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절기로는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늘은 청명했다. 초겨울 날씨의 파란 하늘 위에 그림을 그려 놓은 듯한 구름과 남미의 어느 수도와는 다르게 가장 선진화 되어 있는 건물과 도로는 마치 이곳이 유럽의 어느 한 도시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유럽의 느낌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구성원의 대부분이 백인들이기 때문이다. 16세기 경 스페인이 이곳에 들어올 당시 토착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터를 잡으면서 일 손이 부족해도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나 토착민을 배제하고 이탈리아, 스페인 등 주로 남유럽의 백인들이 대량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이다.
중남미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넓은 국토를 소유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스페인어로 ‘좋은 공기’라는 뜻으로 ‘남미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낭만적이며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천천히 걸어서도 거리의 정취를 느끼면서 도심의 관광지를 모두 둘러볼 수 있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채우고 있는 상인들과 관광객들까지 모든 것들이 도시의 매력을 내뿜는 곳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5월 광장은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함께 한 곳으로 1810년 5월 23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혁명 1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5월의 탑에는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가져온 흙이 들어있고 광장 주변으로는 대통령궁과 대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분홍색 집이라는 애칭이 있는 대통령궁은 1882년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898년에 완공된 건물로 영화 ‘에비타’를 본 사람이라면 군중들에게 연설하는 ‘에바 페론’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저녁이 되면 대통령궁의 외부에 분홍빛 조명이 켜지며 그 자태를 더욱 아름답게 뽐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곳은 플로리다 거리와 디펜사 거리다. 서울의 명동, 부산의 광복동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졌다. 은행과 쇼핑센터, 골동품과 미술품,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지만 이 거리의 매력은 노점상이다. 상인들과 예술가들 그리고 여행자들이 어우러져 항상 활기가 넘치고 번잡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들은 수공업자들이다. 놀라운 손재주를 가진 수공업자들이 수두룩하다. 오직 철사만으로 온갖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망치와 정 만으로 철제컵에 원하는 그림을 세공해 주는 사람 등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길거리 바닥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여행자의 동전을 기다리는 행위예술가도 넘쳐 난다. 저녁이 되면 탱고의 본고장답게 매혹적인 탱고 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 탱고를 추는 남녀 커플의 격정적인 춤사위와 빠른 발놀림에 눈을 뗄 수가 없다. 공연을 보는 관광객이 같이 춤을 출 수도 있고, 멋진 무희들과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플로리다 거리의 끝자락에는 산 마르틴 광장이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는 곳으로 광장의 중앙엔 말을 탄 산 마르틴 장군의 동상이 우뚝 솟아있다. 산 마르틴 장군은 아르헨티나 인으로 남아메리카의 독립 운동을 이끈 지도자다. 독립혁명군을 이끌고 아르헨티나뿐 만 아니라 칠레, 페루를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킨 남미의 영웅이다. 쿠바의 혁명 지도자 체 게바라도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래도 산 마르틴 장군처럼 영웅시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한국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도 한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바로 ‘백구촌’이다. 백구라고 불리는 이유는 원래 이곳이 109번 버스의 종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빈민가와 붙어 있어 밤이나 낮이나 위험한 곳으로 취급받는다. ‘까라보보’라는 큰 길 끝자락에 있는 동네인데 그 밑에 동네는 무법천지인 빈민촌이다. 어느 나라나 다 빈민촌이 있지만 아르헨티나 빈민촌은 조심해야 한다. 그 동네 지나가다가 돌멩이가 날아와도 차를 안세우고 가야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한 때 한국 사람들이 봉제업을 많이 하면서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많이 오게 되었고 이때 공장의 직원으로 볼리비아 인들을 고용을 많이 하였는데 볼리비아 인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곳 가까이에 자연스럽게 한인촌이 형성이 되었다. 당시에는 볼리비아 인들이 손재주도 좋고 부지런해 돈을 벌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많이 들어오던 시절이었다. 한창 한인촌에 사람들이 몰릴 시기엔 한인들만 6만 명 정도 거주하였지만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고, 돈을 벌어 미국, 캐나다로 간 사람도 있고, 아르헨티나 경기 여파로 살기 어려워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가 현재는 교민수가 3만 명 정도라고 한다.
백구촌에 들어서면 한글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국 교회와 성당도 있고 절도 있다. 한식당과 한국 식품점, 제과점, 미용실, 학원과 도서실 간판도 보인다. 나무판에 페인트로 그려 넣은 70년대 풍으로 만들어진 탓인지 한국의 시골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생각도 든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도시의 매력을 내뿜는 곳이라면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할만한 자연을 자랑하는 곳도 있다. 바로 대서양 연안 발데스 반도에 자리 잡은 푸에르토 마드린이다. 이곳에서는 일 년 내내 바다사자, 펭귄, 고래 등 다양한 해양 동물들을 눈앞에서 직접 구경할 수 있다. 자연의 평온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해변 도시의 편리함까지 누릴 수 있는 곳이다.
푸에르토 마드린에서 가는 대표적인 관광지는 두 가지다. 한 가지는 고래와 바다사자 등을 보러가는 발데스 반도 투어. 또 한 가지는 최대 100만 마리의 펭귄 서식지를 볼 수 있는 푼타 톰보 투어다. 바다사자는 항상 볼 수 있지만 고래는 6월부터 12월, 펭귄은 번식을 하고 털갈이를 하는 9월부터 3월까지가 볼 수 있는 시기다.
꼭 투어를 하지 않더라도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까운 곳까지 고래가 헤엄쳐 온다. 잔잔한 수면 위로 고래들이 내뿜는 물줄기와 유영하는 고래들의 몸짓이 잔잔한 햇살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바다사자 역시 해안절벽지대 아래 넓은 암반을 찾아가면 수십 마리가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과 새끼 사자들이 어미 주변에서 수영을 배우거나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22년 8월 26일 147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