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기억하는 법> 표지
금정산, 오륙도, 동보서적, 당감동 등이 한 편 한 편의 시가 되어 나왔다. 그 익숙한 장소성 때문인지 시집을 넘기다 보면 마치 시인과 오래 교감을 해 온 듯하고, 비슷한 경험도 슬며시 추억하게 된다.
부산작가회의 회장 김요아킴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부산을 기억하는 법> (도서출판 전망)을 출간했다. 김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1993년 교단에 발을 디디면서 시작된 부산살이를 다양한 생의 체험과 감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곳은 지금, 유람선이/유행가를 매달고 하염없이/부산항으로 돌아오라 넘실대고 있지만/저 먼 쓰시마 해협까지 떠밀려간/그때의 잔혹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오륙도 비가悲歌’중에서)
먼 옛적, 나라에 화급한 일이 생기면/맨 먼저 목멱산으로 제 목소리 피워 올리던/산봉우리 굴뚝 위로/멧비둘기 한 쌍, 느릿느릿/세월을 부리고 앉아 있다 (‘황령산 봉수대에서’중에서)
이처럼 부산이 가지는 독특한 아우라와 개성적인 결을 엿볼 수 있는 시가 있는가 하면, 시인의 생활 현장을 시적으로 발현한 흔적들도 흥미롭다.
진득한 회식 2차 자리, 그 골목길의/폭은 빗방울의 두께에 반비례했다/우산 하나 비집을 틈조차 허용치 않을/생의 각질들이 여태 수거되지 않은 채/제법 고소한 기름옷으로 덧칠한 흰 거품이/세월의 낮은 도수度數처럼 찰랑이고 있다 (‘기억에 기억을 튀기다-당감동 통닭골목에서’ 중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 부산사람이라면 바로 고개를 끄덕일만한 시들도 반갑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무작정’이란 부사를/슬그머니 끼워 넣을 수 있는 곳//손전화도 없던 시절, 한 女子를/살붙이로 맞이하기까지의 진한 여백 너머//종종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발굽으로, 간절히/시집 진열대에서 빛나고 있는/언어들을 주술처럼 되뇌일 수 있는 곳 (‘동보서적, 희미한 옛 그림자’중에서)
‘가만히 있으라’, ‘이곳, 부산에서 세월을 외치다’ 등의 시에는 우리 사회 공동의 아픔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성찰하고 행동하는 작가로서의 몸부림 또한 용해돼 있다
“초집이 참 맛나네, 단디 찍어무라.”/초로의 아지매들이 주고받는 억양 속에/할매의 그때 그 붉은 말투가, 새삼/왜 한입 가득 차오르는 거였을까 (‘덕천동, 횟집에 앉아’중에서)
60여편 시에는 이제 생의 절반을 부산에서 보낸 시인의, 토박이로서의 모습이 보인다.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