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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본 신대문자(神代文字)는 한글의 “위작僞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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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앞두고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한번 입증하는 기록문서를 토대로 한 연구책자가 나와 흥미롭다.
 
일본인들이 신사나 박물관에 모셔두고 숭배하고 있는 ‘신대문자(神代文字)’는 일본국학자가 우리 한글을 도용해서 만든 위작이라는 연구서적이 나와 눈길을 끈다.
 
오랜세월 한일문화 역사를 연구하며 부산외대 교수 재직 시절 이미 ‘日한고대문자연구’를 통해 밝힌바 있는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소장(전 부산외국어대교수. 철학박사 학술박사)은 최근 일본어판 서적을 출간했다.
 
신대문자는 신대(神代)부터 일본인들은 신사에 모셔져있는 글이라하고 이 글을 섬기는 자는 학문에 대통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열도 곳곳의 신사에서 섬기고 있는 문자이다. 책 표지 아랫부분에서 보시다시피 누가봐도 신대문자는 한글이다.
 
누가 이 글을 만들었나
 
그렇다면 어떻게 일본이 한글을 사용하고 섬기게 되었을까. 김문길 교수는 18세기 히라다 아쯔다네라는 사람을 꼽는다. 히라다아쯔다네는 무가정치 1200년의 역사를 못마땅히 여기고 국학운동 즉 천황정치를 주장하고 일본고대학문을 파헤친 사람. 고대학문을 파헤치면서 우리글인 한글을 가지고 신대때 있었다고 주장했다. 히라다가 그의 무가정치를 타파하기 위해 제자들을 동원하여 천황제국가를 가르쳤는데 그의 제자들이 500여명이 일어나 1867년 명치유신을 일으켰던 것. 즉 우리글인 신대문자를 위작한 장본인이다.
 
명치유신과 신대문자는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명치유신은 종교개혁으로 유교 불교를 배척하고 신도(神道)를 주장하여 천황을 신격화하는 유신혁명이다. 유신체제에서 걸림돌이 되는것은 일본언어 카타카나 히라카나인데 이는 한자에서 만들어 유교불교를 배척하는 신정부는 불교유교에서 만들었던 문자를 없애버리고 명치유신때 스승이 가르쳤던 신대문자를 사용하고 신정부때 사용했으며 당시 신대문자는 지금도 섬기고 있다.
 
김문길 소장은 ‘원래 일본 신궁은 다신교이다. 히라타 아쯔다네 학문이 명치 유신에서 국가신도로 전개되어 명치국가신도는 음과 양의 양이론을 주장하고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전환하여 아라히도 가미(現人神)가 되었다“며 음양오행설에서 창제된 한글을사용하지 않을 수 없어 변형 위작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일본의 고관대작 가운데 신대문자를 사용해서 총리대신이 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시코큐지방에 가면 신대문자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고, 사용자가 총리대신까지 되었다고 주장하는 족보도 발견됐다. 총리가 된 자는 미키다케오(三木武夫) 또는 부총리 고도타 마사아끼도 있다. 이외에도 15명의 유명한 인물이 배출되었다.
 
한편 이외에도 신대문자가 한글에서 위작되었다는 증거는 지금도 교토 금비산(金毘産)에 있는 비문에 생생히 새겨져있다. 1867년 12월 9일 1200년 무가정권이 무너지고 명치신정부 인물들이 다이세이호간 (천황에게 정치를 받는식)식을 오리고는 신대문자의 비문(높이 3미터 폭 1미터)을 만들어 금비산(金毘産)에 올라가 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지냈다. 이 비문이 아직 남아 전국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김문길 소장은 “한글은 원래 단군가림토 문자에서 1443년 훈민정음이 되고 단군의 글이 일본에 들어가 신대문자가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일본 곳곳에 남아있고, 오랜기간 고대문자 연구를 해오면서 일본 열도 2000여 곳을 발로 뛰며 직접 다년간 조사해온 생생한 증거물들이 뒷받침하고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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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일본현지에서 출판한 김문길 한일문화 연구소 소장의 일본신대문자 연구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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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일본신대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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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교토금비산에 있는 한글모양의 신대문자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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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한글에서 위작한 가다카나 일본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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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혜민 기자
[2015924일 제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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