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 모두 돌아가시고 요양원에 계신 언니들(조정옥(85), 조정숙(93))와 저만 남았는데 이제라도 가족들의 한을 풀게 되어 언니도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고 조병섭 선생의 7남매 중 3녀인 조정희(73) 부산시민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곱게 차려입은 한복이 젖을 정도로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평생을 시민운동가로 여성활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해온 조회장은 “늦게라도값진 훈장을 전수받아 감개무량하다. 아마 자신도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열정적인 삶을 살게 된 것 같다”며 이제야 지난 십여 년간 무던히 자료를 찾아 노력했던 수고가 결실을 맺은 듯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학자로서 살던 선친이 멀쩡한 교직을 버리고 국내외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한번씩 집에 들렀다가 갔다는데, 가장이 집을 돌보지 않으니 가계는 풍비박산 나고 자식들은 외가집에 얹혀살아야만 했다”는 조회장은 외가가 잘 살았기망정이지 아니면 한없이 곤고한 유년이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4번째 서류를 접수해 겨우 모든 입증자료를 갖출 수 있었다는 조회장은 “선친이 검찰청 신문에 우두머리 세 명을 체포했다는 80년이 다 되어가는 옛 신문기사를 찾아냈지만 오사카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는 흔적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 했다”며 “충무 부산상해 일본 등 국내외를 전전하며 위장취업 독립운동을 했던 선친은 부산에서도 ‘마루보시’로 항만의 일을 하기도 했고, 주로 노동자를 집합, 나라를 찬탈한 일제에 맞설 것을 계몽하는 등 독서회를조직해 운동을 폈고,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오사카에서는 신문 배달을 하며 독립운동가들의 주요 연락책으로 활동하다, ‘야마다강’에서 나라독립을 위한 의식운동을 펴다가 현장 체포되어 1년8개월의 옥살이를 했다고 밝혔다.
유길정 기자
[2018년 11월 19일 제106호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