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유아기와 아동기 - 여성으로 태어나기 vs 여성으로 만들어지기
2. 청소년기와 청년기 - 여성주의의 미래를 엿보다
3. 중년기 - 진화하는 여성√
4. 노년기 - 여성이 여성에게
탐색에서 현장으로
나이듦과 관련한 아름다운 글을 남긴 파커 J. 파머의 글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는 나이듦이 주는 유익에 관해 ‘일의 속도가 느려지며 많은 일들을 한 번에 해내지 못할 수 있지만, 이전보다 더 오래 혹은 더 자세히 인생의 국면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음’을 이야기 한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청춘의 에너지와 가시적인 성취가 가지고 있는 즉각적이며 피상적인 국면에 대한 이해를 넘어,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세상의 고통과 가능성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의 현장에서 우리는 서로의 인간으로서의 용기와 버팀의 모습들을 감탄하며 보게 된다고 언급했다.
쇠퇴와 포기의 장면들을 생각하기 쉬운 나이듦의 현실은 오히려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의 가능성을 만나게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와 중년기에 이르는 시기의 여성주의는 이전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일반적으로, 30대 전후의 연령층에 속한 이들을 장년층으로, 4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나이를 중년층으로 분류한다. 이 시기 여성의 가장 큰 인생의 변화들은 결혼과 출산과 양육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통계자료인 ‘2018 혼인·이혼 통계’자료를 보면 인구 1천 명당 혼인 건수를 의미하는 조(粗)혼인율은 작년행정기관 신고 기준으로 5.0건을 기록해 1972년 이후 가장 낮았으며, 이는 7년 연속 하락의 시점에 보인 통계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결혼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사회 전체의 결혼에 대한 시선이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수치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통계작성을 시작한 이후 이는 세 번째로 적은 것으로, 올해보다 적은 년도가 1971년의 23만 9천 457건과 1972년 24만 4천780건이라는 점은 최근의 변화가 이전과는 다른 사회 변화의 모습과 원인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비혼’이라는 용어의 등장 또한 최근의 모습이다. 결혼의 당연함이라는 통념에 강력히 반론을 제기하며 여성학계를 중심으로 ‘혼인 상태가 아님’이라는 주체적인 의미를 담은 용어이다. 이러한 일련의 용어들과 통계들은 최근 경제적 요인과 가치관의 변화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혼인 연령이 최근 30대 초반 정도라고 본다면, 인구 구성비에서 30대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는 통계도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이보다는 이 연령층의 실업률이 증가하는 것과 이에 따른 주거비에 대한 부담이 결혼을 기피하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주거 마련이 이들의 부모 세대와 달리 일평생 요원한 일로 여겨지면서 결혼 자체에 대한 생각이 변화되었고, 여성들의 경우 경력 단절의 문제가 등장하는 경제 활동의 기회 박탈 등에 대한 우려가 뚜렷이 반영된 수치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가장 큰 변화의 지점들인 결혼·출산·양육 등이 핵심 이슈로 등장하는 장년층과 중년층의 여성주의의 모습은 한마디로, ‘탐색에서 현장으로’라고 함축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여성주의 이론의 실천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는 시기가 이 때이다.
여성주의의 이론을 이미 배웠으며 잘 알고 실천해왔던 여성이라 할지라도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롯이 여성의 몫으로 전가되는 사회적인 관습의 영역들을 그 자신의 몸으로 외롭게 겪어내며 그 시간들을 고통스럽게 지나야 하는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이론과 현실이 그야말로 큰 소리를 내며 충돌하는 시기에 다름 아니다.
결혼·출산·양육의 현장에서 만나는 여성주의
결혼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전과 많이 달라져서 당연히 누구나 거쳐야 하는 인생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결혼을 했지만 출산의 경험을 모두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가 있음을 간과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겪는 여성들이 현장에서 일궈가는 여성주의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이 시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결혼 후 가장 큰 충격은 더 이상 이전의 삶을 고집할 수 없음이다. 이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성장과 변화를 요구하는 환경에 노출된다. 이전의 삶에 익숙한 우리의 관성은 이 지점에서 외부와 큰 충돌을 일으킨다.
