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베트남 쌀국수 광안리 ‘사이공’
사시사철 먹을 있는 국수, 하지만 국수는 여름에 먹어야 제 맛이다. 여름이야 말로 진정한 면류 요리들이 제 맛을 발하는 계절이 아닐까. 때문에 냉면, 칼국수, 열무국수, 콩국수 등 계절에 더욱 궁합을 맞춘 면요리들이 여름철 식욕을 자극한다. 많은 면류 중에서도 진정한 국수 마니아라면 경쾌한 식감을 자랑하는 쌀국수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쌀국수는 베트남 북부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유명하다. 굳이 베트남을 찾지 않아도, 지금은 어느 동네서나 월남쌈을 앞세운 베트남음식점 하나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요즘은 다양한 메뉴와 결합해 퓨전요리가 돼버린 베트남 음식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한강 이남으로 베트남 음식의원조라 내세울 수 있는 집이 바로 부산에 있다는 건 몇 사람이나 알고 있을까.
1997년 부산 최초 ‘Pho.L.A'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베트남음식 전문점 ‘사이공(대표 백영심)’. 당시만해도 국내에선 생소한 음식이었던 베트남 음식으로 성공하기 위해 사이공의 주인장 백영심씨는 부푼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 L.A를 향했다.
다민족 다인종 국가인 미국의 입맛을 만족시킨 음식이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승부를 걸 수 있겠다 자신했기 때문이란다. 그녀의 선견지명은 틀리지 않았다. 오늘날 빠질 수 없는 외식 메뉴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 잡은 베트남음식 뒤엔 그녀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에 사이공의 백사장만이 느끼는 뿌듯함을 우리가 쉽게 짐작하긴 어렵다.
그녀가 1997년 당시 ‘Pho.L.A'라는 이름으로 위세당당 광복동에 간판을 내걸고 출발을 알렸지만, 그 시작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단다.
Pho(쌀국수)라는 의미 모를 간판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쌀국수집이란 사실을 알고 난 후 조차도 과연 쌀로 국수맛을 제대로 낼 수는 있는지, 얼마 되지 않아 망하고 말거란 사람들의 숱한 의구심에도 백사장의 ‘Pho.L.A’는 굳건히 자리를 잡아갔다.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져 자리를 잡아갈 즈음, 지금까지 음식점 경영의 노하우가 미약했던 백사장에게 시련이 닥쳐오고 말았다. 식당이 자리 잡은 번화가의특징상 주차공간을 마련할 수 없었고, 4층에 위치한 주방에서 1층의 홀로 음식을 내어 오는 과정에서 지체된 시간으로 고유의 맛을 오롯이 전할 수 없었던 탓이었을까, 오픈한지 3여년 만에 결국 광복동을 정리하고 광안리에 다시 둥지 튼 곳이 바로 ‘사이공’이다.
광복동 오픈당시 베트남 음식에대한 열정과 넘치는 의욕으로 수십가지 메뉴로 영업을 벌였지만, 광안리로 이전하면서 메뉴는 한결 간결해졌다. 쌀국수와 월남쌈을 주요메뉴로 하여 덮밥과 베트남만두 등으로 다시 한 번 외식업계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백사장의 베트남 요리는 입소문을 타고 흘러 내놓으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앞 다투어 다루기 시작했고, 흔한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에 이르렀다. 시간이 흐르며 웰빙열풍까
지 가세돼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베트남 요리는 인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오늘날의 베트남음식점 대부분이 이곳 ‘사이공’을 벤치마킹한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지 가세돼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베트남 요리는 인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오늘날의 베트남음식점 대부분이 이곳 ‘사이공’을 벤치마킹한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음식점 메뉴들이 순간적인 강한 느낌의 요란하고 화려한 맛으로 손님을 사로잡는 반면, ‘사이공’의 요리들은 소박하면서도 은근한 맛으로 단골들을 만들었다.
얇고 매끈한 면발이 입안에 휘감기며 전해오는 탄력 있는 식감과 씹을수록 쌀 고유의 맛이 오롯이 살아나는 쌀국수는 까다로운 미식가들조차 매료시킨다.
‘사이공’의 참맛을 안다고 자부하는 단골들은 이집의 으뜸 메뉴로 단연 소고기 쌀국수를 꼽는다. ‘사이공’은 소뼈와 닭 뼈를 우려내는 베트남식 쌀국수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매일 4시간 이상 진한 육수를 우려낸다. 특유의 베트남 향이 베인 쌀국수를 뜨끈하게 한 그릇 비우고 나면 혀와 몸의 만족감이 비로소 땀으로 표출된다.
고명과 육수의 효과를 동시에 주는 소고기, 닭고기, 해물에 따라 쌀국수의 종류도 나누어진다.
이집 메뉴에서 빼놓으면 섭섭하다는 월남쌈. 신선한 갖은 야채와 새콤달콤한 제철과일,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낙엽살이 사이공만의 특제소스와 만나 반짱(라이스 페이퍼)에 한주머니 담겨 입안에서 새로운 맛의 조합을 탄생시킨다.
쌀가루를 물에 넣고 걸쭉하게 끓여낸 후 그 끓여낸 쌀물을 종이처럼 얇게 펴 햇볕에 말린 라이스페이퍼는 짜조(베트남 만두)를 만들 때도 활용하는 베트남의 대표 식재료다.
특히 사이공 월남쌈의 결정적인 맛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특제소스. 특제소스의 비밀은 바로 짠맛을 내는 액젓과 매콤하고 새콤한 맛을 내는 식초와 마늘 등의 적절한 황금비율에 있다.
베트남요리에 있어서만큼은 ‘사이공’의 역사가 감히 짧다고 할수 없는 만큼 ‘사이공’이 추억하는 에피소드는 대하서사를 써도 될 만큼 다양하다. 혹자는 인생에 있어 베트남요리와의 첫상봉의 장소로 추억하기도 하며, 연인이었던 한 쌍이 학부모가 되어 가족이 함께 찾아오는 추억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베트남음식 대형 체인점이 판을 치는 세태지만, ‘사이공’의 주인은 대형화 되어 번창하는 만큼 ‘사이공’의 고유한 맛이 변질되는것을 우려한다.
그녀의 소박한 바람은 그저 몇 대를 이어서라도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사이공’ 쌀국수의 진정한 맛을 전해주고 싶은 것 한가지다.
광안리 해변에 11년째 자리를 지킨 사이공의 맛이 마치 좋은 인연처럼 오래도록 혀끝에 남아 긴 여운을 남긴다. 051)755-4205
유시윤 기자
[2013년 5월27일 제42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