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오랜만에 해운대수목원 조성공사가 진행 중인 석대매립지를 방문했다. 늘 설레는 가슴을 안고 찾았던 석대매립장이 그저 그런 숲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2001년 2월부터 2005년 1월까지 다시 2007년7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부산광역시녹지사업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석대매립지를 자연체험학습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방문해보니 그동안 8년에 걸쳐 조성한 승마장, 주말농장, 잔디광장, 야생화동산, 사철나무 미로원, 대나무품종원, 자연생의 버드나무 군락과 습지호수, 2002년 봄 후쿠오카시민들과의 공동기념식수지 등은 완전히 사라지고, 사람들로 북적이던 공간은 수목원계획에 따라 많은 나무를 심어 산림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산림박물관 등 건축물이 들어서는 게 남아 있지만, 요란한 구호 덕분에 토지보상비를 잔뜩 올려놓아 당초 계획한 1천억 원의사업비도(공사비 358억, 토지보상 205억,건축비 500억) 모자랄 판이다.
그리고 2002년 해운대구에서 애써 조성한 2개의 축구장, 16면의 테니스장도 많은 예산을 들여 허물고 또 많은 예산을 추가로 들여 나무를 잔뜩 심어 그 많던 운동애호가들을 내쫓아버리고 말았다. 산림을 늘여 녹색존을 확대해나가는 것도 좋지만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친화공간이 되어야 합리적이지 않을까.
애써 예산들여 조성한다쳐도 과연 공사가 끝나면, 시민들에게 박수받을 수목원으로 탈바꿈 할까. 필자가 보건데 그럴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전형적인 예산낭비, 전시행정이라 할 수 밖에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은 행정과 전문성의 결여가 안타깝게 한다. 이곳 석대쓰레기 매립지는 양묘장으로 지정되어 있었고,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쓰레기 매립더미였지만, 복토가 충분하지 않아 2001년 2월당시에는 쓰레기가 날리고 메탄가스와 함께 불꽃도 군데군데 일고 있어, 나무를 심기 위해서는 최대한 복토를 많이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복토용 흙을 운반하는데는 수요처의 위치에 따라 많은 비용이 들고, 수요자는 경우에 따라 많은 예산을 들여 흙을 구할 수도 있어 철저한 수요공급의 논리가 적용된다. 마침 2001년 여름부터 아파트개발 붐으로 석대에서 가까운 반여동, 장전동, 기장등지에서 토사가 많이 발생하여 우리는 돈한 푼 안들이고 매립지에 흙을 받아 복토를 할 수 있었다.
원래는 멀리 양산의 부산대캠퍼스 조성부지에 가야 할 흙을 가까운 우리가 받아줌으로써 업자들은 물류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우리의 요구대로 포크레인, 불도저 등과 같은 장비를 그들이 부담함으로써 배수로, 석축공사 등의 공사도 흔쾌히 맡아주어 우리로서는 엄청난 예산을 절감한 셈이었다.
석대매립지는 도심 가까이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름답고 안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주변의 임도를 연계하면 다양하고 멋진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조금씩 가꾸어 가면서 자연을 살린 체험학습장으로 만들면 이상적인 자연친화공간으로 탈바꿈하리라 기대했었다.
필자는 당시 3단으로 이루어진 넓은 평지 공간에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려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고 다양한 자연체험 학습의장을 만들고자 했다. 2001년 봄부터 2003년 봄까지 복토를 하고 나무를 심었지만, 쓰레기매립지의 메탄가스의 영향으로 고사목이 발생하여, 키 큰 나무F,F 심기보다 복토한 공간을 구획하여 야생화원, 잔디광장, 사철나무 미로원을 만들고 포플러재단의 지원으로 가스에 강한 포플러원도 조성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2002년 봄에는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하여 후쿠오카시민들과 부산시민이 양국의 상징목인 무궁화와 벚나무를 기념식수도 하여 후쿠오카시부시장을 비롯해 후쿠오카시민들이 석대를 찾아 오곤 했다.
