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7일

종합

아름답고 아련한 소월시들은 한민족의 얼이자 정신


3333.png

해운대 우동의 협성르네상스 아파트 101동 앞, 작은 잔디밭에 소월 시비(詩碑) ‘산유화가 서있다. 네모난 커다란 기단석 위에, 마치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지도를 닮은 듯한 하얀 돌이, 시를 품에 안고서 오가는 출입자들을 반긴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유화’(山有花)4연으로 이루어진, 쉬우면서도 한없이 깊은 철학시다. 존재의 생멸과 순환을 꽃과 새, 계절의 오고감을 통하여 담담한 수채화로 그려내고 있다. 시 제목으로 붙은 산유화진달래꽃이나 벚꽃처럼 특정한 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생명이 있는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를 일반화한 개념이다.

소월시를 읽을 때는 소리내어 반복하여 읽되 띄어쓰기 하나, 구두점 하나에도 온 신경을 모아야 한다. 예를 들어, 1연 첫행의 산에는 꽃 피네피네사이에는 반드시 간격이 벌어져야한다. 모든 존재가 꽃한송이를 피울 때는 그만큼 난산(難産)의 고통을 겪는 것이고, 첫 송이를 피워낼 때가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선 물론이고 교과서에조차도 이 꽃 피네꽃이 피네로 잘못 적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진에 보이는 협성아파트의 이 소월시비는 소월의 뜻을 살려 정확하게 연과 행의 구분, 띄어쓰기 준수 등을 지키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든다.

꽃이 피는 순서가 , 여름, 가을이 아니라 , , 여름혹은 여름, , 일 수 있다고 소월이 말하는 까닭도 세계의 순환과 앞뒤 구분없는 영속(永續)에 그 비밀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봄부터 꽃이 핀다고 착각하는 건 우리들 인간의 의식과 언어의 유희일수 있다는 생각을 시비 앞에서 해본다.

이 시의 2연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는 저만치혼자서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모두 고독하며, 부모형제나 부부 사이라고 한들 우리는 제각각 떨어져서 혼자서실존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연의 타자를 상징한다. 소월시는 생활의 주변 소재들과 ’ ‘’ ‘등에 상징성을 부여한 상징시가 의외로 많다. 외롭고 처절한 실존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 순간 이웃 존재와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존재간의 그같은 얽힘과 섥힘이 여기선 로 표현되고 있다.

시비 옆의 여윈 소나무 곁에 같이 서서 산유화를 소리내어 읊는다. 노래의 형식과 의미가 완벽하게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놀라지 않는 분이 없다. 우선, 시와 사람의 호흡의 관계를 보여주는 음보(foot)부터 살펴보면, 전체 텍스트의 정중앙인 2연과 3연 사이를 기준으로 2-1-2-1, 1-1-1-3 // 3-1-1-1, 2-1-2-1로 음보 구성이 정확하게 대칭미를 이루고 있다.

형식뿐 아니라 의미구조도 데칼코마니(decalcomanie). 1연과 2연은 생명의 탄생과 고독, 3연과 4연은 존재 간의 관계망과 생명의 소멸을 노래한다. 다만 이 모든 게 겉에서 바로 보이진 않는다. 시인이 자신의 가슴 속에, 그리고 저 시비 속에, 꼭꼭 숨겨놨기 때문이다.

‘33세에 요절한 청년시인인데 어떻게 이렇게 원숙하고 깊을까그런 놀라움을 감추고, 근처의 반여동으로 향한다. 소월자료 수집가이자 서지학자인 구자룡 부천문학도서관장이 10여년 전에 밤기차를 타고 부산을 왔가갔다하며 조사해놓은 1차 자료에 의하면, 해운대구 반여동 행복 벽화마을이라는 곳에 소월시비 가는 길이 있어야 옳다. 그런데 이번에 이 지역의 소월시비 조사를 맡은 국제소월협회 정인옥 이귀희 회원에 따르면, 그동안 재개발로 철거되었는지 골목골목을 아무리 뒤져봐도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단다. ‘당신은 나의 별이라고 씌여있는 귀여운 벽화 한 장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555.png

 

우리는 해운대를 떠나 부산진구 초읍동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으로 간다. 공원입구에 우리의 예상대로 진달래꽃시비가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돌방석 위에 여러 시인의 시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중에 국민시 진달래꽃한 편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 보기가 역거워...”로 시작되는 시 맨 앞과 맨 뒤의 여섯 줄만 보이고 시의 몸통 부분은 없다. 할머니 두 분이 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히 앉아계시다가, “뭣하는 사람들이지?”하는 표정으로 우리 쪽을 힐끗 쳐다보신다.

초읍 어린이대공원 안쪽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시가 있는 숲이 있다고 했다. 거기에 소월시가 있다고 하여 협회의 이훈, 정금란, 김은희 세 분이 땀을 흘리며 올라가 봤다. 그런데 시 숲도, 소월의 흔적도 여기에 없는 데요한다. 횡한 숲바람 뿐이라는 거다. 근처의 공원관리인에게 물어봐도 시 비석이요? 그런 건 모르겠는데요하더란다.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김소월의 아름답고 아련한 시들은 그 자체가 한민족의 얼이고 정신이다. 나라 전체에 소월 시비를 더 세우고, 곳곳에서 기리고, 곳곳에서 국민정신과 시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그래도 모자란 판에 이미 있던 시비마저 없애버렸다니! 이런저런 아쉬움을 남긴 채로, 우리는 또다른 소월시비를 찾아서 다음날에 서구 서대신동 구덕문화공원으로 같이 가보기로 합의를 보았다. (다음호에 계속) 

 

이재혁(국제소월협회 회장,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