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한편이 마음에 남았다”, “따뜻하게 위로가 되었다”, “우리가 시를 좋아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해석하기 보다는 느껴야 하는 시다”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 두기로 소통에 대한 갈증이 컸던 걸까? 지난 8일 저녁 7시, 중구 백년어서원에서 열린 원양희 시인의 첫 시집 ‘사십계단, 울먹’(전망)의 북토크 열기가 뜨거웠다.
“솜씨를 감춘 채 세상을 응시”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원양희 시인은 2016년 ‘시와정신’으로 등단한 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이번 시집을 내놓았다.
부산 원도심에서 남편과 30여 년 ‘도서출판 전망’을 운영해오고, 자신은 ‘도서출판 신생’의 대표이기도 한 원 시인은 어디서든 자신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지만, 그의 시는 독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번 시집에 담긴 53편의 시편들은, 시인의 내면 깊이 자리한 유년의 이미지, 시인이 거주하고 있는 부산이라는 장소, 사회문제와 생태문제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소재들 속에서 타자에 대한 감수성과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김필남 영화 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북토크에서 원 시인은,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시를 써온 기간은 길지만 시집은 갑작스레 내게 되었다”면서 시집의 목차를 정하는 과정과 시집 제목을 ‘사십계단, 울먹’으로 하게 된 이유 등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줬다. 시인의 학창시절 습작품을 낭송하는 특별한 순서도 마련됐다.
‘눈 어두운 할머니’, ‘푸성귀만 내다 놓은 할머니’, ‘폐지를 수거해 가시던 할아버지’ 등 “시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질문에 원 시인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유년시절의 평온한 기억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답했다.
“시 ‘수제비’와 ‘쌈배추’에 ‘몰캉몰캉하게’라는 말이 나와, 시인의 몸이 통통할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는 이도 있었다. 어떤 작품에서든 바다를 들여다본다는 한 독자는 시 ‘찬란한 바다’가 “바다를 멋지게 그려냈다”며 찬사를 보냈다.
한 참석자는 “시가 좋은가 그렇지 않은가 분간도 안 될 만큼 난해한 시들도 많은 요즘, 소통이 잘 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시를 써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원 시인은 자신의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로 ‘아주 먼 옛날에 만나요’를 꼽았다. 이 시에는 어느 한 시기, 가까운 이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을 때의 심경이 녹아있다.
시간은 넌출거리는 곡선처럼 / 무한대로 우릴 데려갈 거에요 / 이제 막 드리운 햇살까지 / 동봉하려는 이 편지는 오늘부터 / 천 년 쯤 전으로 도착할지 몰라요(‘아주 먼 옛날에 만나요’ 중에서)
북토크 말미에는 참석자들이 각자의 마음을 끈 시 한 편씩을 낭송했다. 이날 낭송된 시는 ‘슬픈 눈’, ‘인큐베이팅 공원’, ‘공진’ 등이다.
원양희 시집 / 전망 / 128면 / 1만원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