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지명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반복돼 온 아픈 역사로서의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을 여성인권의 관점으로 기록하고 새롭게 조명한 전시가 열렸다.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상임대표 변정희)이 11월 2일(수)~11월 6일(일)까지 부산시 중구 BNK아트시네마 3층 청년작당소, 모퉁이극장 등에서 완월 아카이브전 ‘지도에 없는 마을’ 전을 성료했다.
전시 서문은 “기록하는 우리들은 계속해서 말을 건네고 두드리며 견고한 벽 너머 보이지 않는 시간을 세우며 착취와 폭력의 시간이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남기를 바란다. 지도에 없는 마을, 그 길 위를 따라 함께 걷는 이들이 발걸음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비추는 길이 되길 바란다”이다.
이번 아키이브 전은 부산지역의 김경화, 송진희 여성작가가 디렉터와 전시를 맡아 완월동의 역사와 그곳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담아냈다. 또 같은 장소에서 부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인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예술로 말하는 법’ 전시가 함께 열려 관람객들이 시민 아키비스트와 완월동 성매매 여성들의 작품도 함께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관계자는 “가슴 아픈 과거의 역사를 지나 현재 진행형으로 존재하는 완월동 공간에 대해 시민들은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고, 그곳을 살아온 여성들의 삶과 앞으로의 변화에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 주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시민 아키비스트들이 도슨트로 참여하면서 관람객들이 전시의 취지와 의미를 더욱 깊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뿐만아니라 여성들의 ‘자활은 변화다’ 손 그림 작품에 시민들도 직접 손을 그려 벽 한가득 연대와 응원의 메시지를 채우기도 했다.
전시 마지막 날인 11월 6일에는 탈성매매 여성들과 더불어 노래 만들기를 함께 했던 뮤지션 ‘이내’의 공연이 있었고, 여성들의 시를 바탕으로 한 ‘언니’라는 노래를 선보였다.
“나 태어난 곳, 여기에서 먼 시간 어릴 적 친구들과 뛰놀던 산과 들 어쩌다 놓쳐버린 친구얼굴, 그애도 내 생각할까...하략”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완월동이라는 성 착취공간의 진정한 주민이자, 피해자, 그리고 기억의 주체인 언니들의 차마 꺼낼 수 없었던 삶의 기록을 위해 이민아 시인과 함께 시를 쓰고 동네가수 이내와 함께 노래를 만든 것이다.
또 전시 디렉터 김경화 작가와 부산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이동근 사진작가, 김민정 회화작가, 이민아 시인과 더불어 작가 대담을 진행했다. 살림 관계자는 “이 시간은 참여하신 분들도 눈물을 흘리는 감동적인 시간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전시기간인 11월 2일부터 6일까지 성매매 방지법 제정의 의미와 여성들의 인터뷰,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언니; Unnie’(2007년작)의 앵콜 상영이 있었다. 부산 성 산업 현장의 실태를 보여준 다큐멘터리 ‘언니’는 계운경 감독이 연출하고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이 공동제작한 작품으로 활동가들과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활동을 볼 수 있었다. ‘언니’는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AND상을 수상하며 공식 상영되기도 했다.
한편, 한반도 최초의 유곽이자 한때 동양 최대의 성매매 집결지였던 부산 완월동은 120년 역사 속에 현존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는 공창으로, 한국전쟁 때는 UN군과 미군의 위안소로 국가가 관리 통제하며 여성들을 이용해 일본인과 미군들을 상대하는 외화벌이 수단으로 악용했던 곳이다. 1980년대 행정구역 명이 충무동으로 변경됐다.
살림 관계자는 “앞으로도 완월동을 현재가 아닌 역사로 만들고자 하는 아카이브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며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