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2월 04일

레저/여행

침탈과 침략의 역사속 절벽사이에 둥지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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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곤(Dogon)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서울에서 파리를 거쳐 말리의 수도 바마코까지 가는 데만 3일을 잡아야 한다. 바마코에서 12시간 버스를 타고 몹티(Mopti)까지 가는데 하루가 걸리고, 다음날 4륜구동차를 빌려 도곤의 텔리(Teli)까지 가는데 또 하루가 걸린다. 5월과 6월의 기온은 섭씨 50도까지 치솟는데, 도곤엔 전기도 안들어와 찬물 한 잔 마실 수 없다.

먼 옛날 도곤 족은 물이 넘쳐흐르고 초원엔 새파랗게 풀이 자라 양떼와 소떼가 살이 찌는 니제르강 근처에서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아우성이 터지며 평화로운 도곤 땅에 피가 뿌려졌다. 다른 부족이 쳐들어 온 것이다. 착하기만 한 도곤 족은 고향 땅에서 쫓겨나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올랐다. 발길 닿는 곳마다 자기네 땅을 지키려는 부족들의 공격을 받아 하루도 피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도곤 족은 자연히 사람이 살지 않는 척박한 땅으로 밀려 왔다.

사하라 사막 언저리엔 그 옛날 지각변동으로 거대한 단층이 형성되었다. 어느 날인가 평평하던 땅이 줄자를 친 듯이 150킬로미터에 걸쳐 균열이 일어나서 남동쪽이 2~300m나 함몰되어 버린 것이다. 그곳이 바로 반디아가라 절벽. 사하라 사막에 닿아 있는 반사막 지역, 연말부터 3월까지 하마탄이라는 모래 폭풍이 불어오면 대낮에도 컴컴해지는 곳. 하마탄이 끝나고 나면 섭씨 50도까지 치솟는 열파가 몰아쳐 세상 모든 것을 녹여 버릴 듯, 머리 위에서 태양이 지글지글 끊는 곳. 사람이 살기엔 너무나 가혹한 이곳까지 도곤 족은 밀려 왔다. 지금으로부터 700여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곳에도 벌써 사람이 살고 있었다. 붉은 피부에 난장이 텔렘(Telem)족이 단층 절벽 사이에 흙집을 짓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침략자들에게 고향땅을 빼앗기고 여기까지 밀려 온 도곤 족은 이번엔 그들이 침략자가 되어 난장이 텔렘족을 쫓아내 버린다. 텔렘족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단층 절벽 사이에 살던 그들의 흔적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그 때의 일은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올 따름이다.

절벽을 내려와 펄펄 끓는 모래벌판을 지나 텔리(Teli) 마을 주막집에 짐을 풀었다. 말이 주막집이지,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씩 도곤을 지나는 나그네가 이 집 마당이나 평평한 흙지붕 위에서 돗자리 하나 깔고 자고 가는 곳일 뿐이다. 나그네에게 방을 주는 것도 아니요, 음식을 파는 것도 아니다.

피부는 섭씨 50도까지 치솟은 열기 속에서 익어버렸는지 감각이 없다. 마당 구석 그늘에 축 늘어져 누워 있는데 거구의 집주인이 웃옷을 벗어젖힌 채 남산만한 배를 흔들며 뒤뚱뛰뚱 다가오더니 악수를 청한다. 일어날 기운도 없어 누워서 팔을 뻗치자 그가 내 팔을 잡아당겨 단번에 일으켜 세우더니 이리와. 더위 이기는 방법이 있으니하고 말한다. 눈이 번쩍 뜨인다. 절벽 아래 어디 냉기가 솟는 동굴이라도 있다는 건가? 이 집 주인이 나를 데려간 곳은 서너 발짝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대문짝 그늘.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독주와 뜨거운 닭찜이다.

그렇지 않아도 온몸이 훨훨 타는데 독주를 붓고 금방 끊여낸 찜요리를 먹는다? 숨이 콱 막히는데 이 집 주인 말씀이 뜨거운 것으로 뜨거운 걸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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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순간적으로 이열치열(우리말로)”을 외치며 무릎을 쳤다. 피부색깔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도 인간의 생각은 같다. 이열치열! 배불뚝이 집주인과 마주앉아 속이 훨훨 타는, 포도찌꺼기로 만든 싸구려 독주 파스티스를 퍼 마시고 안주로 뜨거운 도곤식 닭찜을 손으로 집어 먹으니,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겁이 덜컥 날 정도로 온몸이 열기에 휩싸였다.

그런데 아! 이것이 어쩐 일인가. 더위가 가시는 것이다. 우리 조상의 말대로, 주막집 검은 주인의 말대로 열로써 열을 제압한 것이다. 40대로 보이는 이름이 아마티라는 이 집 주인은 나이가 예순이라고 했다. 도저히 못 믿겠다는 나에게 그는 생년월일이 적힌 신분증명서까지 보여준다. 그는 첫 부인과 사별하고 삼십대의 하와와 이십대의 아이시타 두 젊은 부인을 데리고 산다. 한 살도 안 된 갓난아기부터 사별한 부인에게서 난 28세 맏아들까지 자식도 여럿 두고 있다. 마을의 유일한 식수는 지하 20m 깊이에서 퍼 올리는 우물물. 높은 기온 때문인지 깊은 땅속에서 퍼 올리는 우물물은 상당히 시원하다. 하지만 많이 마시면 큰일난다. 나도 더위에 못이겨 우물물을 몇 사발씩 들이키다가 설사를 만나 크게 고생했다. 마땅한 치료약도 없이 고생고생하다가 마을을 떠나올 땐 걸어나올 힘도 없어 마을 사람들이 빌려준 소달구지를 타고 나와야 했다.

7월과 8월 사이 200mm도 채 안되는 비가 도곤에 내리면 모래밭에 뿌려놓은 조가 쑥쑥 자라 올라 10월이면 추수를 한다. 조그만 흙창고에 잘라낸 조 이삭을 쌓아두고 한 단씩 꺼내 절구질을 해서 빵을 굽고 죽을 끓여 먹는다. 현재 이 곳 반디아가라 절벽 지대에는 약 80개의 크고 작은 부락이 있고 말리 전역이 이슬람화되어 있지만 유독 도곤족만이 이슬람화되지 않은 채 그들 고유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는 53개나 되는 국가가 있고 도곤족과 같은 크고 작은 2500개의 부족들이 800이 넘는 자기들의 언어로 살아가고 있다. 그 많은 부족들은 부족마다 다른 빛깔과 특성을 가진 독특한 문화와 예술을 가지고 있다. 문자라는 것을 배우기 전부터 구전을 통해 전승되어 온 문화와 생활방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아프리카에 한번이라도 와서 마음으로 그들을 보고 느낀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20231271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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