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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노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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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위 친지들이 하나 둘 병이나 늙음으로 세상을 떠나는 장면을 보면서도 자신의 늙음이나 죽음에는 초연하다. 영원히 살 줄 알고 늙음이나 죽음을 남의 일처럼 여기고 산다. 그러나 어쩌랴. 늙음이나 죽음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고 시시각각 찾아오고 있는것을.

거리를 다니다 보면 예전과 달리 노인들이 참 많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가 고령사회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다. 베이비부머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2025년에는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에 달해 초고령사회가 된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약 46%에 달한다고 했다. 인구변화의 속도만큼 노령층을 위한 우리 사회의 대응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산업화를 겪으면서도 은근과 끈기로 근면함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인고의 삶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반석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겠나 싶다. 노인들의 입에서 ‘늙음이 죄’라는 자조의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사람이 근본인 인본주의를 뿌리내리는 일이다. 대접은커녕 어르신들을 불필요한 물건 취급은 하지 않아야 하겠다. 병들고 외로운 노인들을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족한 사회를 이룩한다 하더라도 사람이 근본인 인본주의가 살아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인 노인은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늙음과 죽음 앞에 파괴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패배할 수 없는 존재가 노인이라는 외침이다. 노인도 존엄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노인들에게 희망을 찾아줄 수 있는 사회를만들어 가야 한다.

일하고 싶은 노인에게는 일자리를 찾아주고, 보행을 가로막는 길거리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작은 글씨로 적힌 안내표지판을 큰글씨로 보완하는 등 사회 기반시설들도 노인의 눈높이에서 변화를 주어야 한다.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 서 자존감을 찾고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때 고립과 고독, 소외된 공간에서 우울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에게 희망의 미소를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오늘의 나라를 건설한 그은혜에 보답할 차례이다. 은혜에 보답하는 일은 인간이라면 응당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고려장 풍습이 있던 고구려 때 한 정승이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 노모를 내려놓자, 노모는 “길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었다”고 말했다.

정승은 죽음 앞에서도 자식을 생각하는 노모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국법을 어기면서도 몰래 노모를 숨겨놓고 봉양했는데, 뒤에 노모의 지혜로 나라에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때로는 노인의 지혜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 큰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20181024일 제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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