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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불러본 천년의 사랑

화랑 풍월주와 신녀(神女)의 이룰 수 없는 사랑

 
 
노래로 불러 본 천년의 사랑 <7> 김유신과 천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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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의 해맑은 웃음이 여름으로 이끌고 있다. 그러나 하지(夏至) 지난 마른장마는 정신마저도 오락가락하며 비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조금씩 찔끔 찔끔 내리는 비는 장마답지가 않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다워야 나라가 태평하다는 충담사의 <안민가> 구절이 새삼 생각나는 시절이다.
 
그 옛날 이 땅의 임금님들은 비가 오지 않거나, 또한 많이 오거나 할 때 가장 먼저 수라상의 반찬수를 줄이는 등 하늘을 경외하며 백성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실천하였던 것이다.
 
천수백년 전 신라 서라벌에 천관(天官)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주재한 여사제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 이인로(1152〜1220)의『파한집』, 조선 성종 때 편찬된『동국여지승람』, 조선 현종 10년(1669)에 편찬된『동경잡기』에는 천관을 기녀(妓女)로 기록하고 있다. 과연 신라 때 기녀가있었을까 강한 의문이 든다. 기녀보다는 오히려 천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여사제로 봄이 훨씬 더 개연성을 가진다고 하겠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2대 남해차 차웅은 여동생 아로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하게 했다고 한다. 신라는 신국(神國)을 표방한 나라다. 신국에는 신국만의 도가 있었을 것이다. 선덕여왕을 옹립한 후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호를 올렸다고 하는데서 보듯이 신라는 여성이라고 해서 남성과 다른 대접을 받은것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여왕을 3명이나 배출하였고, 삼산오악에 제사를 지낼 때 여성으로 주재를 하게 하였고, 또한 삼조(진흥, 진지, 진평)를 쥐락펴락 하였던 미실이라는 걸출한 여성을 배출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천관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랑을 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삼한일통의 명장이면서 태대각간으로 추앙받았던 김유신과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짧은 봄밤 단꿈과 같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분홍빛 사랑이었던 것이다.
 
화랑 풍월주를 지낸 서라벌 진골 남자인 김유신은 삼한일통의 원대한 포부를 지니며 무술연마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관과의 사랑은 잊을 수가 없었다. 문천다리를 두고 양쪽에 집이 있었던 유신과 천관은 하룻밤에도 수차례 연분홍 만남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참 풋사랑이 두 사람의 가슴을 파고들어 가쁜 숨을 내 뿜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만 두사람의 사랑이 서라벌 문천을 넘어 유신의 어머니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유신의 어머니는 “나는 이미늙었다. 오직 네가 장성하여 가문을 빛내기만 바라고 있는데, 어찌 대장부가 한 여자의 품에서 놀아나고 있는 것이냐?” 하면서 울며 꾸짖었다. 이에 유신은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천관의 집에 가지를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하늘제사 주재한 여사제 천관녀와 사랑

돌아선 유신을 향한 노래 ‘천관원사’애틋
 
 
하루는 유신이 서라벌 저자거리에서 거나하게 술을 한잔하고 말등에 올라타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깐 졸았는데 말이 그만 평소대로 천관의 집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맨발로 뛰어나와서 반갑게 맞이하는 천관이 접시꽃 마냥 화사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술에서 깬 유신은 자신의 보검으로 말의 목을 바로 내리쳐 버리고 안장도 버려둔채 가버리고 말았다. 울면서 뛰어가 보았지만 유신은 벌써 문천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불러도 불러도 유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달음에 재매정댁으로 향하고 말았다.
 
가슴이 무너져 내려 버린 천관은 울면서 다시 돌아 올 유신을 향해 눈물로 써내려간 <천관원사>를 부르고 있었다. 이로부터 천관은 식음을 전폐한 채 피눈물이 봉곳한 가슴 사이로 흘러 내를 이루고 있었다. 비록 가사는 전하지 않지만 천관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혹자는 고려속요 <가시리>가 <천관원사>일 것이라고 추단하기도 한다. <가시리>를 불러보면 다음과 같다.
 
가시리 가시리 잇고 나난(가시렵니까?)
버리고 가시리 잇고 나난(버리고 가시렵니까?)
위 증즐가 태평셩대(太平聖代)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나는 어찌 살라하고)
버리고 가시리 잇고 나난(버리고 가시렵니까?)
위 증즐가 태평셩대(太平聖代)
잡사와 두어리마나난(붙잡아 둘 일이지마는)
선하면 아니 올셰라(선하게 생각하시면 아니 오실까 두렵습니다.)
위 증즐가 태평셩대(太平聖代)
셜온님 보내옵나니 나난(서러운 임을 보내드리니)
가시는 듯 도셔 오쇼셔 나난(가시자 곧 돌아오십시오.)
위 증즐가 태평셩대(太平聖代)
-『악학궤범』(譯, 최철 · 손종흠)
 
이 노랫말이『시용향악보』에도 실렸는데『시용향악보』에는 <歸乎曲(귀호곡)>이라 하였다. 천관의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는 서라벌 하늘을 뒤덮고 천년을 이어져 오고있다. 이 노래를 들은 유신은 어머니와의 약속으로 다시는 천관의 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유신은 문천 먼발치에서 울며 노래하는 천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뒤에 유신이 그녀의 옛 집터에 절을 짓고 그의 이름을 따서 천관사(天官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유신은 자신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이 세상을 하직 한 천관의 명복을 빌어주려 했던 것 같다. 이와 같이 고려속요에는 님과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노래가 있다. 천관의 명복을 빌며 <만전춘별사>를 불러보는 것이 어떨까.
 
어름우희 댓닙자리 보와(어름 위에 댓잎자리 펴서)
님과나와 어러주글 만뎡(님(主)과 나(我)와 얼어 죽을지라도)
정(情) 둔 오늘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정둔 오늘밤 더디게 새고 있으라)
<중략>
남산애 자리보와 옥산을 벼여누어(남산에 잠자리를 표 옥산을 베고 누어)
금슈산 니블안해 샤향(麝香)각시를 안나누어(금수산 이불속에 궁노루의 향낭을 지닌 듯한 아름답고 젊은 여인을 안고 누어)
약(藥)든 가삼을 맛초압사이다.(병 든<향낭을 든> 가슴을 맞추옵니다.)
아소 님하 원대평생애 여힐살모라압새 (아소서 임이시어 여일 줄을 모르고 지냅시다.)
-『악장가사』
 
/ 박진환 (朴珍煥)
(향가문화연구원장, 부산대학교 강사)
 
[2013년 9월 27일 제45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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