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여성지식인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집대성한 연구서가 나왔다.
대한제국시기에서부터 식민시기를 걸쳐 개별 여성지식인의 현실 인식과 사회활동에 관한 연구를 통해 한국 근대 지성사와 한국 근대 여성사의 맥락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그동안 각주없이 여러 명의 한국 근대 여성인물에 대한 개요를 모아놓은 책자나 한 인물에 대한 전기류는 다수 있지만 각주와 함께 자세하고 다양한 자료를 제시해 근거가 명확한 연구논문으로 구성된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성은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교 교수가 펴낸 ‘한국근대 여성지식인’(경인문화사. 2023)에는 당대 남성지식인이나 오늘날 여성과 비교해도 손색이없는 뛰어난 수준의 여성 인재들로 학력과 경력, 활동부터가 남달랐던 여성지식인 총 12명의 삶의 궤적이 담겨있다.
특히 시대적으로 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여성지식인들은 일본의 지배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가난한 식민지 모국을 해방하여 독립국가를 건설하고 열악한 여성의 지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 그러면서도 민족의 독립과 민족운동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여성운동보다 앞세우기도 했다.
격동기 많은 선각자들이 반민족일제협력행위에 대해 비판을 받으면서 공과가 제대로 다루어 지지 않았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전모를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서를 찾아보기 어려워 호기로운 마음으로 연구를 시작한 저자는 아주 평범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들은 진짜 친일파였을까. 선각자로서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살았을까. 일제 지배하의 감시와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서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떻게 가정과 직업, 여성단체 활동을 병행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독신여성들은 어떻게 그 어려운 일들을 해냈을까. 누구나 궁금하지만 객관적 자료확보를 통해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궁금증을 풀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터.
저자는 1900년대 외국 유학파 신여성의 등장에서부터 1920년대~1930년대 농촌활동과 독립운동, 여권 의식의 성장과 여성교육, 여성운동과 사회사업 등 총 4부로 구분해 12명의 인물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과 여성인권 및 여성지식인들의 활약을 조명하고 있다.
제1부는 근대교육과 여성 지식인의 등장에서 하란사와 윤정원을 제2부는 민족운동을 중심주제로 최선화의 망명생활과 독립운동, 장선희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을 제3부는 교육을 주제로 차미리사, 임영신, 김활란, 방신영의 삶과 활동을 다루고 있고, 제4부는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사상가 황신덕, 고황경의 삶을 다루었다.
저자 김성은 교수는 “내외법과 조신함을 지고의 선으로 여겼던 조선시대 여성상에서 벗어나 때로는 현실의 파도와 맞서 싸우고 때로는 시대의 물결을 타고 재빠르게 나아가는 근대여성지식인의 실상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엇보다 “해방 후 남한의 정계, 교육계, 사회단체 곳곳에서 맹렬하게 활동했던 여성지식인의 이전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고, 식민지 시기 이들의 인맥과 경험은 해방이후 이들의 행보와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연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덧붙여 김 교수는 “한국 여성지식인 탄생의 연결고리는 외국인 여선교사들과 초기 여성 기독교인들이 근대적 신여성의 출현의 고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며 “당대 다른 여성 지식인들은 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근대 여성지식인들의 활동이 해방이후 어떻게 이어졌는지도 궁금하다”며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식민지 지배와 가난, 여성이라는 민족적 경제적 사회적 악조건을 헤치고 지도자로 성장한 근대 한국 여성지식인들이야말로 한국여성사를 개척해온 장본인들이죠.” 저자 김성은 교수는 오늘날 일가정양립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근대 여성지식인들은 한국 여성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역사라고 말한다.
유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