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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부산 옛길 삼켜버린 자본의 이기 비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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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영 지음/호밀밭/240/16800

지역민이라면 한 번쯤 스쳐 갔거나 작은 추억이라도 서려 있을 법한 부산의 길들을 발품으로 기록한 책이다.

부산일보 논설위원으로 오랜 시간 활동했고, 현재는 일선 선임기자로 활동하는 저자는 오 년 전인 2018, 도시화와 산업화로 폐기된 옛 백 년 길을 찾자는 의도로 부산의 길을 걸었다. 없어진 길이 있다면 위령제라도 지내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때의 여정에서 저자는 자연과 인간의 습성에 따라 생긴 길들의 저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길 위에서 부산의 역사는 길에 담겨 있다고 확신했고, 여로에서 만난 토박이들에게선 고향과 터전의 내음을 맡았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2023, 저자는 또다시 부산 길을 걸었다.그 사이 아파트 광풍이 세차게 불었기에 하늘을 점령한 아파트가 옛길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란 염려를 안고. 아니나 다를까, 다시 나선 여로에서 저자는 그토록 집요하게 옛날 모습을 지탱했던 옛길불과 오 년 만에 손을 드는 현장을 목도했다.

책은 동해선 개통이 부동산 욕망에 불붙인부산교대~송상현 광장, ‘지우개로 지운 칠판같아진 우암동 소막마을, ‘찢기고 잘려나간 삶의 흔적이 처참한 지겟골~못골 옛길 등 재개발과 아파트 공사로 황폐화된 7곳을 우선 톺아본다. 또한 덕천역~구포장의 감동진(甘同津)나루터, 신평역~에덴공원 길에 돌탑으로 덩그러니 남은하단포구, 재개발 굉음에 문학·음악의 낭만도 사라진 일광면 해안가에서는 우후죽순 들어서는 건물에 밀려나고 지워진 옛길에 담긴 추억과 사연을 이야기한다.

낫개역~몰운대 길에 공룡이 뛰어 놀았다는 두송반도, ‘북항 변화에 빨려 들어가는 배후지영도 봉래·남항길, ‘도시화에 묻힌전포카페거리 등에서는 과거와 현대, 변화와 정체 사이에 놓인 다양한 도시의 흔적을 다룬다

책의 곳곳에서 삭제돼 버린 현장을 속속들이 답사한 저자의 탄식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자본주의의 생리상 오 년이란 세월의 간격은 어찌 보면 현대 도시에서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저자는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최근의 오 년은 거대한 변형의 시간적 형상이다라고 일갈했다.

지명의 유래와 어원, 지역의 역사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유익하고, 저자 특유의 현실 풍자적인 비유는 문학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알던 그 길도 풍전등화는 아닌지 더 늦기 전에 만나보자. 

박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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