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3월 29일

역사속 여성이야기

일제강점기 희롱 일본군 맞서 물리친 용감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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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사적공원 송씨할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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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충정이 어디 독립운동가들 뿐이었으랴. 우리 부산에도 비록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뛰었던 투사는 아니었을지라도 나라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독립운동가 못지않았던 소시민들도 많았다. 그중 수영구 수영동 수영사적공원 안에 모셔져있는 송씨할매도 예외가 아니다.
 
수영동의 전통시장인 팔도시장에서 서쪽을 향해 언덕으로 올라오면 수영성남문(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이 있는데, 하마비(下馬碑)를 지나 남문으로 들어가면 오른편 작은 언덕 위에 송씨할매신위를 모신 신당이 있다.
 
안내표지판에는 ‘수영고당’이라고 적혀있어 자세히 읽어보지 않으면 이곳이 송씨할매당이라는 것을 알수 없다. 아름드리 큰 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산책하기 딱 좋은 이 수영사적공원내 할매신당은 양 옆과 뒤쪽으로 돌담이 가지런히 쳐져 있고 앞쪽은 철책이 담처럼 둘러져 있어 평소에 접근이 어렵다. 제를 지낼 때를 제외하고는 신당의 문도 굳게 잠겨 있다.
 
신당 앞 작은 직사각형의 시멘트 제단에서 매년 정월대보름날 술과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데 신당앞 오래된 곰솔나무도 신목으로 여겨 여기에도 제사를 지낸다. 신당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11호 푸조나무는 마을의 당산목으로 신이 깃든 지신목이라고도 한다. 인근의 서낭당 할머니의 넋이 이 나무에 깃들어 있어 마을의 안녕을 지켜준다고 믿고 있으며 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는 일이 없다고도 한다. 나무 밑둥이 1미터정도의 높이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북쪽 것을 할아버지 남쪽 것을 할머니 나무라 하여 노부 부목이라고 부르기도.
 
오래된 당산나무는 어느 지역을 가나 할매신들이 깃들어 있는 곳이 많듯 이곳 또한 아름드리 나무마다 영험한 할머니 할아버지신들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송씨할매당’은 원래 수영고당으로 기록돼있다. 조선시대 수사가 국태민안을 위한 독신의제사를 지냈으며 이후 수영성민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토지지신의제사를 올리게 되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현재는 일제시대 왜병의 희롱을 물리친 송씨 할매의 장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당에 모시고 독신과 함께 매년 정월 보름날 수영향우회에서 주관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일명 송씨 할매당, 산정머리 할매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영사적공원 내 작은 사당에 모셔 국태민안 기원 상징

매년 정월대보름 제 올리며 마을안위와 호국충정기려
 
 
신당의 건물은 가로 3.6m, 세로 2.6m, 높이 3.0m의 크기로 팔각형 기와지붕이다. 벽체는 시멘트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이 당집은 두 칸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개의 문 가운데 오른쪽은 성주신당, 왼쪽은 병영의 대장 앞에 세우는 독기를 안치하여 군기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독신당(纛神堂)으로 일반제당과는 다르다.
 
일개 할머니에 지나지 않을 송씨라는 성의 할머니를 이곳 신당에 모신 이유는 뭘까. 이 수영고당(할매신당)안에는 ‘조국의 무궁한 번영과 마을의 안과태평(安過太平)을 빌며 조상이 남기신 이 유산을 영원히 보존해 갈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이처럼 국가안위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당에 할머니를 모신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마을에 살던 송씨라는 할머니가 어느 날 산에 나무를 하러갔다가 일본 군인들의 희롱에 분개하여 과감히 대응하여 이들을 물리치고 무사히 나무를 해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인근에서는 할머니를 강단있는 사람으로 보고 돌아가신 후 그의 장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할매당에 송씨할매를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누구하나 맞서 소리내지 못했던 때 할머니의 지조와 용감한 기개는 마을을 지키는 이상의 든든함과 자랑이 되었을 터. 비록 만세를 외치며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송씨할머니의 정신은 마을사람들에게 독립운동이상의 뿌듯함을 안겨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할매당에서는 송씨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잊지않고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낸다. 옛날에는 음력 섣달그믐날 자정에 모셨지만 근래들어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모시다가 요즘은 정월대보름날 밤 10시쯤에 모신다고한다.
 
옛날부터 모셔 오던 할머니 신위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오래되어 이 신위의 정체가 유명무실해질 즈음,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아픔이 번지는 때에 일본 군인과 대처하여 이긴 마을의 용감한 할머니가 신격화되어 옛날 할매 신격과 접맥된 신앙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해석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좌수영 수사가 있을 때부터 산신제를 지내 온 산신당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영험한 할머니 신이 깃든 산신당에 할머니를 모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옆 함께모신 독신당은『동래영지(東萊營誌)』 제전(祭典)조의 기록에 따르면 수영에서는 일년에 두 번 봄에는 경칩, 가을에는 상강에 독제(纛祭)를 지낸다고. 이곳은 마을 사람 가운데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는 가족은 미리 군신목에 와서 아들의 무사안전을 빌기도 한다.
 
삼일절 광복절마다 지자체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즈음 우리 여성들은 용감했던 ‘송씨할매’의 혼이 깃든 ‘할매당’을 찾아 일년에 한 번이라도 초한자루 태우며 그 정신을 이어감이 어떨까.
 
/사료 참고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신앙사전
 
[2014년 3월 21일 제50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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