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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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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가장 큰 덕은 ‘흐름’이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다가 막히면 옆으로 돌아서라도 어디든 박차고 흐르는 물. 물은 위로도 흐른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물은 위로 줄기차게 흐른다. 땀 흘리며 일할 때도, 차를 마시며 여가를 즐길 때도, 밥을 지을 때도, 바닷가를 거닐 때도 물은 쉬지 않고 위로 흐르고 있다.

포말로, 수증기로 물은 아지랑이 되어 위로 흐른다. 신령스럽게 몸을 숨긴 채 위로 승천한 물이 다시 구름 되어 비를 뿌리며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갈 때야 우리는 비로소 장엄한 흐름을 볼 수 있다. 산속의 작은 옹달샘에서 퐁퐁 솟아난 물이 산을 타고 내려와 개울을 지나고 강을 만나 바다로 향하는 물이 그렇게 아래로만 흐른다면 물은 곧 멈추고 말 것이다.

영원한 흐름을 보장할 수 없는 그 절망적인 흐름에서 사람들은 서서히 불안할 것이다. 이 흐름이 오늘은 흐르고 내일 아침, 아니 오늘 저녁 쯤 갑자기 끊기기라도 한다면 말이다. 다행히 물은 위로도 흐른다. 그 물의 흐름이 역동적인 생명의 기운인 바람을 만든다. 바람은 숨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숨통이 끊기고 생명은 곧 정지한다.

 바람을 부르는 물처럼 우리사회도 흘러야 산다. 고이면 썩고, 썩은 물에는 격한 냄새가 진동한다. 고인 물로는 생명의 바람을 만들 수 없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흐름의 진리가 관통하고 있다. 흐르지 않는 사회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말이 흐르지 않고, 경제주체 사이를 돈이 흐르지 않고,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에 나눔의 정이 흐르지 않고,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배려가 흐르지 않고, 세대와 세대 사이에 이해와 용서가 흐르지 않고, 민족과 인종의 사이, 사이에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의 윤리가 흐르지 않는다면 온전한 행복과 번영을 기대할 수 없다.

 국가가 수립한 정책이 지자체를 통해 각 가정으로 흡수된다. 대기업에서 내려준 일감을 하청업체가 받고, 사장이나 기관장으로부터 사원에까지 수직적 구조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아래로만 흐르는 착각이 일어난다. 내가 아래로 흘려보내지 않으면 너희들은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는 고압적인‘위’와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아래’의 처지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고착화한 사고가 우리 사회의 흐름을 막고 있다.

 물의 흐름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지 않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순환하는 구조이다. 우리 사회도 순환하면서 역동하는 흐름의 본질을 유지하고자 각계각층이 노력해야 한다. 비대면 사회를 맞이해 과로로 죽음을 맞이하는 택배노동자들을 보면서 사회가 잔인할 정도로 무감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혜롭게 흐르는 유연한 물줄기를 속히 찾아야 한다.

  

[2021326일 제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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