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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방하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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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은 고대 마케도니아의 국왕으로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나 아라비아 원정 중에 33세라는 나이로 요절하였다.

이 알렉산더 대왕이 어느 날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났다.
“폐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를 정복하는 것이요.”
“그리스를 정복하면 무엇을 하실 겁니까?”
“그 다음은 소아시아를 정복하고 싶소.”
“소아시아를 정복하시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그 다음은 온 세상을 정복하고 싶소.”
“온 세상을 정복하시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
“그 다음에는 좀 쉬면서 즐겨야지요.”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왜 지금 좀 쉬면서 즐기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 알렉산더 대왕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 강하게 자신을 때리는 그 무엇을 온몸으로 맞은 것 같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다시 디오게네스에게 물었다.
“디오게네스여, 그대의 소원이 있으면 내 다 들어 주리다.”
이 말에 디오게네스는 졸음에 겨운듯 말했다.
“왕이시여, 햇살이 가리지 않도록 조금만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디오게네스의 이 말에 알렉산더는 할 말을 잃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 들리는 그 말에서 뭔가 폐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디오게네스를 굽어보며 알렉산더는 말했다.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그대가 되고 싶소.”
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디오게네스는 그 젊은 왕에게 마지막으로 큰 가르침을 선사했다.
“저는 왕만 아니면 됩니다.”

선가(禪家)에서는 방하착(放下着)이란 말을 쓴다.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무엇을 내려놓으란 말인가. 집착하는 마음들을 내려놓고 쉬어가라는가르침이다. 우리는 단 하루도 무엇인가로부터 집착하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세속에서는 출세욕, 멋진 옷, 좋은 자동차, 맛있는 음식, 대궐 같은 집, 예쁜 여자, 부자, 높은 지위 등등. 끝없는 정복의 대상들을 향해 쉼없이 달려가는 알렉산더대왕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연 우리가 내가 그렇게 추구하는 것이 온당한가.

뭔가 추구한다는 것은 필요불가능한 일이다. 추구해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그 추구하는 데에도 정도가 있다. 과하면 죄가 되고 악이 될 수도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밤은 길기만 하다. 인생의 여정에서는 가끔 내려놓고 한 걸음 쉬면서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보지 못했던 세계도 볼 수 있다. 앞으로 달려가느라 뒷사람을 보지 못하면 뒷사람의 원망은 훗날 고스란히 나의 뒷머리에 남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선가(禪家)에서는 또 조고각하(照顧脚下)란 말을 쓴다. 발밑을 잘 살펴 보라는 말이다.

[2019920일 제1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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