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명산인 금정산에도 민족시인 김소월의 시비(詩碑)가 있다는 반가운 소문을 확인하러 산을 오른다. 우리는 장전역-법성사-시밭골을 지나 산성으로 가는 고별대 근처를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그런데 몇 년 전 이곳을 조사한 구자룡 관장(부천문학도서관장,서지학자)의 이전조사에 따르면, 장전동 근처에 ‘시밭골 사람들’이라는 곳이 있고, ‘엄마야 누나야’ 시비(詩碑)가 있어야했다.
그래서 법성사를 이번 조사에 나선 우리 국제소월협회 회원들의 집결장소로 정한건데, 아무리 왔다갔다해봐도 ‘시밭골’도 ‘엄마야 누나야’도 찾을 수 없었다. 할수 없이 차로 이동하여 근처의 광명사에 주차하고서 작은 계곡을 지나 삼밭골 쪽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거기서도 소월은 없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동네 등산객들을 붙들고 물어봐도 고개를 절래절래한다.
우리는 금정산을 포기하고 산 반대쪽의 화명 금곡 쪽으로 이동 하기로 했다. 우리는 맑은 숲향 가득한 금정산 고개를 넘어 산성마을을 거쳐 낙동강 쪽으로 내려갔다. 구포벌이 내려다보이는 낙동강 가의 금곡 벽산 한솔아파트 앞에서 내린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화단가 곳곳에 박목월, 이해인, 노천명 등의 시가 적힌 작은 시비가 꽤나 여럿 있다.
그중에 우리가 찾는 소월 시비는 한솔아파트 후문쪽의 상가 앞에, 그러니까 103동 옆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야 누나야’ ‘눈 오는 저녁’ 두 편의 소월시 앞에서 우리는 낮게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한다. 그리곤 상가 어느 가게의 아주머니에게 부탁하여 단체 사진을 찍는다.
점심 식사는 차로 7~8분 이동하여 어느 이름난 숯불갈비집에서 손길모 회원께서 내셨다. 우리가 살펴본 소월시를 주제로 화기(火氣) 옆에서 화기(和氣)넘치는 시간을 잠시 갖고, 우리는 다시 ‘엄마야 누나야’를 찾아 북구 금곡동의 주공아파트 단지로 차를 돌린다.
아파트 단지가 워낙 넓고 커서 어디에 소월시비가 있는지 찾기가 어렵다. 이전 자료를 보며 인터넷을 다시 뒤지고, 3단지와 4단지 관리사무소에 전화도 해보고, 지나가는 경비 아저씨와 근처 사무실에 들어가 물어도 보면서, “4단지 앞쪽에 무슨 시비가 있더라”는 얘기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반가운 맘에 달려가보니 정말 그랬다. ‘엄마야 누나야’ 는 4단지 402동 앞의 작은 어린이 공원시설 화장실 쪽에 있었다. 공원 이름은 ‘무지개 6 어린이 공원’이라고 했다.
다행히 이곳의 시비는 다른 곳에 비해 크고 웅장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시비를 세워만 놓고 아무도 관리를 안하는지 비가 세월의 때 속에 커멓게 방치되어 있었다. 물질적으로만 번듯하고 번쩍번쩍하다고 우리 사회를 문명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내면이 볼품없고 초라한 사막같은 이런 현실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어 우리들의 마음에 다시 푸릇푸릇 금잔디가 돌아나오길 기대해본다.
화창한 날을 하루 골라 5월의 어느 휴일에 영도 청학1동 해돋이마을로 향한다. 본격적인 시비 형태는 아니지만 이전 조사에서 거기에 ‘산유화’와 다른 시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벽화는 없었다. 우리가 하도 이 골목 저 골목을 뒤지고 다니니까 어느 주민이 나오셔서 딱하다는 듯이 소식을 전했다. “이전에는 여기 제 4지구의 담벼띾에 시같은 게 더러 있었는데 그 후에 도로 개통 공사와 주택 정비공사로 모두 뜯겨나갔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2023년 2월18일에 시작되어 두어달 간 지속되었다. 생활에서 소월을 사랑하고 실천하며, 소월 시를 통한 정서와 감성의 회복이 탐사의 목적이었다. 아울러 이전의 기록을 현장에서 재확인하여 2023년 현재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번 탐사 과정에서 우린 부산시내 여덟 곳에 총 10점의 소월시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별로 보면, ‘진달래꽃’과 ‘엄마야 누나야’가 각각 3점, ‘초혼’ ‘산유화’ ‘가는 길’ ‘눈오는 저녁’이 각각 1점이었다. 이는 이전의 기록에 나타나는 14곳 21점에 비하면 절반에 해당하는 형편없는 수치이다. 시비들은 재개발과 도시정비 공사 등 경제논리에 밀려 없어지거나, 관리소홀로 손상되거나 아예 관리가 되지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부 시비는 시비를 누가 언제 세웠으며 왜 세웠는지 배경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몇 개의 작품에 편중되어 있다. 이는 국민 대표시인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며, 우리가 사는 ‘문화의 세기’에도 맞지않는 삶의 방식이라고 하겠다.
소월 시비는 지금보다 많아져야 옳다. 그리고 시비를 세우거나 관리하는 문제 등은 전문성있는 단체에 맡기는게 좋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시를 새길 때는 부산과 어울리는 바다시 등을 고루 새기는 게 좋겠고, 시비 건립 주체와 건립배경 등을 자세히 뒷면에 적는 게 좋겠다. 아무쪼록 우리의 생활 현장 주변에 국민시인의 시비가 많이 세워져서, 현장 시낭송회, 현장 글짓기 대회 등을 통하여 시민과 학생의 정서교육, 문화소양교육의 훌륭한 현장 자료로 활용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재혁 국제소월협회 회장, (사)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