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2일

맛집/멋집

맛과 건강을 생각하는 향긋한 빵집 〞아델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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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아이템으로 시민들에게 행복을

"빵집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혹자는 이렇게 말할까.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넘쳐나고 대기업이 펼쳐놓은 퓨전형 베이커리점도 넘쳐나는 때, 독자적인 베이커리샵으로 마니아 고객층을 끌고 있는 곳이 있다. 본점인 해운대지역에서는 이미 명성이 자자한 아델라7(대표 서홍원)이 최근 부산 롯데호텔 후문앞 부산비지니스호텔내 서면점을 오픈, 부산의 심장부에서 도심고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문을 연지 불과 두 달 남짓하지만 독특한 맛과 인테리어로 멀티 카페형태의 공간을 선호하는 고객들에게 소통과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넉넉하고 탁 트인 공간이 주는 안락함 외에도 입맛대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건강 메뉴들이 실속가격에 선보여 부담없이 찾게 만들기도 한다.
 
일종의 디저트 카페인 셈이다. 야간이면 양주 와인 맥주와 곁들여 안주감으로 좋은 메뉴도 인기. 무엇보다 순수 천연재료만을 사용해 건강베이커리를 자부하는 아델라7은 유기농빵과 커피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고향 함양에서 가져오는 신선한 농산물을 재료로 활용하는 이곳은 신토불이 팥으로 만든 빵과 빙수는 인기 절정이다.
 
'아델라7'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왕족의 딸 아델라의 이름을 따온 것. 서홍원 대표가 직접 작명한 상호인 '아델라7'은 그리스 신화속 아델라 공주가 그녀의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갖가지 달콤한 음식들을 제공하여 선행을 베풀었다는 내용에서 착안, 747년 전의 아델라 신을 해운대에서 재현시키기에 이르렀고 다시 최근 서면점을 열어 향긋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 등 7가지 아이템으로 부산시민들에게 행복함을 선사하겠다는 뜻에서 작명했다고 말한다.
 
'아델라7'의 서홍원 대표(49)는 30년이 넘는 경력을 자랑하는 제과제빵바리스타1급 기능인. 조선호텔 베이커리부 제과장 출신으로 현재 한국기능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기능인 양성을 위해 부산 연산동에서 연산국제제과제빵학원을 운영, 이론과 실제를 겸한 인력양성에 힘쓰고 있기도.
 
오늘의 아델라7이 있기까지 꾸밈없이 성실한 자세로 한결같이 매진해온 빵 전문가 서홍원 대표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한 분야에 적어도 20년은 종사해야 전문가 소리를 듣는 요즘 세상에 30년 반을 훌쩍 넘긴 경륜을 쌓았으니 적어도 서 대표야말로 제과제빵 전문가라해도 손색이 없다.
 
꿈을 찾아 단돈 5700원으로 부산행
 
서대표는 고2때 고향 함양을 떠나 단돈 5천700원을 들고 부산으로 왔다. 막연히 제빵사가 되고싶다는 어릴적 꿈 하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친구 기숙사에 잠시 머물며 친구가 다니던 회사에서 3개월간 일한 돈으로 학원을 다니며 일하고 배우기를 반복했다. 아예 학원에서 살다시피하며 청소와 관리를 하며 기술을 배우다가 광안리의 어느 빵집에 첫 취업을 했다.
 
제과제빵 학원에서 6개월간 배워 첫 취직을 한 직장에서도 정성을 다해 일했다. 설날 하루만 쉬었을 정도로 휴무도 없이 성실히 일하다가 군 입대 하루전까지 일했다고. 초봉 7만원에서 시작해 12만원을 받을 때였다.
 
빵에 대한 관심은 군대생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틈틈이 제빵 월간지를 구입해 읽으며 감각을 키웠고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빵에 대한 사랑과 관심때문이었을까. 먹고 살기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 탓이었을까. 어떤 이유에서건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제대후 바로 뒷날부터 취업에 성공했다. 경력자라는 이유로 당시 제과점 주인이 약속한 임금은 35만원. 서대표는 스스로 손사래를 쳤다. 너무 분에 넘치게 많다는 게 이유였다.
 
