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가슴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하략)
민태원 선생은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청춘예찬’이란 수필을 통해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피 끓는 청춘임을 설파하며 청년들의 가슴에 폭풍을 일으켰다. ‘청춘예찬’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청년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세기의 명문장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청춘의 피가 심장에서 요동치고 희망과, 용기와 도전정신으로 터질듯 부풀어 있을 때 역사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고 설레는 꿈을 꿀 수있다.
우리는 흔히들 새봄(新春)이 왔다고 한다. 새 여름, 새 가을, 새 겨울이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유독 봄만은 새봄이라고 한다. 새로울 신(新)자를 풀어보면 봄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新’은 설 입(立)과 나무 목(木), 그리고 도끼 근(斤)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이다.
‘서 있는 나무에 도끼질을 한다.’는 뜻을 가진 글자가 새로울 신(新)이다. 즉, 나무를 도끼로 찍어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걸치며 튼튼한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든다는 뜻이다. 나무에 도끼질을 가할 때는 아픔이 따른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을 감내해야만 새로운 것이 탄생된다는 뜻이다.
혁신(革新)이란 말도 그렇다. 혁신은 가죽 혁(革)과 새로울 신(新)이 합쳐진 단어이니 도끼로 나무를 찍고 가죽을 벗겨내는 고통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청춘은 새봄과 같다. 청춘은 몸과 마음이 푸르고 맑고 건강해야 한다.
나이와 육신이 젊고 건강하다고 청춘이 아니다. 청춘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기에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의 사자이어야 하고 불가능의 벽에 도전하는 시지포스와 같은 신념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청춘은 이제 막 인생의 출발점에 선 시기이기에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어려움과 시련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된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은 평탄하고 안전하다. 그러나 발자국이 드문길은 거칠고 험난하여 어떤 위험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청춘의 피가 박동치는 젊은이라면, 쉬운 것을 피하고 어려운 일에 부닥치는 모험정신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자신의 청춘을 걸고 있다. 최근 9급 공무원 채용시험에는 3,700 명 모집에 190,987명이 지원하여 51.6대 1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공무원 지원은 올해도 예년과 별 다름없이 치열할 전망이다. 20만 명에 달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정년과 노후 연금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공무원이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공무원이 될 수는 없을 터.
현대의 창업주 정주영은 ‘나는 회장이기보다 돈 많은 노동자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세계 10위권에 진입시킨 신화적존재인 정주영도 언제나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걸치고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이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던 창의적 노동자였다.
물론 화이트칼라도 정신적 노동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세상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조화를 이루어야만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즐겨 하는일은 당연히 보람과 성과가 높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달란트나 관심사 보다 삶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일을 평생직으로 택하기엔 삶이 너무 건조하지 않을까. 청춘은 때때로 과감한 모험과 도전도 필요하다. 젊음은 새봄(新春)이다. 도끼로 나무를 찍는 아픔과, 대패로 가죽을 벗겨내는 극한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청춘이요,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튼튼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2월 23일 제85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