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쿡이 처음 발견해 그의 이름을 딴 쿡아일랜드라는 이름의 국가가 있다. 15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쿡 아일랜드는 남태평양에서도 오지(奧地)에 포함되는 곳이다. 또 재미있는건 한번도 안와본 사람은 너무 많지만 한번 온사람은 계속 오게되는 국가라서 국가 수입의 60%는 관광수입인 재미있는 나라다.
뉴질랜드에서 쿡아일랜드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인상깊다. 체격은 있는 편이지만 커보이지 않고 날쌔고 일머리가 좋을 것같은 인상이다. 이번 여행에 처음으로 비행기에서 와인을 주문해 먹는 여자를 만났다. 책을 읽으며 와인을 마시던 그녀는 어떻게 가져왔는지 작은 크로스백에서 치즈를 꺼내었다. 친근하게 말을 걸 구실을 만들고 싶은데 언어가 뛰어나지 않으니, 대화의 소재를 많이 만들어 두는게 좋다.
그녀의 사소한 습관하나도 빼놓지 않고 눈에 담았다. 책을 읽을 때 눈동자만 움직이는지 고개도 같이 움직이는지, 휴대폰은 어떤기종을 쓰는지, 30문장 정도의 질문이 생각나면 그때 대화를 시작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부족한 언어에도 호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사실 언어까지도 필요없다.
“Oh! Samsung!”
“yes. samsung mobile is so wonderful
I got a this mobile ~~~~~~~”
휴대폰을 가르키며 삼성? 이냐는 한마디에 신이난 여자는 삼성폰에 대한 칭찬과 이걸 어떻게 얻었는지까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말해준다.
오세아니아 사람들 특유의 친절함과 환대의 마인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뒤로는 일사천리다. 내가 바로 그 삼성이있는 대한민국사람이고 여행작가와 오지탐험을 하는 방송인이라는 것을 말하며 냉큼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엘살바도르 명예영사라는 점, 한국합창조직위원회의 위원장 등 민간외교관으로서의 나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소개하며 공통점을 만들어갔다.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다. 상대방의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눈치껏 알아들으며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나에 대해 정보를 준다. 어느순간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 주디는 뉴질랜드 은행의 인정받는 간부였다.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지내지만, 홀로지내는 시간을 결코 외로워하지 않는 기러기 엄마였다.
쿡아일랜드가 원래 고향이고 부모님이 계셔서 연말을 다 같이 보내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했다. 조금은 바라는 것도 있다. 이 내용을 책에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입국할 때 쓰는 카드에 머물 호텔에 대한 정보를 예약하지 않은 채로 쓴다. 미국이나 위험국가 등은 실제로 호텔 부킹내역까지 있어야 입국시켜주지만 이렇게 작은 나라는 호텔자체가 몇 개 없기 때문에 비싼호텔을 예약했다고 해두면 두말할 것 없이 프리패스다.
그말인 즉, 나는 오늘 잘 곳이없다. 그녀와 친해지는 이유도 가능하면 하룻밤 머물 수 있으면 고마울 것 같기 때문이다. 안돼도 여행자들의 쉼터 도미토리가 있기에 걱정없다. 요즘은 아프리카에도 도미토리가 있기에 걱정도 놓는다. 꼭 도미토리가 아니라도 민가 아무곳이나 문을 두드리고 재워달라는 말을 함에 있어 스스럼이 없다. 물론 떠나는 날에는 주변 도미토리 시세에 맞추어 대가를 지불한다. 그들은 원래 숙박업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선행에 대한 보답이 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되는 셈이다.
그녀는 쿡아일랜드에 도착하면 자신의 남편이 있는 집으로 간다고 했다. 쿡아일랜드에서 동쪽으로 차를타고 30분가면 있는 선착장에서 또 배를타고 2시간을 간다고 했다. 1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는 쿡아일랜드는, 이곳 공항이 있는 라로통가부터 동서남북으로 포진해있다. 그녀는 섬이름은 말해주지 않고 숙소가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흘린내 의중이 재워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숨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쿡아일랜드에 처음인 내가 안되보이긴 했는지 타운에 내려다 준다고 했다.
