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5일

종합

나이듦은 우리안의 힘을 발견하는 계기



<글 싣는 순서>
1.여성의 나이듦과 정체성√
2.여성의 나이듦에 있어서의 일의 의미의 재설정
3.여성의 나이듦에 따른 관계의 문제-나에 대한 관계 vs 타인과의 관계
4.여성의 나이듦과 건강한 삶
5.여성의 나이듦과 성취의 문제
6.나이듦을 다시 생각한다.



나이듦을 다시 생각한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에 임박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나이듦’의 의미를 다시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유의미하다. 이는 우리의 생애 주기가 이전의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인식되어 왔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을 자주 목도하기 때문이다.


중년과 노년의 개념은 ‘신중년’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세분화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생 제2모작의 시대가 선포되는 시대적인 흐름 가운데, 일터에서의 은퇴의 시기 또한 연장되었을 뿐 아니라 직업의 개념자체가 평생직장 혹은 1인 1직장의 개념과는 달라진 것을 본다.


삶의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며, 수명의 연장과 더불어 이전의 연령주의의 인식의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회적 현상들이 날로 증가되고 있다. ‘액티브 에이징(Active Aging)’, 즉 ‘활기찬 노년’이라는 어젠다에 맞는 ‘나이듦’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의 틀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점에 ‘나이듦’의 의미를 다각도로 살펴, 지금까지 학습되어온 방식의 나이듦의 모습들의 여러 문제점을 인식하는 동시에 ‘나이듦’에 대처하는 새로운 자세를 고민하는 것을 이 글의 목적으로 둔다.


이는 정체성, 노동, 관계, 건강, 성취라는 분야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나이듦과 관련한 정책적 방향성의 제시라는 다소 무거운 접근과는 다르게 삶 속의 실질적인 접근을 다루고자 한다.


1. 여성의 나이듦과 정체성

한동안 유튜브에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솔개의 일생을 다룬 ‘솔개의 선택’이라는 영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생각하게 했다. 인간의 일생과 비슷하게 70년에서 80년의 수명을 가진 솔개는 40년을 살고 나면 부리는 닳고, 발톱도 무뎌지며 깃털은 날기에 무거워 그대로라면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게 되지만 그러나 그 순간 솔개는 선택한다.


그대로 죽는 길이 아니라, 새로운 40년의 삶을 살기 위해 고통스러운 130일을 참고 견디며 준비한다. 바위산으로 날아가 둥지를 틀고 그 곳에서 솔개는 바위에 자신의 부리를 찧어 모두 닳아 버리게 만든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시간들을 보낸 뒤, 솔개의 다 닳아 없어진 부리에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게 되는데 그 튼튼한 새로운 부리로 자신의 발톱을 하나씩 뽑기 시작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발톱들이 자란다. 마지막으로 무거워진 낡은 깃털들을 모두 뽑아 버리면, 그 자리에 새로운 깃털이 자란다.


솔개는 그렇게 생사를 가르는 130일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참고 다시 40년의 삶으로 비상한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한낱 미물의 삶이라고 치부하기에 너무나 의미심장한 것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솔개라는 한 조류의 일생이 이러할 진데, 우리 인간의 삶은 하물며 어떠해야 하겠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초고령화 시대의 목전에서 우리의 나이듦이 더 이상 사회적 문제로 범주화되거나, 부정적인 현상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전의 방식으로 나이듦을 바라본다면 연령주의의 틀에 사로잡힌 채 생물학적으로 일정 정도의 나이 이상이 되면 사회적 주류세력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을 자신도 타인도 당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이전 사회의 연령주의의 편견에서 답습될 뿐임을 날카롭게 인식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보편적인 현실이 이러했다 해도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 앞으로 살아갈 많은 시간들이 만들어낼 세상은 연령주의의 부정적인 인식을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물결이 요구되는 시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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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방식처럼 나이듦의 범주화에 스스로를 가둬버리고 마는 것은 새로운 삶의 기회에 대해 어떠한 고민조차 하지 못한 채로인 삶의 수동성을 인정하고 마는 결과로 전락된다. 이러한 인식에 대수술이 필요하다. 나이듦의 문제에 있어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윌리엄 새들러의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이라는 저작에서는 노인학 학자인 제임스 바이렌 박사의 ‘나이듦에 대한 그릇된 관념에 동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인용한다. 바이렌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내용은 신경에 저장되고 뇌는 이렇게 학습된 내용을 신경의 나머지 부분에 전달하여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한다.


