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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시론

‘전범딱지’ 보다 힘을 기르는 것이 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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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였다. 당시 부산대청동 美문화원에서는 가끔 미국문학, 세계정세 등 그 방면 전문가들의 강의가 있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미 국무성 동북아 한 담당관의 강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을섬나라 근성을 가졌다고 얕보지만 한국이야말로 섬나라”라는 지적이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휴전선으로 분단되어 오갈 수 없으니까 섬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국이 섬이라는 지적은 받아들이지만 찡한 충격이었다. 해방된지 74년. 우리는 지금 이웃한 경제 대국 일본을 얼마나 깊이 알고 대처하고 있는지. 지난날 일본이 우리에게 가한 모진 식민 통치의 역사는 민족의 대 수난이었다. 식민통치의 한 시대는 지났다. 아직도 그 때의 아픔을 캐고만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세계정세는 복잡하고 일본은 여전히 강국인데 일본 기업에 ‘전범딱지’를 붙이자는 것은 코끼리 다리를 재어 보는 유아적인 발상일 뿐이다. 미래를 위한 국가 발전의 엔진파워를 높이기보다 과거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국민의 분출 하는 에너지를 국가가 잘못 유도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국민을 자극해야 할 어떤 다른 목적이 도사리고 있는 ‘전범 딱지’가 아닌지 알 수 없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소명이 있다. 나쁜 점이 있었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 받아들여야 할 좋은 점도 있다. 고난을 이겨내면 얻을 것, 배울 것이 있기 마련이다.

왜 조선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아야만 했는가. 처절한 자기반성이 뒤따라야 했다. 우리가 약했기 때문에 이웃 강국에합병 당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이기고 지는 전쟁의 역사다. 힘이 없어 당했을 뿐이다.

그 동안 철저한 연구로 일본이 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렀어야 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서글프다. 임진왜란을 피해 다닌 못난 임금 선조에게는 ‘나라’라는 개념이 없었다. ‘나라를 바로 세워야겠다’는 생각보다 ‘왕권을 유지해야겠다’가 모두였다.

7년간 전쟁으로 국토는 피폐하고 백성은 굶주리고 있어도 왕권을 유지한 선조는 전쟁 후유증이나 전쟁공훈의 평가마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선조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장군을 격하 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를 잘 만나는 것은 나라와 국민의 행운이다. 오죽하면 풍신수길이 “조선 임금은 전장에서 이기기만 하는 이순신을 왜 미워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을까.

임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은 고향 하회로 내려가 전쟁의 원인과 전황을 낱낱이 분석한 징비록(懲毖錄)을 썼다. 바람앞에 촛불 같은 조선과의 전쟁에 패한 일본은 이를 갈았다.

일본 해군은 징비록을 구해 분석하고 이순신과 거북선을 교과서로 철저히 패인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역경은 천운이 될 수도 있다. 경제가 성장하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심어져 있는 것만 해도 큰 에너지다.

그 동력을 바탕으로 국가정책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적개심과 반감을 통해서 수치는 극복할 수 없다. 우리가 월등하면 일본은 사과 요구하지 않아도 ‘평화롭게 지내자’며 스스로 다가오게 되어있다.

북한 핵이 없다면 김정은 이 트럼프를 만날 수 있을까. 미국 앞에 고개 숙이는 일본을 보라. 미래를 위해 경제, 문화, 사회, 교육, 국방 등 나라의 힘을 강력하게 기르는 것이 우선이다.


[2019325일 제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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