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라는 닉네임으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N번방’을 운영해온 조주빈(24)은 2018년 12월부터 소셜미디어에 ‘스폰 알바 모집’ 등의 게시글을 올렸다. 피해자들이 지원하면 얼굴이 나온 나체 사진을 보내게 한 뒤, 이를 유출하겠다고 협박해 성행위 장면 등을 담은 영상을 강제로 찍게 했다. 조씨는 이렇게 모은 영상을 경찰에 검거되기 직전까지 자신이 개설한 채팅방에 올렸다.
채팅방 입장료는 가상 화폐로 받았다. 영상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맛보기’방과 영상 수위에 따른 1~3단계 방을 운영했다. 입장료는 1단계 방 20만원, 2단계 방 70만원, 3단계 방은 150만원이었다. 조씨는 피해 여성들을 노예로 지칭하며 착취한 영상물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판매해 억대의 범죄수익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주거지에서만 현금 약 1억3천만원이 나왔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018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아동성착취물 등을 제작해 ‘박사방’에 유포한 혐의 등으로 운영자인 20대 남성 조주빈를 구속하고, 범행에 가담한 공범 13명을 검거해 이 가운데 5명도 구속했다.
‘N번방’사건의 핵심 ‘박사’로 밝혀진 조주빈은 범행을 모두 시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확인한 텔레그램 ‘박사방’ 피해자는 74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16명이 미성년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피해자 신고로 지난해 9월부터 6개월 동안 수십 차례의 압수수색과 CCTV분석, 국제공조 수사, 가상화폐 추적 등을 통해 조씨의 신원을 특정했고, 지난 16일 조씨와 공범들을 검거했다.
조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채팅 앱을 통해 여성들을 ‘스폰 아르바이트’로 유인해 나체 사진을 받은 뒤 이를 빌미로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게 하고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했다. 또한 방의 회원 일부를 ‘직원’으로 지칭하며 피해자들을 성폭행하도록 지시하거나 자금세탁, 성착취물 유포, 대화방 운영 등의 임무를 맡겼다.
직원들 중에는 조씨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모집한 사회복무요원들도 있었는데, 조씨는 구청 등에서 일하는 이들을 통해 피해 여성과 ‘박사방’ 유료 회원들의 신상을 확인한 뒤 이를 협박 및 강요 등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검거된 공범 중에 사회복무요원은 2명으로, 한명은 구속됐다. 또 피해 여성 한명은 박사에게 약점을 잡히면서 범행 가담을 강요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조씨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텔레그램으로만 범행을 지시해 공범들 13명 중에 조씨를 직접 보거나 신상을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조씨의 집에서 피해 여성의 성착취물을 판매해 거둔 범죄수익으로 추정되는 현금 약 1억3천만원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범죄수익 추적수사팀은 조씨의 범죄수익이 수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남은 범죄수익도 추적하고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3월 18일부터 ‘n번방’으로 불리는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착취 범죄 용의자의 신상공개와 가입자 전원에 대한 신상공개 및 처벌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답변 요건 20만을 넘긴 관련 청원은 총 5건에 이르며, 동의자를 모두 더하면 총 500만 명이 넘는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역대 최대의 동의를 얻어낸 ‘텔레그램 n번방’ 관련 청원에 대한 답변은 24일 이뤄졌다.
악질적 디지털 성범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며 국민들을 분노케한 ‘텔레그램 N번방’사건에 대해 민갑룡 경찰청장은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뿐 아니라 조력자, 영상 제작자, 성착취물 영상의 소지·유포자 등 가담자 전원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경찰청,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교육부, 대검찰청 등의 ‘디지털 성범죄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범부처 협의를 통해 ‘제2차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조속히 수립,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