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5일

사회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유괴 연행’ 입증 문서 찾았다”

캡처.JPG
 

일제강점기 일본군부가 위안부 성노예를 ‘유괴’ ‘연행’해갔다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하는 비밀 문건이 발견됐다. 일본사 연구 전문가인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박사는 최근 이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내용이 담긴 일본군부의 비밀문서를 입수, 총 28건의 문서와 함께 내용 설명을 곁들여 책으로 엮었다.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 유괴하여 연행해갔다는 기록이 담긴 문서와, 위안부 모집은 최초 일본 군부와 외무성이 맡았다는 사실, 유괴 연행시 황궁의 이미지를 추락하지 않도록 하라는 문서등 남양군도에 위안부소를 설치하고 위안부 50명을 보르네오에 보내라는 문서를 비롯해 구체적인 사실을 입증하는 내용이 담긴 비밀문건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안부소는 일본군부가 지었다

일본정부는 위안부소를 민간업자가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일본 군의관 하야오 도라오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군부가 만든 사실이 드러난다. 실제 일본현지 마이니치 신문이 발간한 ‘1억 인의 소화사 불허가사진사’에도 관련 기록이 나온다.

일본군부는 중국 상해에 양가택이란 곳에 최초 일본군 위안소를 설립했고,군의관 하야오 보고서에는 “천황의 군인들 사기를 돕기위해 지은 최초의 위안소”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군부가 처음 모집했던 위안부들은 조선 여성들이었고, 성병이 없고 남자 경험이 없는 건강한 여자들이다.

강제적으로 끌려온 조선반도의 여성들이 끌려온 직후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이라는 사진 설명과 함께 ‘조선여성들의 고생이 많았다’고 마이니치 현지신문이 발간한 책에 기록하고 있다. 일본군부가 지은 최초 위안소인 상해 위안소는 나중에 민간업자들에게 넘겨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위안소는 군이 직접 운영하는 것이 있고, 민간인이 운영하는 유흥업소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일본정부는 위안부 위안소가 유흥업자들의 영업행위에 있었다고 하지만 일본군부가 위안부를 모집할 때 연행하였다는 문서를 저자가 입수했다. 소화 15년 6월 27일 자의 문서로, 중국엔다 하야시 부대 부대장 하야시 요시히데가 발급한 문서다. 일종의 증명서 형태인데 이 증명서는 연행한 자의 자격증이다.

연행해가는 자의 사진도 붙이는 란이 있다. 문서를 보면 당시 연행해간 자의 나이는 22세의 젊은 사람으로 내용은 ‘당사람은(연행자) 부대 부속 위안소에 경영자로 위안부를 연행하여 귀대하라. 위안부는 당 부대의 위안에 꼭 필요한 것이니 도항에 제반 편리를 봐주기를 증명함이라’라고 적혀있다. 이는 위안부소를 최초로 짓고 제1호로 위안부를 연행해오라는 문서로써 엔다지역의 부대장 아햐시 요시히데의 문서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대로 연행해갔다는 말을 뒷받침해주는 사실이다.


군부와 외무성 유괴 연행했다는 근거

1938년 1월 상해에 일본군 위안부소를 개설하고 모집할 때 여성들을 유괴하여 연행한 사실의 문서다. 이 문서는 1997년 3월 24일 정부가 조사한 ‘종군위안부관계자료집성’에 있다. 소화 12년 2월 7일 유괴사건 조사상황 문서기록을 보면 와카야마 현지경찰부장이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낸것으로 제목은 ‘시국을 이용해 부녀 유괴사건에 관한 것’이라는 것으로 내용은 ‘와카야마 다나베 경찰서에서 와카야마현 내 유괴사건이 발생하여 조사한 상황을 좌기와 같이 기록함’이라고 서두에 적고 사건 조사기록이 담긴 내용이 있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정보계 순경이 조사해보니 접대부를 상해에 보낼 때 모집방법은 무지한 부녀자께 임금도 좋고 군인들 위문하는 것이고, 의식주는 군이 지불한다고 유괴하는 방법으로 모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같은 유괴사건은 일본 각 지역과 조선에서도 유괴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일본의 현 시도의 행정장들은 미처군부가 한 짓인지 몰라 외무부로 연락하고 치안본부로 연락하는 사건들이 터지고 만 내용을 입증하는 문건들이다. 즉, 위안부를 연행하는 자들은 모두 피의자로 여기고 고발당한 사실이다. 물론 조선에서도 이런 방법으로 모집했다.


황궁의 이미지를 추락하지 않도록 지시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 ‘일본국 위안부 문제사료 21선에 보면 유괴 연행 시 황궁(천황)의 이미지를 추학하지 않도록 하라’는 문서도 있다. 소화 13년 3월 4일 육지밀 제 745호에 보면 “~헌병 또는 경찰 당국과의 연번을 비밀로 하여 나아가 군의위신을 보존하고 아울러 사회문제상 누설하지 않는 사람을 배려하고, 서로 도울 수 있도록 통첩한다.”고 되어있다.

이외에도 강제연행 유괴사실을 입증하는 생생한 복사본 문서가 그대로 실려있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김문길 박사는 “이 자료의 가치는 지금까지 연행해왔다는 문서도 발견되어 여러번 보도되긴 했지만 연행해와서도 군부가 직접 관리했다는 것이고 군부가 만든 위안소가 있고 민간인이 만든 유흥소가 따로 있었다는 것은 확연히 구분되는 사실”이라며 “민간인이 지은 곳은 군인들이 못 가도록 한 사실과 위안부소는 민간인이 만든 것이라고 지금까지 주장해온 일본의 입장은 그야말로 거짓이었고, 피해자들의 증언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문서라는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그가 펴낸 책에는 일본군부 기밀문서 내용외에도 북한의 위안부 위안부소 실태, 중국 최남단 해남도의 일본군 위안소와 조선 위안부, 지금까지 보도된 위안부 성노예 관련 뉴스 보도자료 등이 실려있다.


김유혜민 기자

[202087일 제1266]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