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소소한 민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의원은 자기 지역구 챙기기보다 시 전체를 위한 넓은 시야의 정책을 살피고, 지역발전을 조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시의회 기장군 제2선거구 장안 정관철마 일광 지역구 구경민(38)의원은 당장 득표에 도움이 되는 의정활동보다 ‘지역민의 권익, 부산시의 발전’이라는 큰 시각에서 생활정치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온갖 지역행사에 일일이 찾아다니고 자신을 알리는데 연연하다보면 제대로 일을 할수 없을 것 같다”는 구의원은 “주민들의 눈에 당장은 어색하고 불편한 존재가 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해하리라고 믿는다”며 “바른 시의정 활동이 결국은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구경민 시의원은 8대 전반기의회에서 복지환경위원회 상임위 소속으로 활동중이다.간호사 출신으로 전문성과 관심분야를 의정활동에 녹여내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구의원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역현안을 살피고 복지환경차원에서 미흡한 조례를 제·개정하기 위해 자료검토로 분주하다.
초선이 의심스러울정도로 놀라운 의정 적응력을 보이고 있는 구의원은 미혼모정책, 취수원 문제, 보육원 문제 등 관련 조례발의를 위해 산더미 같은 자료더미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의회들어와보니 참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았어요. 타 시도에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도외시된다거나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아예 손을 대지도 못하는 경우 등이 많은데, 왜 부산이 선도적으로 하면 안 되는지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구의원은 “인구절벽의 시대 미혼모 미혼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편견해소 등 한부모가정을 위한 촘촘한 정책의 필요성을 느낀다”며 이를 위해 전수조사와 충실한 데이터에 기반한 통계가 절실함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인식의 변화만 있어도 일정부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구의원은 “미혼모라하면 대부분 어린 소녀가 사고 쳐서 임신 출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실제 20~30대의 생산경제활동연령의 여성들이 분명한 자기 가치관과 사고로 스스로 선택하고 고결한 모성으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며 인식의 전환을 역설했다.
구의원은 또 이같은 상황에서도 홀로 출산, 양육하며 일과 병행하고 있지만 출산육아휴직도 제대로 못 가지고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혼 가정의 한부모는 제도적 혜택은 보는데 비해 미혼모의 경우 가족으로부터의 단절, 사회로부터의 멸시와 편견 등 주변과 소통이 단절돼, 철저히 고립된 삶에 놓이는 안타까운 현실을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머잖아 소멸되는 도시가 예측될 정도로 인구절벽의 위기를 맞고있는 시대에 다양한 가족형태의 인정은 물론 비혼가정 맞춤형 사회복지서비스지원 등 법적보호가 절실함을 강조했다. 전수조사를 통한 통계 등 구체적인 데이터가 확보되면 부산형 미혼모·미혼부 정책조례를 만들고 싶다는 구경민 시의원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돌봄정책을 챙기고 싶다고 밝혔다.
비혼모 여성 일가정 양립 제도적 장치 마련돼야
저출산시대 부산형 미혼모정책 조례도입 하고파
간호대학졸업 후 병원 간호사로 일해온 구의원은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만연했던 태움문화를 겪은 당사자로 이직을 하게했고, 이후 일반 직장생활과 사업의 경험도 가졌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다시 의료현장으로 뛰어들었을 때는, 불규칙적인 근무 시스템하에 이뤄지는 3교대 근무로 사실상 양육은 물론 일가정의 양립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함을 체험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전형적인 워킹우먼의 삶을 살아온 구의원은 선거공보책자에 ‘세살 아기 안나 엄마’를 첫 번째 약력으로 기입했다. 이는 우리 시대 워킹맘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당당한 역할인지 보여주기도 했다.
구의원의 정당활동은 사람, 노무현에 매료, 2002년 노사모활동을 하게되면서부터다. 이후 민주당 해운대 기장지역위 청년위원장, 노무현재단 해운대기장지회 운영위원장, 문재인 대선후보 특별보좌, 민주당 부대변인 등으로 활동해오기도. 진보진영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구의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멘토는 고교시절 전교조 출신의 스승이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한부모 가정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유일하게 마음으로 따뜻하게 다독여주었던 스승이, 수업시간 일깨워준 사회문제의식들은 구의원을 일찍부터 철들게 했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도시빈민운동 활동가로 세상의 부조리와 맞서 뛰는 계기가 되었던 것. “정치를 하겠다는 꿈을 꾸진 않았어요. 정당인으로 활동을 해왔지만, 동지들과 함께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자체가 좋았고, 존경하는 정치인들을 위해 서포터즈로 활동하는 것 자체에 만족했죠.” 구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 역시 선거캠프지원을 위해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고 봉사하던 중 지역구에 추가공모가 떠 갑작스럽게 권유받아 출마하게 됐다고 말한다.
“의회에 들어와 보니 정말 의정활동을 전업으로 몰두해야할 만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수 십개 의안을 하나하나 꼼꼼히 검토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구요. 그동안 겸업자들이 어떻게 일에 몰두할 수 있었는지, 제대로 일이나 했는지 의구심이 생길정도였어요.” 다행히 8대 의회는 의원 전체 47명 중 겸업자는 5명 밖에 없고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어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지켜봐주세요. 이전과 다른 시의회, 정말시민을 위한 시의회, 부산발전을 견인하는 시의회가 될 수 있도록 관행을 깨고 의정혁신을 주도하고자 노력하는 의원들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린 딸과 함께 나와 지역구 키즈카페에서 진행된 유쾌한 인터뷰 끝에 구의원은 이같은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남겼다.
유순희 기자
[2018년 9월 14일 제104호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