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초 문재인대통령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에 참석하여 ‘신남방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아세안을 미,일,중국과 같은 수준으로 중시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 자리에서 “내 고향 부산에 아세안문화원이 있고 아세안과 문화교류의 발신지로 하겠다”고 연설했지만, 과연아세안문화원에 그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세안문화원이 출범한지 5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시민들에게 잊혀져가고 있지 않은지, 멀리있는 중앙정부와 부산시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도 장산역에서 아세안문화원을 안내하는 지도나 홍보물도 없고 주차장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늘 비어있을 때가 많다.
외교통상부 산하의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소속기관으로서 서울에서 직원들이 파견되어 관리하기 때문에, 부산지역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 연말부터 부산시, 해운대구, 부산국제교류재단의 직원이 각 1명씩 파견 근무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창설기관으로서 아세안 관련 강연회, 체험활동, 동호회 활성화 유도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장산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하고 아세안 출신들이 대부분 사상, 김해지역에 있는 등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상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아세안문화원에는 1층과 2층의 전시실, 2층과 3층의 세미나실, 3층의 요리체험실과 사무실, 4층의 공연장을 비롯해 자료실 및 작은 사무실이 2,3개 있다. 아세안과 문화교류의 발신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무실의 배치부터 대폭 바꿀 필요가 있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고 TV, 인터넷 등을 통해 익숙한 아세안국가의 전시장은 별로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다. 따라서 1층과 2층의 전시실 중 한 곳을 없애고 부산에 사는 필리핀,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세안 사람들의 동호회 사무실로 무상으로 임대하여 그들이 수시로 모여 회의하고 교류하는 곳으로 하면 어떨까.
그리고 부산에는 중국, 일본, 미국, 대만, 몽골 등 일부 국가의 영사관이 설치되어 있지만, 영사관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아세안 국가 사람들은 비자, 여권 등 영사업무를 위해 서울의 대사관까지 가야 한다.
따라서 작은 사무실 하나를 공동 영사처로 하고 요일과 시간대 별로 아세안각국의 영사가 내려와 영사업무를 할 수 있다면 자국민들이 일부러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월요일 오전에는 라오스, 오후에는 캄보디아 영사가 오는 시간으로 정해 서울에서 내려와 영사업무를 하는 식이다.
물론 외교부와 각국 대사관이 같이 나서야 하므로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적극 노력하여 부산, 경남 일대에 사는 아세안 다문화가정의 어려움을 덜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정해진 요일의 영사업무가 없는 오전 오후 시간에 교대로 자국문화의 홍보 내지 한국민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만드는 아이디어도 생각해볼만하다.
글로벌시대, 더욱 가까워진 아세안의 이웃들이 불편함없이 이국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민주시민사회의 배려가 아닐까싶다.
/김영춘 객원기자
[2018년 2월 23일 제97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