당시만 해도 아름답게 자생한 버드나무 군락 지대는 버드나무를 그대로 살리고 복토를 하지 않아 자연스레 물이 고이도록 하여 환상적인 자연습지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7년 말에는 복토가 거의 끝나고 정비된 A지구 제일 안쪽에 승마사업을 하고 있는 J사장에게 부탁하여 마굿간과 모래사장이 붙은 승마체험장을 만들어 석대매립지 뒷산의 5km 임도와 연결함으로써 승마인구도 조금씩 늘려나갔다.
한쪽 공간에는 채소밭을 조성하여 많은 노숙자, 도시농업인 등이 땅을 일구어 훌륭한 주말농장의 역할을 하게 했다. A지구 오른쪽의 넓은 평지공간에는 대나무 품종원이라 이름 붙이고 대연수목원에서 여러 품종의 대나무를 이식하고 중국에서 특이한 많은 종류의 대나무를 구입하여 심어 세월이 지나면서 독특한 아름다운 경관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두 번째 녹지사업소장이 끝나가는 2009년 초에는 많은 시민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와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공직자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8년이 넘는 긴 기간을 석대매립지에 애정을 갖고 여러 사람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구해 조성해 나갔지만, 임의의 나의 독단적인 구상으로 언제든지 계획이 흔들릴 수도 있어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불안했었다.
그래서 수차례 시장 결재도 받고 언론홍보도 하면서 많은 참여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나의 구상을 기정사실화 해갔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시정의 책임자가 현장을방문해 설명도 듣고 힘을 실어주었더라면, 의욕도 생기고 자연체험학습장도 흔들림 없이 유지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8년 동안 시장은 한 번도 현장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2009년 들어 석대매립지를 수목원으로 한다는 계획에 내심 반대했지만, 산림청의 국비보조 사업이고 수목원을 조성하면서도 8년에 걸쳐 애써 만들어 놓은 공간들은 그대로 살리면서 계획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10억원의 용역비를 들여 공모로 선정된 계획은 기존의 공간은 깡그리 무시하고 백지 위에서 치유의 숲에 암석원, 허브원, 향기원, 덩굴식물원이 계획되고, 도시생활의 숲에 건강원, 가족마당, 어린이놀이원, 자생초화원, 체육공원, 자생초화원, 대나무원이 계획되었다.
어차피 수목원으로서 암석원, 허브원 등 공간의 배치계획에 정해진 법칙이나 모델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 조성된 공간을 살리면서 배치계획을 세우면, 이리저리 식물을 옮겨 심는 엄청난 비용도 절감하고 8년의 세월 속에 형성된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을 것인데 너무나 안타깝다.
해운대수목원 조성에 대한 제언사실 수목원조성은 관료주의식 행정으로 할 사업이 아니다. 시정책임자 또는 담당공무원의 확고한 의지와 열정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이더라도 제대로 된 수목원을 만들기 어렵다.
우리와 비슷한 대구의 대곡쓰레기매립지는 7만 4천여 평의 부지에 1990년까지 410만 톤의 쓰레기를 매립하고 1996년부터 1997년까지 150만 입방미터의 건설잔토를 7미터 정도 복토하여 1998년 수목원조성에 착수하여 2002년 5월에 완료했다고 한다.
당시 문희갑시장이 현장을 수십차례 방문하여 작업을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해운대수목원 조성에 난관은 D지구의 트레일러주차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수목원주차장으로 계획되어 있지만, 어린이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테마공원을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무만 잔뜩 심어선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찾고싶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채식동물원이나 어린이 승마체험장을 넣는 것도검토해 볼 일이다. 그리고 수목원은 단기사업계획으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갖추고 한자리에 오래 근무하는 연구직공무원이 맡아 사명감과 애정을 갖고 업무에 임하도록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김영춘 객원기자
(전 부산광역시 녹지정책과장)
[2017년 9월 22일 제92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