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손택수 시인…책방의 추억과 책 읽는 기쁨 공유
우신구 한국도시재생학회 회장 “공공‧공적자산, 시민자산 확보돼야”
이성훈 부산학당 대표, 부산학 연구에 끼친 책방골목의 힘 역설
이해인 수녀(영상)와 손택수 시인이 11일 열린 '보수동책방골목보존포럼'에서 책방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부산 보수동책방골목에 재개발 열풍이 불면서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던 서점들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중구청과 보수동책방골목 번영회, 보수동책방골목보존위원회는 11일(토) 오후 3시, 중구 보수동 ‘우리글방’에서 30여 명의 시민들이 자리한 가운데 ‘보수동책방골목 보존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벼랑 끝에 놓인 책방골목이 오랜 세월 부산시민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경험담을 공유하고 부활, 재생을 공론화를 하기 위해 마련됐다.
우리글방 문옥희 대표는 “절박한 심정으로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포럼을 통해 전국에 마지막 남은 헌책방 거리를 지켜내기 위한 대책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허양군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회장은 “책방골목이 없어진다기보다는 점차 줄어드는 것이 문제”라며, “한때 100여 곳이었던 서점이 31곳으로 줄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 원인은 “서점 운영자의 고령화와 재건축 등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이라고 지적했다.
이날은 학생들과 함께 책방골목 보존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혜광고 김성일 교사가 포럼을 진행했다. 동주여고 학생들이 책방골목 살리기 위해 만든 단편영화가 상영됐고, 혜광고 김현빈 학생이 쓴 랩 가사를 바탕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 ‘보수동, 그 거리’도 감상했다.
영상으로 참여한 이해인 수녀는 “보수동책방골목의 존폐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 “우연히 읽은 책 한 구절이 삶의 전환점이 될 정도로 책의 힘과 선한 영향력이 대단한 만큼, 보수동책방골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게 더 노력해주시고 저도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보수동책방골목이 나의 대학이었다”는 부산 출신의 손택수 시인은 프랑스 화가 ‘모네’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모네는 프랑스 지베르니 마을에 있는 강가의 나무들이 목재업자에 의해 사라질 처지에 놓이자 강둑 위의 나무들을 사들이고, 나무들을 그리고 그려 마을이 모네의 작품과 연계된 지역 명소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구원한다”면서 “그러한 장소의 고유한 체취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절실함을 전했다.
우신구 한국도시재생학회 회장이 11일, '보수동책방골목보존포럼'에서 ‘보수동책방골목보존과 도시재생’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우신구 한국도시재생학회 회장은 “이미 지난 2013년, 보수동 책방골목에 책 보관소, 어린이 도서관, 게스트 하우스, 북카페 등 거점시설을 만들어서 책문화 타운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방골목의 보존을 위해서는 이런 역사, 문화적 자원에 우호적인 공공자산, 공적자산, 시민자산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책방골목을 사랑하는 시민, 전문가 단체 등 후원 조직을 활성화하고, 지역 내 대학과 사회적기업과도 협력하는 등 민관산학 파트너십을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포럼에 참여한 한 시민은 “이 자리가 기존의 의견을 답습하거나 탁상공론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중구청이나 부산시 뿐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까지 연계해서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내 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패널로 나선 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보수동책방골목에서 두보 한시를 강의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이제 그럴 수 없게 사정이 책방의 미래와도 직결됐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자리한 ‘부산학당’ 이성훈 대표는 “매일 눈뜨자마자 출근하고, 연간 수십 건의 강의를 하지만 연구의 결실을 맺고, 콘텐츠화 할 수 있게 해 준 장소가 바로 보수동 책방골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부산시는 지난 2019년 책방골목을 ‘부산 미래유산’으로 지정했고, 중구청도 매해 책방골목 활성화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책방 8곳이 문을 닫았고, 또다시 책방 3곳이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는 등 위태로운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부산시는 부산문화의 자존심이자 버팀목인 책방골목의 소멸을 막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