"제 경험과 능력에 35만원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해서 거절을 했다"는 서대표는겨우 알아서 급여를 주겠다는 답을 얻고서야 일을 하기로 결정하고 밤낮 놀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다. 제과점에서 아예 먹고자며 일요일 조차 쉬지 않고 성실히 일하자 주인은 첫 급여 30만원 지급이후 3개월 만에 35만원을 올려주었다. 오로지 제빵 기술을 익히는 것과 성실하게 일하는 것 밖에 몰랐던 서대표는 고향어머니에게 30만원을 보내고 나머지 5만원으로 적금과 생활을 할 정도로 검소한 효자였다.
 
성실함은 성공길목의 든든한 밑천
 
이후 서대표는 대신동 삼익아아파트 앞 제과점으로 일터를 옮겼다. 이곳에서도 특유의 성실함으로 인정받았다. 어느날 이곳 제과점 식구들과 부곡하와이에 놀러갔다가 부곡하와이 호텔 내 베이커리점과 인연을 맺게 된다.
 
한번도 여행이라고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서대표에게 부곡하와이는 지상낙원이었다. "저런 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희망은 20여일만에 현실이 되었다. 직원 빈자리가 생긴 것이다. 부곡하와이 호텔 내 제과점에서는 두 번째 책임자로 일을 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사단이 났다. 상사부인이 출산을 해서 상사가 일주일 자리를 비웠을 때 최선을 다해 빵을 만들고 성실하게 일을 하자 호텔내에서 빵맛이 금새 소문이 났다. 책임자 없는 동안 빵을 잘만든게 화근이었다. 잘한 일인 줄 알았는데 질책으로 돌아오자 더 이상 있을 곳이 못된다는 생각에 지배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연 떠나 대구 '공주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100여명이 넘는 대규모 빵집이었던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부곡하와이 호텔 지배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후배가 관광호텔 지배인으로 있는데 제과점을 좀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부곡하와이에서 받던 40만원의 임금을 기준으로 급여를 합의하고 일을 했는데 놀랍게도 첫 급여는 63만원이었다.
 
서대표는 기쁘다기보다 부담스러워 더 열심히 해서 보답하리라 각오하고 주인정신을 갖고 일에 매진했다. 재료를 아끼는 것도 더 신경을 썼고,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는 전기도 아껴쓰라고 직원들에게 솔선수범 교육을 하는 등 책임자로서 소임을 다해 오너로부터 신뢰를 받아 석달도 안돼 모범상을 받기도 했다.
 
서대표는 지금도 직원들에게 종종 말한다. 자신이 그래왔듯이 "자기 가치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자신의 가치에 대한 임금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게 아니라 고객이 말해주는 것"이라고. 고객이 인정하면 당연히 오너는 응당 그만한 대우를 해주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소그룹모임 부터 단체 행사까지 다양한 회의룸 갖춰

7가지 테마 메뉴 다양한 디저트류도 실속가격에
 
 
9년만에 창업의 꿈 이루다
 
베이커리와 커피숍을 겸한 호텔내 제과점에서 열심히 일하며 적응해갈 무렵, 그런 그에게 CEO기질이 발동했다. "내 장사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든 것. 제빵사 생활 9년 만에 드디어 창업의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KBS부산방송국 인근 남천동에 한빛제과점(이후 미쉘베이커리)을 열었다.
 