어느 연구 자료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여성들에게 출산 이후 3년이 삶의 질의 측면에서 가장 최하위 수치를 기록하는 때라고 한다. 그만큼 자녀의 탄생이라는 축복과 경이로움의 한편에서는 한 생명을 잘 성장시키기 위한 수고와 인내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많은 부분 여성들의 몫으로 이미 자리잡고 있다.
이 시기 많은 여성들은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터에서 단절되며, 자신의 경력 상 정체기를 겪게된다. 특히 일에 있어서의 성취를 경험하던 여성들은 이 시기 심한 자존감의 저하와 우울을 경험한다. 심지어 더 이상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좌절을 경험하는 이도 있으며, 실제로 이러한 시기가 길어질수록 일터로의 복귀 시기가늦어져 때로 포기하기에 이른다.
어린아기의 잦은 병치레는 일터로 복귀할 엄마들의 마음에 죄책감을 들게 하며, 때로 상대적으로 빠른 복귀를 했다 할지라도 ‘모성애’ 결핍의 여성으로 낙인 찍히며 오롯이 홀로 비난을 감수해야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오래 전 일이지만 프랑스의 한 여성 장관이 출산 이후 며칠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이힐을 신고 일터에 복귀하여 뭇 사람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있다.
행여 남성들이 병상에서 자신의힘든 상황을 박차고 복귀했다면 대중들은 책임감이 탁월한 사람으로 지지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 예로 일터에 있는 엄마가 아이가 너무 아파 병원으로 달려갔다면 책임감 없는 조직 구성원으로 보이겠지만, 똑같은 경우 아빠가 아이를 위해 일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면, 다정다감하며 사랑이 많은 아빠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장년기와 중년기를 통과하는 여성주의가 맞서야 하는 우리 일상의 현주소이다. 한마디로 출산 이후 육아의 상당 부분이 여성의 몫으로 인식되면서 우리의 여성주의는 그 목소리를 내기에 쉽지 않은 현실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진화하는 여성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이전의 자신과 다른 모습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과 조우한다. 이 장면에서 여성의 모습들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안팎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현실에 부딪혔음을 인정해야 한다.
가정과 일의 양립이라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요구받는다. 아이는 자라야 할 것이고, 여성들의 일 또한 계속 되어야 하는 현실은 여성주의의 수정을 요구하는 현실이라기보다는 그 자체의 진화 내지는 진보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밖으로는 끊임없이 한 여성의 침묵과 희생을 강요하는 숨막히는 현실에 저항할 것이 계속되어야 하며, 한편으로 스스로를 변화의 무대에 놓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출산과 양육은 인간의 생에서 말할 수 없는 축복이며 좀 더 성숙한 단계로의 진화를 겪을 수 있는 시기이다. 자신을 응원하며 뒤로 물러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긍정적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기를 지난 여성들은 이제 어린 아기를 양육하는 후배 여성들에게 자주 ‘다들겪는 시기야’라는 한 문장으로 일축시키는 때가 많지만, 생각해보라. 그 시기를 지나는 현장의 여성들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이 걸려 있고 다시는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지 못할 두려움에 쌓여 있는 시기임을, 그런 그들의 마음을 읽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힘들다고 말할 때 그들의 힘듦을 내 것으로 안을 수 있는 공감과 연대가 너무나도 필요한 시기이다. 결혼과 함께 여성주의의 이론이 위축되거나 수정을 요구받기 보다는 오히려 이 시기는 더욱 구체적인 현장의 소리들을 내어야 하는 일을 계속해야하는 시기임과 동시에, 여성이 여성에게 이전보다 더 격려와 사랑을 보내고 표현해야 하는 공감과 연대의 행동이 필요한 진화하는 여성주의의 실현이 필요하다.
김유진 기자
[2019년 3월 25일 제110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