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 혼인빙자간음죄
한 때 탤런트 옥소리씨의 간통죄여부를 두고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5:4의 의견으로 가까스로 합헌의 결론이 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혼인빙자간음조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6:3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위헌'이라는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얼핏 보기에는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는 비슷해 보이지만 결과가 상반되게 나온 데는 이 두 죄가 규율하는 대상에 적잖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혼인빙자간음죄는 남성만 처벌하고 여성을 객체로 둬 평등의 문제가 있지만 간통죄는 기혼 남녀 모두에게 같은 의무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헌재는 아직 간통죄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해체를 초래하거나 그럴 위험성이 크다는 점에서 예방의 필요성있다는 의견이고, 혼인빙자간음죄는 개인의 성적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최소화되어야한다는 논리가 뒷받침되어 위헌 판결이 났다. 이번 판결은 성도덕 유지라는사회적 법익 못잖게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라는 개인의 법익이 더 중요시되는사회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여성계의 의견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윤리와 도덕 문제, 법이 제어할 수준 아니다
'순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기소율도 낮아 실효성 없어
“아내는 폭탄선언을 했다. 아내의 얘기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
다는 것이었다.”
다는 것이었다.”
박현욱 작가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중결혼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우리는 매체를 통해 남편이 두 명의 아내를‘ 본처’와‘ 첩’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거느리는 상황을 익히 봐왔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문제 유발자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다.
또한 양자택일의 일방적인 외도가 아니라 아내는 두 남편을 모두 사랑한다. 가족제도의 틀이 단단한 한국사회에서 이런 줄거리는 다소 발칙하다. 출간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이책은 손예진, 김주혁 주연의 영화로 각색되면서 또 한 번 인기몰이를 했다.
사람들은 야유 대신 신선한 충격속 관심을 보였다.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다. 급변한 시대의 반영으로 지난달26일 헌법재판소는 '혼인빙자간음죄'를 위헌 심판했다. 재판관 9명 중 6명이 위헌에 손을 들었다.
필자는 이번 결정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사적 영역에 대한 법적보호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결혼을 빙자한 대상을 국가가 처벌한 것은 도가 지나쳤다. 법집행 통계도 폐지의 의미를 더해준다. 기소율이 2006년 41건, 2007년 33건, 2008년 25건으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도 매년 10명 안팎이었다고한다.
또한 기소된 사건들은 단순 혼인빙자가 아니라 금품편취를 동반한경우가 많았다.
만약 혼인빙자간음과 동시에 금품편취, 폭력 등이 이뤄진다면 간음죄가 아닌 사기죄나 강간죄 등의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만약 혼인빙자간음과 동시에 금품편취, 폭력 등이 이뤄진다면 간음죄가 아닌 사기죄나 강간죄 등의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특히 '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에게 강요돼 온‘ 순결’이데올로기의 표상이자‘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구태하다. 1953년 제정된 혼인빙자간음죄형법 304조는 “혼인을 빙자하거나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해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징역 또는 500만원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본적으로‘ 여성’을 피해자로 국한시키고 보호의 대상으로 간주한 것이다. 남성은 성적 자기결정권이있는 존재, 여성은 지극히 수동적인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구시대적인 성인식을 전제한 법의테두리에 개인이 갇힐 이유가 없다.결혼으로 인한 사랑이 거짓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혼인 전 관계’는 보통 여성과 남성 모두 자유의사에 따라 행한 일이다.
시대에 따라, 세대가 낮아질수록 연애관·결혼관은 더욱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 가족의 유형도 제도를 벗어나 고차원인 모습을 띤다. 기존 사랑에 대한 신뢰가 가치를 잃고, 건전한 성 문화가 붕괴되는 것은 우려할 만하나 이런 현실은‘ 법’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다만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윤리와 도덕의 차원 아닌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방향은 천편일률적인 법의 영역을 넘어서 다각도로 모색돼야 할 것이다.
실질적 남녀평등법 위배 '위헌'은 당연
성적 유린 남성에 대한 제도적 보완 장치는 있어야
혼인빙자간음죄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난 며칠 뒤.... 본상담소에서 진행된 교육도중에 40~50대 여성들과 이 판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요지는 혼인빙자간음죄가 여성을 위한 법인데 왜 이 법이 폐지되고 또한 폐지된 것에 대해 여성단체들이 왜 환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이 법이 폐지되고 나면 우리 여성들은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남자들은 성관계를 가지기위해 여성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가 당하는 경우는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여성이 당당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여성의 성적자기 결정권이 소화되어지는 사회라면 이러한 법은 정말 터무니없는 법일것이고 이러한 것에 의문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성에 가해지는 성적 폭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여성이기에 당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기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것도 어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법제도란 어떤 의미에서 그 사회의 가치관과 태도 등을 축약해 놓은것이라 볼 수 있을 같다. 1990년대 이후 우리사회에서 여성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 오면서 여성에게 부정적인 법들의 개정이 있어왔고 또 한편으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폭력을 근절하기위해 성폭력특별법,가정폭력방지법, 성매매방지법등이 제정되었다.
또한 여성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세상을 뒤집어 보기 위한 활동들을 펼쳐왔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지금껏 맞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뒤집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난 11월 26일 헌법재판소에서는 혼인빙자간음죄(형법제304조)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접하면서 혼인빙자간음죄를 여성의 시각에서 뒤집어보자.
과연 혼인빙자간음죄가 여성을 위한 법이었던가를 보면 혼인빙자간음죄는 그동안 기소되거나 처벌 받는 경우가 거의 없어 법적 실효성이 매우 낮았고 그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하는 것 자체로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훼손하였다고 볼 수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음행의상습 없는 부녀’만이 고소를 할 수있어 여성이 남성으로 당한 피해에 대해 제기를 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성이 먼저 검열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 혼인빙자간음죄 법률조항이 남녀평등에 반할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부인하고 있어 시대에 역행하기에 위헌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환
영할 만하다.
영할 만하다.
물론 아직도 여성의 지위가 낮기에 앞서 여성들이 우려한 부분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기도 하다. 즉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하는 남성에 대해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 여성들 스스로도 누구 때문에 내인생이 망쳐지는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인이 자신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더불어 여성의 성적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모두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09년 12월 23일 제2호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