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6일

종합

소통연대하는 역동적 여성주의 미래 기대



<글 싣는 순서>
1. 유아기와 아동기 - 여성으로 태어나기 vs 여성으로 만들어지기
2. 청소년기와 청년기 - 여성주의의 미래를 엿보다√
3. 중년기 - 진화하는 여성
4. 노년기 - 여성이 여성에게


SNS를 통한 여성주의의 연대

최근 인터넷에 오르내린 검색어중 청소년기와 청년기 여성주의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탈코르셋’이라는 용어를 꼽을 수 있겠다. 영어권에서는 이를 ‘corset-freemovement’라고 하는데 이는 말 그대로 기존의 사회적인 편견에 대한 저항 정신이 기저에 깔려 있다.

보정용 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로 이는 세상이 여성들의 외모와 여성들의 행동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두고 꾸미도록 강요하는 삶의 방식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하는 일련의 저항의 움직임과 연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시작은 꾸밈노동으로부터의 자유다. 긴 생머리와 화장한 얼굴, 허리가 잘록 들어간 치마를 입는 것과 다이어트를 거부하고, 숏 컷과 화장하지 않은 자연스런 외모와 편한 옷차림을 선호한다.

이는 더 나아가 외모를 꾸미는데 들였던 시간과 재정의 방향을 자신이 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돌려 자신의 진정한 만족을 위해 시간과 의지를 투자하는 방식의 삶을 일컫는 의미로 확대되어 왔다.

‘탈코르셋’ 운동은 역사적으로도 이미 앞 선 세대의 여성들이 기존의 여성에게 억압하던 문화를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여러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세계적인 미인 대회에서 여성용 속옷을 불에 태워버린 퍼포먼스가 한 예이다.

최근에는 이슬람 여성들이 목숨 걸고 히잡을 벗어던지고 발로 밟거나 흔드는 영상을 올려 공유되고 있는데 이또한 탈코르셋 운동의 일환이라할 것이다. 이러한 탈코르셋 운동은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SNS을 통해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기존의 여성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하던 사회적 외모 기준과 꾸밈 노동에 대한 거부는 소통의 방식이 기존 세대와 달라진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인증하고 보여주는 방식과 결합함으로써 자신이쓰고 있던 화장품을 폐기하거나 헤어스타일을 아주 짧게 바꾸거나 한영상을 올림으로써 연대를 이뤄내고 있다.

개인의 여성주의의 실천 행위 그 자체가 여성주의 운동의 일부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시대 청년 세대의 여성주의를 엿볼 수 있는 최근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2018년 7월 7일로 혜화동 시위이다.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진행된 남성 누드 모델의 촬영 사건과 관련하여 편파수사 논란이 일면서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맺어진 연대의 방식으로 1만 2천명이라는 여성들이 혜화역에 모였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공통적인 분모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지만 마치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며 이 시위에 참석했다. 그 어떤 정치적 연대가 이토록 짧은시간 안에, 이토록 강력하고도 집중적으로 단 하나의 이슈만으로 모일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여성주의 운동의 흐름에서 꽤 의미 있는 움직임을 포착할 수있다.

이러한 운동의 형태는 여성주의와 관련하여 언제든지 다른 이슈와 연결되어 동일한 혹은 더 확대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 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여성주의 이론이 바로 현장으로 실현되는 세대

최근에는 부산의 한 여중에서 속옷 색깔을 제한한 것과 관련, 학칙개정을 요구한 일도 있는등 오늘 이땅 대한민국에서 청소년과 청년 세대들이 여성주의를 만나고 살아내는 방식은 이론과 실제의 간격이 그어느 때보다도 급속히 조우하는 장면을 우리는 함께 목도하고 있다.

이들 세대는 여성주의 교육에 어느 정도 노출된 세대이자 자신이 가진 발언권을 너무나 잘 활용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이들로서, 스스로 공통의 의견을 모아 사회적 흐름의 방향에 저항하는 주체로 서 있을 수 있는 세대들이다.

인도인으로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공부했던 여성주의자 스피박의 저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는 강조한 것 역시 ‘여성들의 목소리’였다. 최근 위안부 문제를 다룬 ‘아이캔 스피크’라는 영화 역시, ‘여성들의 목소리’ 즉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세상 속에 밝히며 싸워 나가는 주체로서의 여성에 주목한 바 있다.

스스로의 문제를 더 이상 덮어 두지 않는 세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불합리를 고발하며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함께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고 연대하는 세대들이 등장한 것이다. 한 마디로 여성주의의 체화 속도가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선명하며, 연대의 방식을 잘 활용하는 세대가 청소년과 청년의 세대인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더 확장되어 청소년들은 교육의 주체로서 여성주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스스로 여성주의의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능동적인 운동의 세대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동의 현장 한편에서 여전히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여성주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불합리와 차별이 계속된다는 것의 반증임과 동시에 여성으로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산다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성들 스스로가 느끼는 답답함은 이들 세대들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여기에 더하여 한편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은 기존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여성들과 그렇지 못하는 이들 간의 갈등 양상이, 마치 남녀 간의 양성평등을 위해 안팎으로 달려온 여성들 간의 갈등 양상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청소년과 청년 세대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풀어내는 솔직하고 적극적이며 속도감 있는 여성주의의 모습들에서 이론의 능동적인 구체화를 보며 기뻐하는 현장에 또 다른 장애물이 등장한 셈이다.

한 예로,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비난은 여성주의 운동이 지향하는 방향성을 희석시킬 우려가 있다. 우리 여성들은 이 점에 속지 않아야 한다. ‘탈코르셋’ 운동은 그동안 우리를 속박하던 사회적인 편견과 굴레로부터 진짜 중요한 것들의 가치를 찾아가는 전환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입장이 다를 수 있는 이들을 배척하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가치들을 복원하고 살리는 일에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소통과 포용으로 연대하는 여성주의

이제부터의 여성주의 운동은 우리 청소년들과 청년 세대들에 특유한 현상인 속도와 소통의 장점을 살리되, 앞선 세대들의 업적인 여성에 대한 각종 편견에 직면하여 정체성을 찾던 여성학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이제는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 때임을 확인한다.

다시 말해, 여성들 간의 연대는 SNS로 소통하며 동일한 주제에 대한 연대의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 세대인 청소년과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좀 더 역동적인 여성주의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의 반영이 가능한 이들은 시간적으로나 규모적으로 연대의 지경이 넓혀져 가는 것을 본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세대가 간과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이는 우리 여성들이 편견에 도전하며 사회적인 불합리라는 장애를 넘어왔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우리가 우리와 차이가 있는 의견을 낼 수 있는 이들을 배척하고 소외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직면했던 편견들은 냉정하게 분석해 낼 수 있어야 하지만, 한편으로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진정한 연대가 우리 여성들 간에도 또한 그 넘어 남녀 간에도 필요한 시대임이 자명하다.


김유진 기자

[2019225일 제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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