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부산노동권익센터 제공)
“아침 8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일을 해요. 그러면 시간 외 수당이 지급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어요.”, “초상이 나더라도 내가 대체 근무자를 구해서 내 돈으로 급여를 지급하고 휴가를 가야해요”
소규모 의료기관에서 종사하는 간호조무사 이모 씨는 초과근무를 해도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했다. 또 다른 간호조무사는 휴가를 가려면 본인 돈으로 대체 근무자를 구해놓고 가야 했다. 소규모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들은 주 6일 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공휴일에 일해도 휴일수당이 없었다. 조무사들은 근로기준법 밖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부산노동권익센터(이하 센터)는 지난 15일 오후 2시, 부산시의회 중회의실에서 부산지역 소규모 의료기관 간호조무사 토론회를 개최했다. 센터는 이날, 부산지역 병·의원에서 종사하는 간호조무사 731명(50인 미만 소규모 병·의원 간호조무사 3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 세후금액으로 받는 ‘네트제’ 편법 계약
센터에 따르면, 부산지역 소규모 병․의원 간호조무사 10명 중 6명은 기본적인 임금체계도 갖추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다. 소규모 병․의원 간호조무사 64.5%가 소위 ‘네트제’ 계약이기 때문이다. 네트제는 고용주가 4대 보험 및 소득세를 대신 부담하고 세후 금액만으로 계약하는 변칙적인 급여제도이다.
네트계약을 할 경우 간호조무사는 퇴직금을 못 받으며, 휴일수당이나 야간수당도 지급받지 못한다. 네트제는 근로기준법 및 노동관계법을 위반하는 계약이다. 동네병원으로 갈수록 법 밖의 네트제 계약이 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80.3%가 네트제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소규모 의료기관 낮은 급여에 주6일 근무
부산지역 소규모 병·의원 간호조무사 월 평균 임금총액은 215.3만원이었다. 이는 부산시 생활임금 월 227만원보다 낮은 액수다. 소규모 병·의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20%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았다.
5인 미만 소규모 의료기관 간호조무사 75.4%가 주6일 근무를 한다고 응답했다. 소규모 의료기관일수록 낮은 급여에 장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 근로계약서 미작성, 임금명세서 미교부 비율 높아
모든 사용자는 근로계약서를 작성교부해야 하지만 조사결과에 따르면 부산지역 소규모 병·의원 간호조무사 30%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교부받지 못했다. 2021년 11월부터 모든 사업장에 임금명세서 교부가 의무화됐지만 임금명세서를 못 받는 간호조무사도 많았다. 소규모 병·의원 간호조무사 32.8%가 임금명세서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 수당 없고 연차휴가도 못써
연차휴가 개념조차 없는 소규모 병․의원도 다반사였다. 소규모 병․의원 간호조무사 61.2%가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게다가 응답자의 63%가 사용하지 않은 연차휴가에 관해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보상받았다.
■ 소규모 의료기관일수록 출산휴가, 육아휴직 사용 못해
부산지역 간호조무사 중 98.8%가 여성이지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소규모 병·의원 간호조무사 46.5%는 출산휴가를, 37%는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육아휴직 사용이 가능한지에 관한 질문에 응답자의 31%가 ‘모르겠다’고 답해 실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는 더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부산노동권익센터 제공)
■ 코로나19 격리 때도 개인 휴가 사용
부산지역 소규모 병․의원 간호조무사 54.4%는 코로나로 업무량이 늘었다고 답변했다. 반면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이 있을 때 유급휴가를 갈 수 있다고 응답한 간호조무사는 36.4%에 그쳤다. 63.6%는 개인휴가를 써야 했다. 심지어 “아파도 병원에서 검사를 하지 말라고 해서 계속 근무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심각한 수준
부산지역 간호조무사들은 일을 하면서 힘든 점으로 낮은 임금(35.6%), 고객에 대한 지나친 감정노동(13.7%), 열악한 휴게공간(13.4%), 상사·동료 및 환자·보호자 괴롭힘(9.2%) 순으로 응답했다. 직장 내 성희롱 경험도 21.6%였으며,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은 30.5%에 달했다.
■ 불합리한 처우는 잦은 이직으로 이어져
부산지역 소규모 병․의원 간호조무사 68.3%는 이직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직 사유로 26.1%가 낮은 보수수준을 첫 번째로 꼽았다. 경력을 반영하지 않는 임금체계로 3년 미만(월 평균 210.1만원)을 일하나 10년 이상(232.5만원)을 일하나 급여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그 외 직장 내 갈등(17.9%), 과중한 업무량(12%), 결혼과 출산·육아 부담(10%) 등은 잦은 이직으로 이어졌다.
전혜정 부산여자대학교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간호조무사 환경개선을 위한 정책방안으로 “간호조무사에 대한 인식개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적용, 대체인력 지원 방안 마련,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책 마련, 간호조무사 당사자 연대와 조직화 등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