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3월 29일

라틴아메리카 이야기

축구의 대륙 라틴아메리카 “450그램의 힘”


noname01ㅇ.jpg
 

지난 시간동안 우리는 라틴아메리카를 상징하는 도시, 커피, 설탕, 춤과 음악 등 주요 문화 키워드를 통해 여러 겹의 시공간이 겹쳐진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만났다. 자연에 순응한 공간분리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비된 원주민 도시, 인간의 혀끝을 치장해주던 작물로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종과 문화 창조에 밑거름이 되었던 설탕과 커피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만나 공존의 감성을 담고 발전한 춤과 음악......


이와 같은 지배받은 자들의 역사와 문화적 업적은‘문명’의 상징 서구에 의해 ‘미개’하고 ‘불결한 것’으로 기록되어 전해져 타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얼마나 왜곡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제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라틴아메리카인의 일상을 만나보자. 라틴아메리카 지역 그 어느 나라를 가든 동네 빈 공터는 언제나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과 어른들로 분주하다. 넉넉할 것 없는 산골동네는 축구공 하나 만으로도 고단한 현실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축구는 라틴아메리카인의 삶이며 때론 종교와도 같은 맹목적 신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라틴아메리카는 분명 축구의 대륙이라고 불릴만하다. 축구는 영국에 의해 확산되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라틴아메리카 지역으로 막대한 영국자본이 유입되었다. 영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식민지로 구축하며 영향력을 행사해 나갔다. 그리고 여가 놀이로 축구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초기 중산층의 전유물이었던 축구는 1930년대 들어 대중 스포츠로 확산되어 라틴아메리카인들의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영국인들이 축구를 보급하기 이전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이미 공놀이를 즐겼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와 아즈테카, 남아메리카의 잉카와 칩차 문명을 발전시킨 원주민들은 고무나무에서 축출한 진액으로 굴러다닐 수 있게 둥근모형을 만들어 놀이에 사용했다.


공놀이는 단순한 여가로서가 아니라 인간과 신의 한판 승부였다. 공놀이는 인간과 신이 교감하는 통로였으며 죽음이 동반된 전투였다. 패배한 팀은 자신의 생명을 신에게 바쳐야 했다. 신에게 희생된 재물은 개인적으로 굴욕이 아닌 영광이었다. 영국을 통해 현대 축구가 발전되어 전통적인 공놀이는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축구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450그램의 공 하나가 라틴아메리카 대륙전체를 들썩이게 한다. 거리 곳곳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상징하는 색으로 몸을 치장하고 북을 두드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로 촘촘하다.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한 응원단들은 장외에서 기 싸움을 벌이며 응원으로 팀의 승리를 기원한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라틴아메리카인의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축구공 하나가 영웅을 탄생시키기도 하고 불운의 주인공을 만들기도 한다. 450그램 무게의 공 하나가 대륙 전체를 들어올린다. 탄성과 분노 그리고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찬 축구경기장의 열기는 작열하는 8월의 태양보다도 뜨겁다.


축구 응원단은 관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선수와 한 몸이 되어 경기장 안팎을 장악한다. 경기 종료 후 승리한 팀은 선수와 응원단의 축제로 화려하다. 패배한 선수들의 침묵은 응원단의 격려와 희망으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는 무가가 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축구는 집단적 소속감을 형성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된다. 브라질의 삼바, 아르헨티나의 탱고, 우루과이의 가우초, 멕시코의 마리아치 그리고 콜롬비아의 살사 춤과 어우러진 라틴아메리카의‘춤추는 축구’는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나 우리를 만든다.


소수 백인중심의 엘리트 사회로 발전한 라틴아메리카대륙에서 흑인과 원주민 그리고 혼혈 메스티소 등 대다수의 라틴아메리카인들은 공 하나로 욕구를 절제하는 현명함을 익혀간다. 3백년의 식민경험으로 공고화된 소수의 번영과 다수의 빈곤을 떠안고 있는 현실에서 축구는 내일도 달릴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준다.


한편, 축구는 깨지지 않는 인종과 계층 간의 단단한 벽조차 순식간에 허물어 버린다. 아메리카대륙에서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인종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브라질, 독립 이후 피의 백인화정책 추진결과 절대 다수가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르헨티나 그리고 식민시대 남미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콜롬비아에서 여전히 편견과 배제의 대상인 흑인은 축구 경기장에서 만큼은 영웅으로 변한다.


축구는 역사적 유산이 현실의 상처로 되 물림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욕구를 절제하고 미래로 이끄는 열쇠가 된다. 또한 축구는 단순히 경기차원을 넘어 삶을 지배하는 종교와도 같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감독과 선수들은 금욕과 절제로 성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신을 불러 모아 승리를 염원한다. 승리를 기원하는 의식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든다. 흑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승리염원 의식은 주술에 가깝다. 승리도 패배도 모두 신의 뜻이다.


골을 득점한 선수나 감독은 십자성호를 가슴에 새기며 골의 영광을 신에게 돌린다. 다른지역보다도 라틴아메리카의 축구 경기에서는 이러한 광경이 쉽게 목격된다. 라틴아메리카의 축구는 변덕스럽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우승을 점치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고, 패배다 싶으면 기대 밖의 성과로 놀라움을 선사한다. 월드컵 최고의 우승후보 브라질의 실망스러웠던 경기에서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음을 되뇌어본다.


차경미 교수2.jpg

[2017120일 제8413]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