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여성역사관 개관 8주년 여성독립운동가 특별전
부산 수영구 소재 민족과 여성역사관은 이달 말까지 박차정 열사를 비롯,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의 사료를 모아 특별 전시하고 있다.
개관 8주년을 맞아 애국여성 독립운동가 사진전을 열고 있는 김문숙 부산정대협회장
1860년대 윤희순 ~ 박차정 등 여성독립운동가 삶 조명
애국·구국운동에서 출발한 여성운동의 역사 한눈에
애국·구국운동에서 출발한 여성운동의 역사 한눈에
사단법인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회장 김문숙)는 「민족과 여성역사관」개관 8주년을 기념, 9월 말까지 여성독립운동가 사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대륙의 들꽃 박차정 의사를 중심으로 교육자 김순애, 이애라, 김마리아, 박현숙, 유관순, 윤희순 등 총 7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과 궤적을 상기하는 뜻깊은 전시회.우리에게 잊혀진 또는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 그들의 행적을 재조명해보는 기회가 되고있다.
가장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있는 박차정의사(1909~1944)는 그동안 이데올로기 문제로 그 공로와 행적이 빛을 보지 못하다가 지난 1995년 김영삼 정부시절 국민훈장을 받는 등 역사적 재인식을 받기 시작했다.
동래출신은 박차정은 일신여학교 재학시절부터 수 차례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하여 그때마다 감옥살이를 하였고 교지인 '일신'2집에 '철야'라는 소설을 발표, 호평을 받았다. 사회에 진출한 후 동래 청년회 부녀부장을 2년동안 지낸 뒤 상경하여 1928년 근우회 선전부장을 맡던중 광주학생운동때의 막후활동 관련자로 일경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겪었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3개월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이후 중국에 망명하여 북경 화북대학을 졸업하고 의열단을 주도하는 김원봉과 결혼,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 즈음하여 중국에서 조선여자의용군을 조직하고 여성의 몸으로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전개하던 중 곤륜산 전투에서 36세의 젊은 나이에 장렬한 최후를 맞은 독립운동가다.
중국의 이종인과 임시정부의 조소양은 의열단 내조자이자 항일전사로 순국한 그녀의 추도사를 중국의 신문에 기고한 바 있다. 그의 유해는 현재 김원봉의 선영이 있는 밀양에 안장되었으며, 부산 금정구 금정문화회관 만남의 광장에 그의 기념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이외에도 1889년 고종 26년 출생하여 1976년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황해도 장연출신의 김순애여사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 부산이 기억해야할걸출한 여성지도자의 자료도 전시돼 있다. 부산 초량소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를 몰래 가르쳤고 붙잡힐 기미가 보이자 1911년 만주 통화현으로 망명,흑룡강에서 국립여자사범학교 학감을 지냈다.
상해에서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회장에 선출되엇으며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적십자회가 상해에서 창설되자 이사로 취임하고 다음해에 부속간호학교를 설립하였다.
또 1920년 독립신문을 배부하여 독립정신을 고취시켰고 독립군자금을 모금, 일본정부 대신 친일 한국인의 살육을 목적으로 하는 대의용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1934년에는 상해 한인여자청년동맹의 간부로 활약하였으며 1943년 2월 충칭에있는 각계 각파 부인 50여명과 함께한국애국부인회재건대회를 개최,주석으로 선출되고 국내외 부녀와 총단결하여 전민족해방운동과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민주주의 신공화국건설에 적극 참여하여 분투하자는 강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여사는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된 인물이기도하다. 역시 교육자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애라(1898~1921)여사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화학당 중등과를 졸업한 뒤 이화학당과 공주의 영명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3.1운동때 만세시위에 참가. 구류되기도 한 인물이다.1920년 수원 공주 아산 등 지방교회를 순회하면서 비밀리에 부인회를 조직한 뒤 상경, 헌병에게 붙잡혀 구금되었고 석방후 러시아로 망명,남편 이규갑 때문에 여러번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921년 천안의 양대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경찰의 요시찰 대상에 오른 것을 알고 망명을 결행 했으나 옹기에서 경찰에 피검, 고문을 당한뒤, 석방되자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도피하는 삶을 살았으나 결국 고문으로 발병하여 그곳에서 최후를마감했다.
