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고대의 정기를 오롯이 품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고무능골길은 그야말로 이름그대로 무릉도원같은 골짜기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산중턱즈음 편안하게 둥지를 튼 법성선원은 천상의 극락처럼 온화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우연한 기회에 찾은 법성선원은 발을 딛는 모든이에게 화평을 안겨주지만 산을 내려설 때 즈음엔 ‘이뭣고?’하는 숙제와도 같은 화두 하나씩 떠안고 내려온다. 진정한 화평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고,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인연의 시작이다.
이곳 법성선원은 부처의 염화미소와도 닯은 비구니 스님이 산을 품은 어머니처럼 큰 마음으로 방문객들을 보듬어주는 곳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보아왔던 지인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정민스님이 지키고 있다. 참선기도로 세상의 화평을 기원하고 오만가지 사연으로 속내를 풀어놓는 중생들을 위로하는 법성선원은 먼저 깨달은 세상과 자연의 이치를 오로지 기도로 치유하고 정진하는 삶으로 이끌어준다. 정갈한 산사의 음식은 언제나 행복하다. 정성이 가득한 자연요리의 맛이 예사롭지 않다. 정민스님은 내방객들에게 눈으로 마음으로 공양으로 사랑을 베푼다. 그가 불교방송에서 15년여간 전한 중생구도의 메아리가 순수하고 정결했던 이유가 선원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게 한다.
법성선원은 정민스님의 피와 땀과 30여년 수행정진의 혼이 서린 곳이다. 젊은시절 도반들과 함께 어울려 샀던 시골 야산이 기도정진 수련의 산실로 탈바꿈하기까지 아낌없이 희사하고 마음을 나눈 도반들의 힘이 컸다. 물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다 ‘공의’로운일에 쓰여지길 원한 도반들의 기부도 큰 마음이지만, 그만큼 정민스님의 정신과 가치를 존중하기에 가능했던 일일 터.
30여년전 이곳에 움막을 짓고 기도정진했던 정민스님은 처음 10여년은 대문도 없이 지냈지만 마냥 행복했다고 말한다. 수십 년 시간이 흐른 지금은 황토와 나무가 주재료인 한옥 형태 건물이 네 개 동 들어서 선원을 찾는 내방객들이 머물 수 있다 갈 공간도 생겼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자연과 동화되는 자연친화적인 사찰이다.`
정민스님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은 불자나 뜻있는 불자들의 제안에 못이겨 불사가 이루어졌지만, 최소한의 증개축이다. 기도를 위해 오막살이 생활을 시작했던 만큼 늘 초심을 잊지 않아온 정민스님은 대중회향의 소리도 외면할 수 없어 찾아오는 이들이 힐링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황토방과 소박한 게스트룸도 마련했다. 지계방, 보시방, 인욕방...대형 유리창 밖으로 산아래 펼쳐지는 맞은 편 능선이 고스란히 시선에 들어오는 게스트룸 거실엔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대형 난로도 인상적이다.
장작숯불속에서 구워낸 고구마를 먹으며 기억 저편 어린 정민스님을 만났다. 교사였던 오빠의 학교를 찾아 어머니는 갓난 아기였던 동생을 업고 가슴엔 두 세 살의 정민스님을 안고 길을 헤매던 기억, 그 무렵 어느날도 그렇게 어머니는 동생과 어린 정민스님을 안고 절에 가던 길에 어머니의 품안에서 정민스님은 “사람은 왜 태어났을까? 왜 죽어야 할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세상을 모르는 어린 아기에 불과했던 정민 스님은 어머니의 품안에서 세상의 첫 화두를 가졌다. 일반 사람들로서는 두세살의 아기가 그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도하지만 그런 화두와 고민을 가진 어릴적 기억을 생생하게 갖고있는 정민스님도 경이롭다.
이곳 무릉도원같은 법성선원에서는 많은 꿈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현대의학조차 포기했던 현직의사의 자녀의 병도 기도하며 절보시로 낳게 된 일, 기도정진하여 꿈을 이룬 사람, 시험에 합격한 사람, 각양각색 사연으로 찾아와 힐링하고 가는 사람...참 나를 찾아 기도정진하며 참선으로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승이 빗장을 걸어잠그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원 마당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정민스님 생애 최초의 화두 “이 뭣고?”는 법성선원의 상징이다. 바쁜 일상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놓치고 살아온 참 나를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구원의 화두이기도 하다.
이뭣고가 무엇일까? “‘이 뭣고’ 라는 것은 우리가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을 찾는 것입니다. 이 주인이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죠. 마음을 조용하게 쉬면서 ‘이뭣고’ 화두를 하면서 뭐를 해야되냐면 의심을 잘 해들어가야 합니다. 무슨 의심을 해야되냐 그러면 우리가 참선을 한다는 궁극적인 목적은 생사해탈입니다. 우리는 늘 죽음에서 자유롭지 않고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참선공부를 하는 것이지요.
나를 찾아 떠나는 참선의 화두, ‘이뭣고?’는 육신을 움직이고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육신안의 ‘그 무엇’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나의 몸뚱아리와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의 분리와 합체의 나를 진정 발견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정민스님은 법성선원 용맹정진 소참법문을 종종 연다. 진아를 찾기 위해 모이는 수행자들에게 용맹정진하는 법을 설파하고있다.
병으로 고통받는 대중들에게는 “급할 땐 광명진언을 하라”고 조언한다. 스님은 “늘 깨어있으라, 깨어있는 것이 화두요, 참선”이라고 깨우친다.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라는 말로 대신하는 정민스님, 만가지 모양 만가지 인생 만가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번쯤 길을 멈추고 참 나를 만나는 기회를 갖게한다. 그 시작이 ‘이뭣고?’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소재 법성선원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귀한 사료들을 보존하고 있는 법성선원은 조선 전기 유행했던 「금강경」, 「화엄경 보현행원품」, 「능엄신주: 대불정수능엄신주」, 「불설아미타경」, 「법화경 보문품」, 「관세음보살예문」 등 6개의 경전을 하나로 모아 1책으로 편집한 책 ‘육경합부’를 비롯, 표충사기, 묘법연화경(법화경 한역본), 운수단작법, 선원제전집도서, 사리불아비담론, 대광불화엄경소,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집별행록요병입사기,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등 불경과 불서와 목조여래좌상, 목조여래입상 등 불상, 아미타후불도 등을 소장하고 있다.
대담: 유순희 대표
[2022년 1월 21일 140호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