“타운이요?” “쿡 아일랜드의 수도는 북쪽 타운,아바루아라고 해요. 지금 우리가 내리는 공항이 바로 아바루아의 영역이지만 도심지까지는 거리가 있어요. 차타고 20분 정도만 가면 타운이 나와요. 찾으려고하는 도미토리나 숙소도 대부분 그곳에 많으니 가는길에 내려드릴게요.”“정말 감사해요 주디” 그렇게 그녀는 독서에 빠지고 와인을 음미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지난 일정들을 정리하기 위해 수첩을 펼쳤고 빼곡한 수첩에 또 무엇을 적는 것을보며 주디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일단 메모를 먼저 하는게 우선이었다. 메모와 기록을 하다보니 벌써 비행기가 내려설 때가 되었고 주디가 물었다.
“수첩에 뭘 그렇게 빼곡이 적어두는 거에요?”
“아 이거요? 일기이면서 제 소감과 현지인들과 만나보니 파악하게 되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교류하기 위한 연습을 하는 겁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언어를 잘 못하다보니 계속 공부해야하거든요.”
“그거 참 대단하네요. 이름이 뭐라고 했죠?”
“레미에요 도레미~ 도레미파솔라시도~ 에 그 레미”
수첩에 메모하고 공부하는 나를 보며 이름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름을 다시 물어왔다. 창밖을보자 어둠이 드리워진 섬에 가정집 불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얀 길이 섬북쪽 테두리에 모자를 씌운 듯 밝은 길이 보였다. 쿡아일랜드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입국 절차까지 밟고나니 새벽 1시가 다 되어간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도 공항 보안 요원들의 눈빛엔 총기가 있고 입가엔 미소가 가득하다.
유창한 언어를 구하지 못하면서도 오지탐험만 다니는 내가 갑자기 던져졌을 때 가장 취약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낮에는 천사들의 도시도 밤에는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처음오는 사람은 검문검색이 심했고 오래걸린 반면, 방문한 적 있는 사람들은 거의 하이파이브하고 지나가는 수준으로 빠르게 나갔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모르는지 보안요원이 이것저것 질문을 했는데, 잘 못알아듣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게 몇번을 되묻고 같은 대답을 반복하고서야 나갈 수 있었는데 내 뒤에있던 사람들이 다른 줄로 몇사람 남지 않은 상태였다. 공항 로비는 놀랍게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내 앞에 사람들은 나오면서 누군가한테 손을 흔들고 그 사람은 목에 화관을 걸어줬다. 이 야심한 시간에 주변이 환해질 만큼 환한 표정으로 맞이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아무도 아는 척 할 수가 없었다.
알고보니 처음오는 사람들을 직접태우러 온 호텔이나 리조트의 직원들이 이름을 피켓으로 들고 그 피켓을 알아본 사람들이 손을 들면 화관을 씌우고 차로 안내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환호가 넘치는 인파속에서 빠져나와 주디를 찾아보았는데, 내가 너무 오래걸렸는지 저 멀리 다마스같이 생긴 차량에 짐을 싣고 차에 탑승하는 모습이보였다. 줄 앞쪽에 있던 내가 너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해서 떠나는 모양이었다.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그녀의 이름을 소리치며 뛰어갔지만, 매정하게도 차는 그대로 훌쩍 떠나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내 여정은 탄탄대로면 오히려 이상한 여행이다. 항상 부딪히고 멍들며 다니지만, 몸으로 배운 경험은 나중에 귀히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은 내려두었다. 목숨걸고 다니기에 사람들이 생각도 없이 다니는 줄로만 알 때가 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지 않는 대신 매 순간순간 직관과 통찰로 모든 것을 해쳐 나가는 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번에도 나의 직관과 감각을 믿어보기로 했다. 일단 시내까지 가야했다.
인터넷도 안되는 상황 다행히 주디와 대화하며 정보는 얻을 수 있었고 그 정보를 시각화 할 수 있는 지도도, 렌터카를 홍보하는 관광안내데스크에서 얻을 수 있었다. 방향은 잡았고 이제 이 호텔의 사람들을.. 응? 그 많던 인파들은 거의가 사라졌고 몇몇 사람들만 곧 차량으로 이동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주변에 경찰이나 공항 직원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난 다음 방금 확인한 타운에 있는 리조트에 위치한 호텔의 이름을 가슴에 명찰로 달고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는 사실 도미토리를 찾고있어요.
그만큼 저렴한 숙소를 찾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렴한가요? 그리고 당일 숙박도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가격은 일단 가서 이야기하시지요. 1인실도 있기 때문에 걱정마세요. 자 그럼 같이 타고 출발할게요”
다음 호에 계속...
[2021년 6월 28일 제134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