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6일

종합

대한민국 여성의 생애주기별 보고서



<글 싣는 순서>
1. 유아기와 아동기 - 여성으로 태어나기 vs 여성으로 만들어지기
2. 청소년기와 청년기 - 여성주의의 미래를 엿보다
3. 중년기 - 진화하는 여성

4. 노년기 - 여성이 여성에게√


노년기 - 여성이 여성에게
20여년 전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성운동 구호 중 하나가 ‘딸들이 행복한 세상’을 내세웠던 점이 새삼 기억난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날 대한민국 여성관련 구호 중 하나도 여전히 이와 비슷한 ‘내 딸의 더 나은 삶’임을 목격하는 것은 여성주의의 역사를 관통함과 동시에 오늘 이 땅의 여성주의의 현실이 20여년 전의 현실을 공유하며 나아가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답보상태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읽어낼 수 있다.

20여년 전의 ‘행복한 세상’이 지금의 ‘더 나은 삶’으로 대체된 듯 일견 보이지만, 이는 많은 것을 함축함과 동시에 어쩌면 여전히 우리 여성주의의 아젠다들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되는 의미심장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는 이전의 여성주의를 이끌어 온 세대들, 지금은 노년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어머니 세대들의 여성주의의 역할과 위치를 다시한번 점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앞선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이 후배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을 듯하다.

젊은 세대들을 지칭하는 영페미 혹은 영영페미 세대들의 행동력과 실천력은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가속화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러나 호주제 폐지등의 아젠다들을 두고 투쟁했던 어머니 세대들의 절박함과 집중력 그리고 경험들은 지금의 세대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기록되어져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는 오늘 대한민국을 사는 여성들에게 나아갈 지표가 될 것이며, 홀로 헤쳐 나가기에는 기존의 사회적 편견과 틀이 너무나 견고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여성주의 운동 참여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 변화하는 남성성을 분석한다’ 세미나에서 나타난 결과는 여성주의의 흐름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 세미나에 공개된 연구결과는 “남자는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 든지, “남자는 무엇보다 일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남성성에 대해 이전 세대인 50대 남성들에 비해 20대 남성들은 동의하지 않는 비율이 20~3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투운동, 남성이 주도하는 여성차별 반대 운동 ‘화이트 리본 캠페인’ 참여 의사, 남성 참여를 촉구하는 UN의 히포시(He For She) 캠페인,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 교육 참여 의사 등과 관련하여 세대별로 다른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연구 관계자는 “성역할 규범이나 성별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의 개성과 인격이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바로 여성주의의 미래에 남성들의 참여가 확산되는 것이 필수적임을 보여주는 명확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성주의 운동의 탄생과 확산이 한 인간의 인격적인 존중과 권리의 회복이라는 맥락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은 이 운동의 이유가 고정적인 성역할 분담을 거부하는 남성이 늘고 있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여성주의 운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바로 전통적 남성성의 강조가 와해되고 있는 현상은 동시에 오늘 날 여성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돌파함에 있어 이는 비단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동시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공유하며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여성주의 운동의 방향성은 그 대상자와 참여자가 여성들만을 위한 교육이나 운동이 아니라 남성들을 참여시키는 방향성을 가지고 확산되어야 근원적인 문제를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합적 여성주의와페미니스트 노년학

지금까지의 여성학이 나이듦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이유를 여러 가지로 분석할수 있지만, 이제 더이상 현실적인 변화의 물결을 반영하는 일을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이는 인구의 고령화 특히 여성의 수명연장의 문제와 만나는 교차점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학을 공부한 세대들 역시 나이듦을 경험하며, 새로운 문제들과 조우하기 때문에 한 측면에서만 설명하기 까다로운 지점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예로 「나이듦을 배우다」의 저자 마거릿 크룩섕크가 포착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건강의 문제와 사회적 주변화의 문제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여성 노인들의 ‘또래 돌봄’이라는 특징이 그것이다. 독거노인의 비약적인 증가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지점이며 사회학적으로 새로운 가족의 형태의 등장을 예고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이는 법률학자 킴벌리 크랜쇼의 ‘교차성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여지가 여성 노인들의 삶을 둘러싸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 할 수 있다.‘교차성 이론’은 여러 가지 사회적 정체성이 교차되는 지점으로만, 또는 관계들의 연속선상에서만 설명될 수 있는 정체성을 의미하는데, 여성 노인의경우 개별적인 사유들의 교차가 가장 다양하게 등장할 수 있는 정체성을 지닌다.

이런 맥락에서 이전의 분석틀을 걷어버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현상들을 분석하여 여성 노인들의 삶을 분석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여기에 페미니스트 노년학과 여성주의의 통합적인 조명이 필요하다.

여성의 노년기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관리하며 계획할 수 있는 프레임이 요구되며, 이는 각 학문들 간의 연계가필요한 지점이다. 이 작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이들을 연계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한데,여기에 페미니스트 노년학의 설 자리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의걸어온 길을 돌아보기

박혜란 등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제1세대 여성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호주제 폐지라는 5부 능선을 넘어 미투와 혜화역 시위 등의 즉각적인 연대와 행동을 낳는 디지털 세대들이 주축이 된 여성주의 운동이 이어져 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미디어의 파급력이 강력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어쩌면 그 뿌리가 되었던 이들이 그토록 절실하게 자신의 삶을 깨어 놓으며 회복하기를 바랐던 여성주의의 명제들을 돌아보는 작업은, 어쩌면 지금의 세대들이 또한 그 딸들의 세대들을 맞이하며 이야기해 줄때를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들이다.

앞선 세대들의 투쟁들의 모습들을 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성주의 철학의 모호함을 비판하는 기존 남성 중심의 학문체계의 완고함에 대한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라도 여성학자들, 여성 정치인 뿐 아니라 자신의 각 분야에서 때로는 고독하게 때로는 용기를 발휘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내었던 이들의 현장을 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이는 지금 여성주의 운동의 위치를 가늠하는 기준점이자, 지금까지 동원되었던 여성주의의 화력을 좀더 체계적이며 집중적으로 정비할 수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1세대인 박혜란 여성학자가 보여준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와 같은 저작이라든지, 이화여대와 국회가 협력하여 펴낸 여성 국회의원들의 삶에 관한 ‘한국의 여성 정치를 보다“와 같은 기록 등은 앞선 세대의 여성들이 고민했던, 그리고 그 현장의 치열함을 살아냈던 우리의 앞선 세대들의 여성주의의 분투를 목도할 수 있는 지점으로 그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각 분야의 여성들의 궤적을 살펴보는 작업으로 이어져야할 것이며 이들의 발걸음이 만든 오늘의 대한민국에서의 여성주의의 방향성과 함께 논의의 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억들의 재생산은 앞선 세대의 여성주의자들이 뒤이어 달려오는 후배들을 위하여 내어놓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될 터이다. 이러한 작업의 수고에 지금의 세대들이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여성주의의 이전과 오늘을 잇는 의미 있는 장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유진 기자

[2019425일 제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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