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로 올라가는 구불 길엔 연분홍과 노랑색 봄꽃들이 만개하였다. 구덕문화공원 입구엔 을숙도를 사랑한 어느 화가와 한 다인(茶人)에게 바치는 추모비가 서있었다. 국제소월협회 회원 10여명이 이른 아침에 모였다.
‘국제신문’ 디지틀 영상팀에서 나온 두 분의 젊은 PD가 우리와 동행했다. 구자룡 부천문학도서관장의 선행 조사에 따르면, 이 공원 ‘명상의 숲’이라는 곳에 소월시 ‘가는길’ ‘산유화’ ‘진달래꽃’이 있어야했다. 우리 일행은 소월의 시비(詩碑)를 만난다는 셀렘을 안고 산길을 오른다. 숲속엔 편백나무 향이 가득했다. 가파른 산책로 중간중간에 진달래꽃 군락지가 바위를 안고 연분홍으로 피어있다.
다들 아이들마냥 반가워하며 꽃잎을 배경으로 서로서로 어울려 사진을 찍고 이야기 꽃이 핀다. “여기 시비가 있어요!” 저만치 앞서가던 누군가가 소리를 지른다. 소월시비 ‘가는 길’은 그렇게 원예암석원과 인공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골짜기에 있었다. 다른 시인들의 몇몇 시도 거기 같이 있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최미경 회원이 낮게 시를 낭송한다. 커다란 둥근 바윗돌에 새겨진 ‘가는 길’은 정성들여 조성한 티가 나고, 세월의 이끼가 묻어 묵직하니 좋았다.
산의 여기저기를 오르내리며 소월의 다른 소월 시비도 찾는다. 그런데 ‘진달래꽃’과 ‘산유화’는 어디서도 보이지않는다. 공원관리소에 가서 물어봐도 “글세, 잘 모르겠네요”라는 대답 뿐이다. “예전에는 여기에 소월시비가 더 있었느냐”고 물어도 모르겠단다. 공원지도에도 시비에 관한 별다른 표식이 없고, 기록도 안해두나보다. 이래가지곤 ‘문화도시 부산’ ‘문화대국 대한민국’은 멀고 힘든 꿈일 것이다. 모두가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하니까,
안명석 회원이 “저 아래에 있는 대신공원에 소월시가 있던 걸 본 적이 있어요”한다. 우리는 차로 10여분을 이동하여 대신공원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에도 소월시비는 없었다. 혹시나하여 공원 윗길을 한참 올라가봐도 없다. 원래 있었는데 사라졌는지 관리소에서 그것도 확인할 수도 없다. 민족시인 김소월의 시는 우리의 얼이요 정신이다. 중요한 것을 모두 내다버리면서, 우리는 무엇을 쫓으며 어디로 이렇게 달려가는 걸까.
국제신문 영상팀과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국제소월협회의 소월시비 탐방행사의 목적과 의의등 에 대해 간단히 인터뷰를 하고, 점심 장소로 이동한다. 안 회원이 “우리 동네에 다들 오셨으니 오늘은 제가 대접하겠다”며 단골집으로 안내한다. 입구에서 계단을 걸어 약간 내려가는, 오래된 숯불돼지갈비 집이었다. 대단한 맛집이었다.
여기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고 옆에있는 카페로 옮겨 오늘 행사를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카페주인인 히로세 유이치(고대 한일교류사 연구자, 고고학박사) 씨가 우리를 반긴다. 그가 소월시인의 ‘초혼’을 일본어로 낭송한다. 부산에서 대학강의도 하고 몇십년을 살았다해도 일본인은 일본인일터, 나는 외국인의 영혼에 비치는 ‘초혼’의 느낌이 궁금하였다. “외로워요”라고 히로세 씨가 한마디 한다. 그리곤 이어서 “따뜻해요”한다. “그렇구나!” 싶었다.
선사시대 한일교류사를 공부한다는 히로세 박사의 두 마디에서 나는 ‘국제시인 김소월’의 가능성을 거듭 확인하고 확신한다. “내가 한 일이라곤 사람들에게서 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죽어간 존재들에 대해 연민을 노래한 것이 전부”라고 읇은 러시아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쉬킨(1799-1937)이 히로세 씨의 착한 얼굴 위에 겹쳐진다. 일본어로 번역된 이 ‘초혼’을 들고 안 회원은 내일 일본으로 출발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 마이쯔루에서 열리는 3일간의 우키시마호 희생자 추도행사에서 김소월의 ‘초혼’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낭송하고 희생자들의 혼을 위로할 거라고 한다. 우키시마호 참사는 1945년 8윌 24일 일본 교토의 마이츠루 항 근처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범죄다. 탄광과 공사장이 많은 일본 북동지역에서 강제징용에 시달리다 일본 해군배에 실려 부산으로 귀국하던 우리 강제노동 동원자와 그 가족들, 죄없는 한인 수천여명을 일본 전범들이 자기들 범죄를 은폐하려고 본토 바다로 끌고가서 수장시켜버린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나는 그 우키시마호의 ‘초혼’을 만나러 부산 남천동 KBS 뒤편의 ‘남치이 인문학 거리’로 간다. ‘인문학 거리’라는 거창한 이름이 머쓱하게 길은 초라하다. 김소월, 안도현,이해인, 김광균 시인의 시 몇편이 목판 비슷한 데에 초라하게 새겨져 골목에 걸려있을 뿐이다. 근데, '초혼'속에서 봄나비는 왜 화려하게 날아다니는지...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보는 한국역사>에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하였다. ‘초혼’을 동심으로 채색한건 인근의 초등학교를 의식한 모양이다. 생각이 짧고 얕아도 너무 얇다.
몰론 시해석은 시인과 작품을 넘어 독자의 반응인 것도 사실이고, 1920년대와 지금은 시대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초혼’은 밝고 천진한 동시가 될 수 없다. 사진을 몇장 찍고, 에드바르트 뭉크(1862~1944)의 '절규'를 떠올리며 씁쓰레하게 뒤돌아선다. 금정산에도 소월시비가 있다던데, 내일은 거기로 가봐야겠다.
이재혁 국제소월협회 회장, (사)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