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치인 릴레이 인터뷰<3>
“26만 여명의 금정구민 모두에게 내가 가진 열정과 비전, 재능이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의정활동을 펼쳐보고 싶습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부산지역 기초의회 중 가장 많은 여성의원을 배출한 금정구에 정치신인으로 당당히 입성한 오희주 비례대표(39.새정치민주연합). 그는 남다른 사고로 금녀의 벽을 허물고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조선 IT 분야에서 영업 및 컨설팅파트의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여성리더로 활발히 활동해 온 인물로도 잘 알려져있다.
현재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유학컨설팅 회사의 대표이자, 과거 (주)토탈소프트뱅크라는 조선IT업계에서 몸담았던 경력을 바탕으로 정치계로 진입한 그는 신인다운 신선한 시각으로 의정활동에 임하고 있다.
그는 최근 5분 자유발언에서 구의 전산프로젝트 추진 시 전산전문 인력 및 현업부서의 업무를 잘 아는 인력이 동시에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수행업체를 철저히 관리해야 하며, 2015년 금정구청 및 금정문화재단 홈페이지 구축을 위한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을 언급한 바 있다.
구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그가 주력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전산 파트’라고. 그는“행정, 입찰관련 정보화시스템이 부서별 조각 예산으로 편성, 집행되기보다, 총괄해서예산을 편성하고 집행, 감사까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전산분야는 제대로 모르면 끊임없이 비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며 현재 구의 정보화시스템 체계의 개선 의지를 밝혔다.
이와 함께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평생학습과 관련해서다. “금정구는 이미 평생 학습도시로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문화센터 프로그램 개발을 넘어 새로운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역점을 두고 싶다”고 밝혔다. 오 의원이 ‘전산’과 ‘교육’에 관심을 갖고 주력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녀의 독특한 경력이 바탕이 된다.
오희주 의원은 항만에 전산시스템을 공급하는 회사인 (주)토탈소프트뱅크에서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업무로 인정받아 업계에서 금녀의 벽을 깬 선구자로 유명하다. 당시 해당 업계 쪽은 여자화장실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여자가 배에 오르는 것 마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등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13년 근무기간 동안 47개국을 돌아다니며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임신 8개월에도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출장을 다녔는데, 어떤 나라의 경우 만삭이 가까운 몸으로 입국을 하게 되자, 공항에서는 배속에 밀수품을 숨긴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고요, 중동 카타르에 갔을 때에는 한달전부터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고객사에서 만나려고도 하지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젊은 나이’와 ‘여성’이라는 이유는 국내외 해당업계에서 핸디캡으로 작용했지만, 오 의원은 이를 당당히 이겨냈다. “당시 해외로 영업하던 전산시스템의 가격은 보통 10억~50억이었습니다. 고가의 프로그램을 팔러 왔으면서 ‘어린여자’를 보냈냐는 눈초리가 따갑게 느껴졌죠. 너무 어리고 경험도 없어 보이는데 더구나 여자였던 겁니다.
첫인상이 이렇다 보니 처음에는 집중을 안하더라구요. 상품제안 설명은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한 달에 걸쳐 의사가 결정되는데 오히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어린여자’인 내가 영어권나라에서 온 경쟁사 못지않게 유창한 영어실력과 탄탄한 지식으로 관심을 끌게 됐죠. 경쟁사 전산엔지니어들이 갖추지 못한 인문학을 접목한 융복합적,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등 섬세한 여성의 장점을 살려 프레젠테이션 한 결과, 단점은 관심의 계기가 됐고 결국 의외라는 반응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게 됐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당시의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조선 IT분야 금녀의 벽깨고 해외사업 총괄경력
행정·입찰 관련 정보화시스템 체계적 관리 구축 관심.
결국 여성이라는 단점과 첫인상을 깨는건 노력에 달렸다고 오 의원은 강조했다. “시스템을 공급하게 되면 유지보수 기간이란 게 있습니다. 여자라고 꺼려하던 해외 고객사에서 결국 저에게 남아달라고 권유를 하게 될 만큼 나중에는 인식이 바뀌게 됐죠.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젊은 여성’이라는 좋지 않은 첫인상을 극복하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젊은 여성’이 더 주목받고 인정받으며 전화위복의 상황을 만들어 내게 됐던 겁니다”라며 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점을 여성의 장점으로 극복했다고 덧붙였다.
누가 강요했다기보다는 일을 즐겼다는 오 의원은 2008~9년 해외사업총괄 부문장시절 당시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슴종양 수술 일주일 후 가슴에 붕대를 감은채로 해외 출장길에 오르기도 했다고.
“이후 회사에서는 현지 지사에 여직원을 내보내는데 주저함이 없게 됐죠, 후배들 역시 오만이나 케냐처럼 출장을 꺼리는 지역조차 적극적으로 가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개척자의 힘들고 고달픈 행보의 결과로 많은 후배 여성들에게 길을 닦아준 성과를 낳을 수 있었다.
이후 오 의원은 진로의 다양성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고 싶어 대학시절 인연이 됐던 한미유학원을 인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학원을 경영하게 됐다. “평범한 유학원이 아닌 나름의 색깔을 입혀 유학 컨설팅을 하고자 했습니다. 직업을 결정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할 수 있고 어느 나라에 어떤 직업의 수요가 많은지 등짧은 유학기간이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될수 있는 기간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이를 위해 수십개국 나라의 문턱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비전을 많은 학생에게 좋은 영향으로 전하고 싶었고, 나아가 금정구민을 비롯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고 싶다는 오 의원은자신의 경력과 장점을 최대한 구정활동에 반영하고 싶다고 밝혔다.
슬하에 2남 1녀를 둔 워킹맘으로서 오 의원은 언젠가 자신이 밟아온 길을 따라올 혹은 또 다른 길을 개척해 나갈 미래의 여성후배들을 위해 “가슴에 불덩이를 꺼뜨리지말라”고 조언한다.
“특히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 특강을 하다보면 부딪혀 보지도 않고 너무 빨리 세상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는 많은 할 일이 있고 실수를 하더라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어느 책 제목처럼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이 되라고 말하고 싶어요”라며 선배로서의 충고를 남겼다.
또, 그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두려말고 과감히 가볼 것을 권했다. “직업의 세계 역시 천편일률적인 것에서 탈피해야 선구자가 될 수 있고 경력도 개척할 수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자신만의 무기 하나는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준비된 나만의 무기,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트레드마크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경험했다면 언어를 넘어 국제적 감각이라던가 특별한 자신만의 것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자기를 갖추고 준비가 되면 어떤 순간이든 기회가 올 것입니다”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구체적인 꿈이 아니더라고 자신의 비전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여성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남긴 그 자신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앞으로의 행보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4년 후 정치계를 떠날 수도 남아 있을수도 있겠지만,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활동할 생각입니다. 정말정말 후회 없도록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는 것이 우선 닥친 과제이며, 또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면 정치든 사업이든 제 몸에 맞는 옷을 입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앞으로의 각오를 밝혔다.
과거 기업에서 그리고 자신의 사업을 통해서도 늘 남들과 다른 사고로 남다른 길을걸어 온 오희주 의원. 정치계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본보기가 되어 줄지 그 걸음의 행로가 사뭇 궁금해진다.
유시윤 기자
[2014년 12월 26일 제59호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