이 의미는, 나이 든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진 이보다 한 살한 살을 퇴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인의 자아실현과 발달에 관한 탐구 프로그램을 만든 게이 루스 박사에 따르면,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진정한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면서 그 세월을 살아가는‘삶의 방식’이라는 지적을 한다.


즉,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나이듦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풍요롭고 활기차며 창조적으로 전개될 중년과 노년의 정체성 발달을 크게 위협하며 이러한 인식은 스스로의 인생을 죽음으로 가는 여정으로만 생각하는 남은 시간이라고 여기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최근 발간된 100년 가까운 세월을 사신 어느 노교수의 저서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자신의 60살 근처에서 인생을 다 살고 이제 남은 생을 정리하는 것으로 여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것은 잘못 판단한 것이었노라 고백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년 혹은 노년의 나이에도 여전히 어린 아이로 남은 채로, 혹은 시작해보지도 못한 채로 인생에 대해 도전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고 시간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스스로를 내버려 둔다는 것은 인생의 너무나 큰 낭비이자 패착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때 이른 퇴행의 길’로 접어들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나이듦의 여정에서는 반드시 다시 한 번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한다. 나이듦으로 인해 인생의 모든 문들이 닫힌다고 생각하며 떠날 시간들을 예비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며 의지적인 스스로를 새로운 출발점에 세워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을 ‘리셋’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하여서 나이듦을 생각할 때 이를 자신의 인생의 정리의 시간들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의 발판’이 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많은 경우 젊은 날을 생각하면 성숙하지 못한 결정과 그로 인한 실패와 좌절을 떠올린다.


나이듦은 우리의 방자한 혈기와 그로 인한 무질서한 행동을 낳았던 젊은 날들을 더욱 원숙하고 잘 조화된 어떤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나이듦은 이제까지 타인을 인식하고 살아왔던 나의 껍떼기와 같았던 인생을 향한 절대자의 선한 뜻을 겸허하게 바라보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나이듦은 지금까지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걱정하며 살아왔던 나의 삶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제대로 돌아볼 여지를 제공한다. 나이듦은 이제까지의 상처들을 잘 보듬고 회복시켜 타인들을 위해 그 상처들을 꺼내어 격려할 기회도 마련해 준다.


다시 말해 나이듦은 지난날 우리들의 어떠함을 좀 더 원숙한 모습으로 네 안에 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이러한 통합을 통해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삶을 시작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냉철하게 분석해본다면, 젊음과 속도와 성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과 가치의 중시는 나이듦과 관련한 모든 것을 경멸하도록 가르치는 사회가 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나이듦을 자연스럽고 조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


이는 정책적인 방향성의 제고를 통해 어느 정도 사회의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측면은 한 개개인의 정체성의 정립에 있어서의 나이듦에 대한 존중과 의미의 재발견이라 할 것이다. 특별히 나이든 여성에 대한 경멸이 일부몰지각한 이들에 의해 표출되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학습을 통해 배워왔음을 부정할수 없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에 대해 심리학자 엘렌 랭거는 ‘나이가 들면 정신적·사회적으로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젊었을 때 미리 굳어져버린 노화에 대한 인식은 종종 2차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되어 행동의 발달과 성숙을 동결시키며 정체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누군가의 부정이며 낡아빠진 시나리오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나이듦의 과정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은 고령사회를 살아갈 모두에게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전제조건이다.


이는 지금까지 이 사회가 나이듦에 대하여, 특히 여성의 나이듦에 대하여 ‘더이상 사회의 주류로 등장하지 말 것’을 강요하던 암묵적인 차별에 저항하는 과정이기도하다. 우리의 잃어 버렸던 권리들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주입된 편견의 장막들을걷어내는 일이 필수적이다.


이는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정체성의 확립에서 시작된다. 여성에게 있어서의 나이듦은 더 이상 쇠락과 퇴보와 퇴장의 의미가 아닌, 창조와 도전과 새로운 삶의 장면들에 대한 기대와 조화와 절제, 더욱 높은 차원의 인생의 성취라는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나이듦은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 안의 힘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며 그 힘은 이전과 달리 더욱 원숙하게 쓰여 지게 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젊은 날 단 한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이듦은 그렇기에 특권이다.


김유진 객원기자

[2018727일 제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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