그 또한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이외에도 고종 28년(1891) 출생,1944년 생을 마감한 김마리아여사도 우리가 기억해야할 여성독립운동가.
1918년말경 동경유학생 독립단에 가담, 황에스터등과 구국동지가 되었고 1919년 2.8독립운동에 가담, 일본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기도 했다. 대구 광주 서울 황해도 일대에서 독립의 때를 놓치지 않도록 여성계에서도 조직적 구러기를 할것을 촉구한느 등 3.1운동사전분지 운동에 진력한 공로가 있다.
황해도 봉산에서 활약을 마치고 다시 3월 5일 서울 모교를 찾았다가 일본형사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다 상악골축농증에 걸려 평생을고생하였다/ 보안법 위반 죄목으로서대문형무소에서 5개월의 옥고를 치르기도.
독립운동에 대한 중요한 임무를 맡기위한 준비와 임시정부에 군자금지원에 진력하던 중 그해 11월 말 애국부인회 관계인들과 함께 다시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던 중 "한국인이 한국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연호는 모른다"는 확고한 자주독립정신을 보여 3년형 판결을 받고 복역중 병보석으로 풀려나와 서울 성북동 보문암에서 요양중 변장으로 탈출, 상해로 망명하였다가1935년 귀국, 이후 여생을 기독교 전도사업과 신학발전에 기여하였으나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또 이밖에 평안남도 출신의 박현숙(1896~1980)여사도 전주 기전여학교 교사로 재직시절 비밀리에 학생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며 항일의식과 민족정신을 고취시켰고 ,1919년 3.1운동때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대한애국부인회 결성에 참가, 독립운동자금을 이시정부에 송금하는 역할 등을 하였으며 대한부인회 최고위원 등을 역임하는 활발한 활동과 이후 숭의여중고를 설립 여성운동과 교육사업에 힘썼다. 1963년 대통령 표창,1980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너무나 잘알려진 유관순 열사외에도 철종 11년 가장 오래된 여성독립운동가 윤희순(1860~1935)여사도 만날 수 있다. 그의 간절한 애국정신과 의병활동 뒷바라지는 강원대학교가 항골마을에 건립한 '해주윤씨의적비'에 잘 기록되어 있다.
민비시해사건이후 춘천과 가평일대에서 의병작전을 전개할 때 의병들을 뒷바라지 했으며 의병자금과 탄약 군량이 부족할 때 군자금을 모금하여 놋쇠와 구리를 구입, 무기와 탄환을 제조, 공급하는 한편 의병가를 지어 부르게 하여 의병훈련을 진작시키기도 한 인물이다.
역사속에 잊혀진 또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 공적을 인정받은 이들 여성독립운동 가들의 헌신적 삶이 가슴에 와닿는 전시다.
민족과 여성역사관 개관8주년 기념 여성독립운동가전시회는 9월말까지 전시될 예정이다.한편 사)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는 일반시민과 청소년들에게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2004년 9월「민족과 여성역사관」을 개관,일본군위안부 문제와 독도문제, 여성인권에 집중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등 상시 전시회를 열어 차세대 체험교육장으로 개방해왔다.
이곳 민족과 여성역사관은 최근 독도문제와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이슈화로 청소년들의 역사적 관심이 증대되는 등 '민족과 여성역사관'을 방문, 논문을 쓰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한편 다양한 방송 매체를 통해 홍보되면서 이웃도시 벤치마킹 명소로 주목을 받아왔다.
사)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김문숙 회장은 "1990년 설립 후 위안부 문제를 비롯 꾸준히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잡고자 노력해 왔으며앞으로도 전쟁 지향적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한 시정운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관람문의051-754-3444
유순희 기자
[2012년 9월 25일 제35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