데, 그 덕분에 이스라엘이 다시 토지를 찾고 유목생활에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근간이 된 곳입니다. 전 세계 47개국 대부분 유태인들의 자제들이 그 이념과 역사를 배우러 봉사활동을 오고있는 곳이죠. 한국에서 제가 이 키부츠라는 봉사활동을 학생들에게 소개해 많은 이들을 이스라엘로 보냈어요. 그리고 그들은 지금 글로벌리더로 성장하고있습니다.”
“오 레미! 정말 멋진 일을 하시네요. 미리 알았으면 저희 손주한테도 이야기를 해줘보았을 텐데,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이미 알고있을 수도 있겠네요.”
키부츠에 대한 설명에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치던 데비가 소녀처럼 웃으며 말했다.
“우리집에 가서 커피라도 한잔 하실래요?”
“좋죠”
그렇게 열려진 파란 차에 몸을 실었고 마을에서 외곽쪽에 다다라서 섬 중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5분쯤 올라갔을까? 차가 멈춘 그곳에는 넓은 마당의 테라스가 아름다운 분홍색 집이 있었다. 마당에 차를 세우고 성큼성큼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레미 저는 예전에 선생님이었어요. 제가 섬 구경을 조금 시켜드릴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지요.” 인연이라는 것은 이렇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
“자 그러면 가시죠 가는동안 키부츠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시면 좋겠어요”
“아 키부츠요?

제가 영어실력이 조금 부족해서 제가 한국에서 했던 강의중에 전세계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했던강의가 있어요. 여기서 키부츠 부분을
보여드릴게요”
키부츠에 대해 궁금해하던 그녀에게 키부츠에 대한 이야기를 영어로 전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부산 광안리에서 했던 전세계 10개국 청소년들에게 통역사와 함께 강의를 했던 영상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쯤 키부츠의 7가지 장점 중 3가지정도는 볼 수 있었다.

해외체험은 필수인 이 시대에 영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만들기도 좋은 곳, 스페인어 권 국가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그리고 120%의 영어를만들 수 있는 곳으로 소개하는 부분까지였다. 이제 도착했기에 차에서 내리느라 영상은 잠시 멈추었다. 그때 데비가 물었다.
“레미 영어가100%면 100%지 20%는 뭔가요?”
“20%가 왜 들어간다고 생각하십니까?”
“음.. 그만큼 빨리 영어가 는다는 말일까요?”
“미국 52개주의 사람들이 만나면 사투리 때문에 서로 다른 영어가 생소해 못알아들을 때가 있습니다. 아랍계 국가들은 또 다르구요. 키부츠에는 전 세계 46개국 아이들이 오니까 그 생소한 영어를 미리 체험하고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것들을 봤을 때 어학연수나워킹홀리데이 같은 것들보다 더좋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긴어딘가요?”
도착한 곳은 운동장처럼 펼쳐진 너른 공간에 금색 현판이 간판으로 걸려있고 SCHOOL이라고 적혀있었다.
“저는 이곳 쿡 아일랜드에서 선생님으로 40년을 살았습니다. 섬이 작다보니 정식 학교라고 할 만한 곳은 두 개가 있는데 저는 그 두곳 모두에서 근무를 했었어요. 그래서 섬에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인연이 있습니다. 학생의 부모 혹은 학생으로 만났었는데 시간이 많이지나서 지금은 그 학생들이 또 부모가되어 아이들을 제게 데리고 오기도 했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덧 성큼 지나가버린 세월뒤로 수 많은 제자만 남긴채 저는 작년에 정년퇴직을 선언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40년 중 20년의 청춘을 함께 한 곳이에요. 말을 하면서 그녀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져있었다. 지금은 방학이라서 학생들을 볼 수 없어요. 그래도 한번 둘러보시겠어요?”
“쿡아일랜드 학교는 어떤게 다른지궁금하네요.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시지요”
운동장에는 거대한 나무가 누워있는데, 누운나무 답지 않게 싱그러움이 가득한 모습이 신기하다.
“그 나무는 아이들이 놀이터처럼 타고 놀고 잠도자고 하는 공간이에요. 아이들의 온기 때문인지 건강하게 자라기 힘든 상황인데도 싱그러움이 있어요”
“그렇군요.”
내가 보는 것과 내가 궁금해 하는 것들을 묻기도 전에 말을 해주는 모습이 고맙다. 나는 캠코더로 모든 것을 메모한다. 상대방이 하는 말도 캠코더에 담는다. 이렇게 누군가 통역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일단 아는척을 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이때 했던 대화들을 다시한번 찬찬히 들으며 해석도 해보아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외국어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현지인들은 대부분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설명을 해줘서 눈치로도 대부분 알아들을 수가 있다. 그리고 몇몇개의 박물관을 함께 가보았다.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작가의집 같은 느낌이었는데, 작가의 집에서 자신이 만든 작품, 그린 그림들을 바로 판매할 수 있게 자신이 직접 값어치를 매기고 판매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거실이 바로 상점이 되는 것, 예컨대 문화와 함께 호흡하며 더욱 깊어지는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60평은 될법한 공간은 두 개의 방으로 분리되어있었는데 옆방으로 가려면 입장료를 지불하고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하는 특별한 구조였다. 자신의 작품에도 가치를 차별화해 두는 것이다. 이 너머 방에는 판매는 하지않는 작품들이 있다고 한다. 호기심 에 8뉴 질 랜 드 달 러NZD(한 화 약6500원)정도에 들어가보았다.

방이 마치 외국 전래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느낌으로 작품들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깃들어 있지만, 마치 동화의 한페이지를 열어본 느낌이다. 집을 이렇게 꾸밀 생각을 했을까? 먼 옛날 쿡아일랜드에 쿡선장이 이 섬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과 그때 원시인 같았던 부족들을 형상화해두었고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덩굴가지가 타고 올라와 방안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광경을 그대로 방치해 자연과 작품이 하나로 어울린 듯한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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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827일 제1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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