틈틈이 갖추어 놓은 제과기구만도 많아 손쉽게 출발할 수 있었다. 특유의 성실함과 정성, 손맛으로 장사는 불티나게 잘되었고 창업 5년여 만에 호주행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잡지에서 보던 외국의 빵집들, 막연히 동경해왔던 호주 시드니 캐피탈 호텔 옆 미셸베이커리점에서 색다른 경험을 쌓았다. 철저한 매뉴얼과 체계적인 패턴과 경영방식, 주문식 케익문화의 보편화 등 그는 맛도 맛이지만 외국의 빵집 경영 노하우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
 
학원경영, 실패와 도전의 연속

1년 후 아내와 처남에게 맡겨놓았던 한국의 빵집으로 다시 돌아와 '미셸베이커리'로 상호를 변경하고 컴백 후 제과제빵 학원경영에 도전했다. 새로운 사업의 시작은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이 되면서 운영난에 허덕였다. 소유하던 아파트까지 팔고 통장잔고까지 바닥이 나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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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강사비 월급주고 생활비에 가게 운영까지 매출대비 지출액이 커지면서 카드와 현금서비스 돌려막기 급급했다"는 서대표는 다시 슬럼프에 빠지면서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때 살기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취업이었다. 조선호텔 베이커리 제과장으로 들어가 그간의 실력과 경륜으로 연봉 4천만에 계약, 다시한번 성실한 직장인의 자세로 돌아왔다.
 
"비번 날도 일하고 정말 열심히 일해 인정도 받았지만 학원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사표를 쓰면 재입사가 어렵다며 회사측이 3개월 유예기간을 주었는데 해보고 안되면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미안할 정도로 고마웠고 유예기간에도 50%의 임금이 나와 그때 마음의 눈물을 많이 흘렸지요."
 
그러나 서대표는 3개월 뒤 정식사표를 결심하고 손에 물집이 생길정도로 학원 전단지를 붙이며 홍보에 나섰고 수강생들을 가족처럼 지극정성으로 가르치고 봉사에 동참,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하게 마련. 어느덧 서대표의 제과제빵 학원은 강의실을확장해야 할 정도로 수강생이 넘쳐나 호왕을 이루었다.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학원에 수강생들의 만족도는 컸으나 서대표는 이 무렵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양보다 질에 주력하자는 자세로 확장했던 학원하나를 줄였다.
 
베이커리와 어울리는 커피교육에 나섰고 바리스타 과정도 개설했다. 아니나 다를까 2년 후 커피가 뜨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점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고 거리마다 골목마다 커피전문점이 넘쳐났다.
 
이후 달맞이언덕에 300여평 규모의 아델라7을 오픈, 그때까지만 해도 생소했던디저트 카페형태의 베이커리점을 처음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알려지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달맞이 일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뜨면서 자리가 없을 정도로 대호황을 이루었다.
 
이후 건물주의 횡포에 신경쓰지 않아도 될 자체 건물을 매입, 좌동으로 내려와 아델라7 해운대 본점 둥지에 안착, 서면 도심권으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나를 살린건 긍정마인드
 
"저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된다고 믿고 그대로 추진하면 자신감도 생기고 반쯤은 성공한 느낌이라 할까요. 긍정 마인드는 세상이 다 열릴 것 같은 힘을 줍니다."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추진하고 추진하면 끝을 보고 마는 서대표. 한국기능인협회회장인 그는 지난해부터 국제제과제빵 기능인 바리스타 요리전문가들이 실력을 겨루는 아티산페스티벌을 기획, 올 9월 치러질 제2회 아티산페스티벌 대회준비에 여념이 없다.
 
전세계 1천여 기능 장인들이 참가하여 실력을 겨루는 아티산 페스티벌은 제과제빵 바리스타들의 축제의 장이다. 긍정마인드로 새로운 것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서홍원 대표. 그야말로 진정한 장인이다.
 
한편 서홍원대표는 제과점과 학원경영 틈틈이 공부, 식품전문 석사학위를 수여하고 부산여대 제과제빵 외래교수, 전국장애인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해왔으며, 현재 창신대 외래교수, 동의과학대 식품과학계열 겸임교수 등 부산경제진흥원 소상공회의소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자격증만도 여러개. 제과제빵기술자격, 케익디자이너 자격, 베이킹마스터자격, 바리스타 1급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다.
 
유순희 기자
[2015724일 제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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