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여성의 나이듦과 정체성
2.여성의 나이듦에 있어서의 일의 의미의 재설정
3.여성의 나이듦에 따른 관계의 문제-나에 대한 관계 vs 타인과의 관계
4.여성의 나이듦과 건강한 삶
5.여성의 나이듦과 성취의 문제√
6.나이듦을 다시 생각한다.
나이듦과 성취의 문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나이듦의피할 수 없는 현실 가운데 나는 지금도 도전하고 있는가,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가? 혹은 수없는 실패의 기억과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이제 그만’이라는 소리에 별저항 없이 피곤해진 몸과 연약한 마음을 맡기고 있는가? 혹은 너무나 정신없이 달려온 인생에 대한 보상 심리로 쉼과 여유를 누릴 권리를 부르짖고 있는가?
그 어떤 모양이든 우리 각자는 나이듦과 내 인생의 의미와 목표 달성 즉, 성취의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사전적으로 ‘목적한 바를 이룸’을 뜻하는 ‘성취’는 영어로 ‘achievement’ 혹은 ‘fulfillment’로 표기하는데 이는 ‘빈 곳의 채움’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면 이해하면 쉽다. 우리 인생의 처음 시작을 하얀 백지로 생각한다면 나이듦의 과정과 함께 그빈 공간을 수많은 스토리와 생각과 감정과 결과물 등으로 채워가는 과정을 거친다는 의미에서 ‘빈 곳의 채움’은 어렵지 않게 이해될수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의 사려 깊음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인 지위와 성취를 동일시하는 시선이나, 개인의 학력과 경력을 포함한 스펙을 성취와 동일시하는 세상의 시선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관한 우리의 관점에 변곡점을 둘필요와 이유가 제기되기에, 나이듦과 성취라는 다소 평범할 수 있는 주제를 다른 시선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인생이라는 빈 여백을 채우는 것들에 대한 다른 시선
빈 곳의 채움, 즉 빈 도화지에 그리는 그림이라는 각자의 인생의 그림을 잠시 생각해보자. 그 그림에 들어가야 하는 작은 단위들이 소위 직업으로 생각되는 사회적인 일정한 신분이라든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학력과 경력이라는 어떤 특정한 외형을 가진 개인만이 그려져야 하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아야한다.
일견, 화려한 외형적 설명은 우리가 한개인의 인생을 빠르게 이해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많은 결과적 산물들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이 겪어야 했던 인내의 과정이라든지 고난의 돌파와 관련된 스토리, 감정의 파도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부분들 역시 주변적인 것으로 보지않고 성취의 주요 부분을 이루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시선에서는 우리의 모든 시간들이 의미 있게 되는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실패의 사건과 절망의 시간들조차 우리 인생의 중요한 성취이자 궤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어쩌면, 화려한 스펙이라는 뻔한 스토리의 나열보다 인생에서의 처절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나이듦을 인정하며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기에 인생의 여백을 채우는 가장 가치 있는 그림이 될 것이다. 성취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더욱 밀도 있게 채워짐을 경험하게 된다.
쉼과 여유의 권리 풍성한 시간적여유를
삶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삶의 방향모색도
명사가 아닌 동사로 재해석하는 인생
우리는 어릴 적 꿈을 이야기 할 때, 의사· 변호사· 과학자· 선생님 등등 무엇이 되겠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러나 나이듦의 과정에서 자신의 꿈인 어떠한 직업을 가진 자가 된 이후에 정신없이 달려왔던 이들조차도, 일정 정도의 목표 달성 이후의 말할 수 없는 허무함을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이와 관련하여 조 앤 젠킨슨의「 나이듦, 그 편견을 넘어서기」라는 저서에는 교수이자 작가인 조지프 캠벨의 말로 이를 “사다리 꼭대기에 올랐을 때 다른 벽을 올랐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요컨대, 오랜 세월 달려온 목표 지점의 정점에서 거기에 별다른 것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를 목표로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앤 잰킨슨은 이에 대해, 나이듦의 시간을 우리의 꿈을 재평가하게 되는 시기로 본다. 이 시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어디쯤 와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목표를 달성했다면 어떤 점을 평가 받고 싶은지, 그것이 행복과 성취감을 주었는지, 혹 성취를 느끼지 못했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등의 새로운 방식의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즉,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와 이를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로 압축할 수있는데, 이는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둔 질문들로 구성된다. 한마디로 명사가 아닌 동사가 이끌어 가는 인생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인생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허핑튼 포스트의 아리아나 허핑튼의 실례는 흥미롭다. 55세에 허핑튼 포스트를 설립하고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세계의 100인’으로 소개되었지만 그녀는 피로와 수면 부족으로 쓰러진다. 허핑튼은 이 일을 계기로 성공과 성취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하루 18시간의 일로 명성과 부를 얻었던 그녀이지만 그것이 자신이 원했던 인생이 결코 아니었음을 깨닫고 성공의 개념을 재정립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성공적인 인생, 좋은 인생으로 이끄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즉, 인생의 성공을 우리 자신을 잘 돌보는 웰빙, 인생 경험에서 얻은 판단과 지식이라는 지혜, 우주의 신비와 우리 인생을 채우는 일상사와 작은 기적에 기뻐하는 마음인 경이감,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불러일으키는 기꺼이 주고자 하는 마음이 포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의 예는 한편으로 나이듦이 가져오는 통찰이 시선의 전환과 개념의 재정립의 과정을 반드시 요구한다는 것을 증거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인생의 성취의 문제는 우리의 통념으로 이해되는 성공의 관점이나 외연의 확대와 나열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이 삶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반응이며, 그러한 가운데 우리 내면의 진정한 행복과 만남을 의미한다.
나이듦이 가져다 준 진정한 성취
우리의 노년은 문제들을 대하는 속도에 있어서의 감속과 육체적 노화라는 피할 수없는 사실을 가져오는 반면, 이전의 인생과는 다른 성찰과 숙고의 시간들을 경험할 여지를 제공한다.이 시간들을 보내면서 젊은날 앞만 보며 달려온 인생의 순간들을 천천히 반추하게 되며, 때로 놓치고 지나간 의미들을 되찾기 위해 인생의 방향 전환을 시도하는 시기이다.
우리는 이 나이듦의 과정들에서 삶의 외형을 유지하기 위해 원하지 않았지만 해야 했던 것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돈과 명성과 힘을 손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삶의 힘겨운 버팀의 순간들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진정한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시기이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적인 유한성은 우리의 잘못된 방향을 수정하기에 충분한 이유로 다가온다.
더 이상 인생을 소모하며, 의미 없는 것들에 낭비하며 살아갈 수 없는 시기가 되는 것은 오히려 축복이다. 이제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이 삶을 돌이키자. 대단한 무언가를 좇아갔던 인생의 사다리 위에서 자신이 바랐던 것들이 없음을 확인하는 허무를 경험하는 것은 많은 이들의 앞선 증언으로 이제 충분하다.
더 이상 의미 없는 외연의 확대를 위하여‘돌격, 앞으로!’의 삶만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기를 그만하자. 그보다는 나이듦이 주는 시간의 풍성함을 누리며 이전과는 달리 인생의 주변 풍경들을 조금씩 돌아다보면서 나를 향한 이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발을 떼는 하루하루가 되어야 한다. 나이듦이 가져오는 놀라운 성취의 진짜 의미를 발견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루지 않는 오늘이 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성공한 인생이 될 것이다.
김유진 기자
2018년 11월 19일 제106호 1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