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5일

여유시론

영부인의 대기업 CEO 오찬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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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자리에 앉으면 세상 돌아가는 물정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대기업 CEO들을 초청, 비공개 오찬접대를 한 사실이 알려지자 부적절한 처사라는 언론보도는 물론 온라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집권 초부터 대통령은 기업과는 담을 쌓는 분위기를 유지해 왔다. 그때 이미 국민은 기업에 대한 대통령의 속내를 짐작했다. 그동안 대기업 총수들이 전 정권의 국정농단에 얽혀구속되는 사례가 잇달았다.

기업의 투자의욕은 줄어들었고 자영업자, 중소기업, 대기업 모두가 정부정책의 후유증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기업 환경은 더욱 어렵다. 이런 어수선한 가운데 영부인이 대기업 CEO들을 오찬에 초청한 것이 물의를 일으킨 것이다. 일선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최고경영자들은 한시가 바쁘고 분초를 나눠 써도 모자랄 판이다.

영부인은 “소외되고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얻도록 기업이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노력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점심을 함께 하면서 삼성 등 대기업 CEO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현대와 LG가 빠진 것도 그룹으로선 예삿일이 아닐 것 같다. 한 기업인은 대통령과 늘상 함께 다니니까 영부인이 마치 대통령이나 된 것 아닌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현장에서 10~20년뛴 CEO들은 각자가 그 방면의 전문가이며 초초맹장들이다. 영부인의 이 말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통령은 국민이 선택했지만 영부인은 대통령의 부인이며 내조자일 뿐이다. 이번 초청건도 남편인 대통령과 의논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미처 살피지 못한 일을 섬세한 모성적 감성으로어루만지고 다독거리는 일이 영부인의 몫이기도 하다. 사회의 소외된 그늘에서 고통 받고 있는 장애인, 여성 노동자들, 노인들, 기업 내 탁아소 현황방문 등 영부인의 격려와 도움이 필요한 곳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이런 일은 대통령의 이미지 보완도 된다. 활달하게 보이는 영부인의 성품이 아직도 보수적 색채, 유교사상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우리 사회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때 말 춤을 추었다거나 야당대표 면전에서 악수를 하지 않고 건너뛰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정당끼리는 싸우더라도 영부인이 다소곳이 야당대표와 악수를 했더라면 얼마나 돋보였을까.

인도 방문 때 대통령 전용기에 태극기를 달고 단독으로 간 일 등이 이번 대기업 CEO초청 오찬과 결코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동지였다. 망명이라는 생명의 위험속에서 힘이 되어 주고 대통령의 통치를 조언한 내조자였다. 사랑의 도시락 운동으로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존경받는 조직적 여성 운동의 지도자였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의 부정적 평가를 누그러뜨리는데 육영수 여사는 큰 역할을 했다. 사회봉사 활동으로 한국의 여인상을 부각시키며 청와대의 야당역할을 했다고 한다. 영부인은 겸손과 부드러움으로 국민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잦은 해외순방 때마다 달라지는 영부인의 패션도 여성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패션모델 출신인 미국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심플한 디자인이 멋있게 보인다. 대통령의 부인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깊이 자리 한 것은 아닌지. 비행기트랩을 내려오면서 힘차게 손 흔들고 갑자기 팔짱을 끼는 등 대통령 영부인 자리를 만끽하는 듯한 모습이 국민정서와는 거리감이 크다.

때로는 다소곳한 모습이면 어떨까.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 재벌은 혈육이 원수’라고 한 어느 정치인의 말이 떠오른다. 청와대 측근들은 대통령과 영부인에게 때때로 자리를 걸고서라도 “이번 일은 절대 안됩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와 나라사랑 정신을 가져야 한다. 대기업 CEO 오찬 초청건도 바른말 하는 측근이 없기에 빚어진 사건인 것 같다.


[2019625일 제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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