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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장원-보건복지부장관상 당선작 "엄마의 형제, 나의 형제"

[2011년 7월 15일 제21호 8면]
 
제2회 저출산고령사회 극복 백일장 공모대회
 
 
-데레사여고 2학년 강인선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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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저는 추석을 맞아 외할머니 댁을 찾았습니다. 경상남도 의령군에 위치한 그곳으로 가는 길은 참 정답습니다. 부끄
러움이 없던 어린시절, 발가벗고 뛰놀던 계곡도 있고 이름 모를 아담한 산들도 참 많습니다.
 
아버지 차를 타고 산을 둘러 시골 길을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곡 중학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한 학교가 보이자, 어머니는 아버지께 잠깐 차를 세워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저 이렇게 세 가족은 어머니의 모교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전교생 총 16명. 폐교의 위기에 놓인 그 학교는 도시의 좁디 좁은 그것과는 달리 탁 트인 운동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16명의 학생들이 사용하기에는 슬플 정도로 넓어 보였습니다.
 
묵묵히 학교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감회에 젖은 듯, 그렇게 계시다가 옛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지금의 오빠와 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곁에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대자연을 벗 삼던 시절의 이야기였습니다. 집집마다 손가락, 발가락 수만큼 많았던 형제자매들이 밥 먹고 우르르 동네로 나와 뛰놀던 시절 말입니다.
 
어머니의 고향인 의령군은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퍼센트를 넘어선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곳입니다. 그 밖에도 우리 나라에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지역이 63 군데나 더 있다고 합니다. 이곳들은 더 이상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들입니다. 가장 아름다운태초의 어린 인간이 생명을 토해내질 못하는곳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들 발소리로 즐거움에 신음하던 산과 냇물이 더 이상 그들의 냄새조차 맡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것은 도시화가 진행된 이후 시골의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 나간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제 2의 도시, 부산의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가 사는 좌천동의 많은 초등학교들은 불과 사, 오년 전인 제가학교를 다닐 때와 비교해 봐도 규모가 많이 줄었습니다. 네반, 다섯반이던 한 학년의 학급수가 세반, 네반으로 줄었고 그 구성원도 서른 명 안팎에서 스무 명 정도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근처의 초등학교 두 개가 합쳐진적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어머니처럼 폐교되는 모교를 바라봐야 할지 모르는 일입니다.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는 고령화사회라는 어두운 내일을 암시합니다. 한 사회에서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현상이 지속되었을 때 생기는 많은 문제점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양해야 할 젊은 세대는 턱없이 적고, 부양받아야 할 노인세대는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맺어야할 두 세대는 갈등과 반목에 시달릴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국가의 경쟁력도 현저하게 감소할 겁니다.‘사람’이 큰 재산인 대한민국은 서서히 빈곤해 질 것입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현상은우리사회 전체를 통틀어 깊은 상처를 내고 우리 민족을 사그라뜨릴 것입니다.
 
미국, 일본이라는 나라가 고령화 사회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세월은 각각 72년, 24년입니다.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18년’이라는 짧은 수치는 우리의 문제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특히 더 심각함을 보여줍니다. 형제, 자식 없는 슬픔은 우리 개인 하나하나에도 미치는 영향이 클 것입니다. 저에게 형제라곤 오빠 하나 밖에 없지만 그는 너무나도 큰 힘이 되어 줍니다. 때로는 다투고 반목할지라도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형제가 주는 기쁨은 크고, 또 소중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잉태하여 낳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이 아이를낳는다는 것은 몹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종족 번식이라는 원초적인 의미는 다분히 1차적이라 할 것입니다. 더 깊은 의미로서의 출산은 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내가 돌보아야 할 대상이 생김으로서 한 개인의 의미를 한층 풍성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어머니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겠습니다. 어머니가 졸업하신 중학교는16명이라는 학생 수로 겨우 연명하고 있지만 초등학교는 꽤 오래전에 폐교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가 아름다운 추억의 단편을 잃어 버리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때 어머니 곁에서 추억의 빈자리를채워 준 것은 어머니의 형제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5남매는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나오셨습니다. 그 분들만이 유일하게 옛추억의 작은 편린들이나마 어머니와 공유할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분들만이 모교의 폐교라는 상실을 알고 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제가 어릴 때부터 외삼촌들과 이모는 어머니에게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5남매라는 많은 형제 수만큼이나서로 우애가 깊으십니다. 서로 의지하며 얼마전 있었던 ‘할머니의 운명’이라는 큰 슬픔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겨내셨습니다. 저에게도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오빠’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습니다. ‘부모님과 저’라는 두 세대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며 너무도 모범적으로 잘 자라준 오빠입니다.
 
10살 무렵 팽이 돌리는 법부터 시작해 고등학교에 들어와 갑작스럽게 어려워진 수학공부까지, 가르쳐 준 것도 참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이자 멘토로서 너무도 큰 도움을 주었고, 단지 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 주는 형제입니다. 형제의 소중함은 그 빈자리에서 더깊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와는 달리 형제가 없는 어릴 적 친구 한 명이 기억납니다.
 
그 아이는 초등학생 시절,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많은 종류의 애완동물을 키우며 외로움을달랬습니다. 컴퓨터를 벗하고 그림을 그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별로 특별한일도 아닌데 오빠가 있다는 이유로 제가 부럽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든든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형제인 것 같습니다. 형제는 서로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부모님에게는 미래의 희망인 자녀가 됩니다.
 
그런 형제도, 자녀도 처음에는 조그마한 생명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생명의 시작은 바로 출산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새 생명의 탄생을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회는 모두가 활력을 잃고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회일 것만 같습니다. 미래의 제 아이가 발 들여놓지 않았으면 하는 사회일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런 사회로 변모하지 않기를, 그리고 어린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활기찬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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