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5일

레저/여행

깨달음의 계곡 시간마저 멈춘듯한 “포브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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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지카 계곡의 아침 풍경 

부탄의 포브지카 계곡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세계적 보호종인 검은목 두루미의 겨울을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내가 갔을 땐 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지만 포브지카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그 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며칠 전 겪은 산사태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부탄의 도로 사정은 아직도 많이 열악하여 곳곳에서 개선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워낙 비탈진 산 중턱으로 난 좁은 도로이기에 공사 중에 생길 수 있는 작은 문제로도 통행이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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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지카계곡/포브지카계곡가는길에 산사태


이런 공사에 투입되는 인부들의 상당수가 인도인들이라고 한다. 인도는 아직 계급문화가 남아있어 자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부탄의 산 중턱에 움막을 치고 먹고 자며 제대로 된 장비 없이 맨 손으로 일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인 셈이다. 하루 인건비는 만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우리의 최저 시급이 7천원이 넘는데 하루 종일 그늘 없는 먼지투성이 도로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을 보자니 마음이 짠해 온다. 부탄의 행복지수에는 이들은 분명히 빠져 있을 것이다.

도로를 다니다 보면 동그란 탑이 있는데 어김없이 탑 주위를 세 바퀴 돌고 간다.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비싼 휘발유만 쓴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들에게는 나름 중요하다. 어쨌든 까닥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좁은 산길을 운전기사 도지는 단한번의 졸음 운전 없이 안전하게 운전하였으니 효염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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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크를 키우는 아주머니

 

넓은 산등성이에 수 십 마리의 야크를 풀어 키우는 아주머닌 만났다. 여기서 야크는 재산이다. 야크를 키우며 작은 천막에서 지내고 있어 행색은 남루해 보이지만 이 동네 유지인 셈이다. 나의 부탁으로 야크 한 마리를 불러 젖 짜는 모습을 보여준다. 야크젖을 팔기도 하고 치즈도 만들고 야크 털로 기념품도 만들어 판다고 한다.

바쁘게 살다가도 이 분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 질 것이다. 여행이 주는 행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지구 별 어디서 살고 있을 이름 모를 스쳐간 인연이 어느 순간 궁금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흥미롭다. 아마존에서 만났던 추장의 부인도, 아프리카에서 만난 원주민 친구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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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지카 계곡에 가기 전 강테(Gangtey) 사원을 들렸다. 검은목 두루미가 히말라야 높은 산맥을 넘어 포브지카 계곡에 도착하기 전 이 사원 위를 돌고 간다고 한다. 직접 목격하지는 못하였으나 이 곳 사람들의 불심은 그 만큼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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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저녁 공양시간이었다. 차가운 돌바닥에 앉아 밥과 국 그리고 간단한 찬을 나누기 시작했다. 통역을 맡은 린첸은 한국에서 5년 정도 살았고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계속 살지 않고 돌아온 이유를 물으니 답은 간단하다. ‘부탄이 더 잘 살기 원해서 왔습니다.’

부탄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며 느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부는 세습되고 가난은 대물림 되는 듯했다. 전 국민이 무상교육을 받지만 그런 교육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양질의 직장은 적어 보였다.

소위 말하는 인생 역전의 기회들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무상교육과 의료 혜택으로 최소한의 인간적 삶은 보장받지만 그 뿐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물론 며칠 되지도 않는 시간동안 부탄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지만 있는 동안만큼은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오늘 우리가 머무를 호텔은 시설은 가장 자연 친화적이고 만약 철새가 날아오는 때라면 더없이 좋을 곳이었다. 부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온화하여 어디를 다니더라도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다.

넓고 넓은 포브지카 계곡을 품고 있는 이곳에 있으니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계곡에 내려앉은 안개와 멀리서 간간히 보이는 소, 흐르는 냇물 그리고 햇빛으로 자연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뚜렷하게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한 폭에 그림이라는 말로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지금도 내 핸드폰 배경에 저장해 두고 늘 보며 그때를 추억한다.

검은목 두루미는 직접 볼 수 없지만 두루미 센터(Crane center)가 있어 영상도 볼 수 있고 각종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날개를 다쳐 치료중인 두루미 한 마리가 있어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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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푸 시내에 있는 불상

 

드디어 팀푸로 돌아간다. 가는 길에 다시 돌출라를 지나가게 되어 이번엔 히말라야 명봉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부푼 기대를 안고 길을 나섰지만 구름으로 볼 수 없었다. 실망도 잠시 팀푸에 가까워지니 길이 곧고 포장이 되어 차를 타고 있는게 여간 편안할 수 없다.

 지나다니는 학생들은 전통 의상을 교복으로 입고 책가방을 메고 한손에는 도시락을 든 모습이 정겨웠다. 팀푸의 중심에 들어서니 양쪽으로 늘어선 주차된 차들과 상점의 간판들로 며 칠 만에 만난 도시의 모습이 반가웠다. 부탄은 신호등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다. 하지만 경적 소리도 없다.

호텔에 짐을 풀고 한국에서 지인이 소개해준 부탄에 살고 있는 몇 안되는 한국분을 만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부탄 국가대표 여자농구팀 감독이다. 우리나라 체육협회에서 외국으로 지도자들을 보내 그 곳의 스포츠 발전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부는 세습되고 가난은 대물림 … 무상교육 받지만 역전의 기회는 열악
왕과 왕비를 진정으로 추앙하는 소박한 국민, 사는게 “행복”

 

부탄은 왕정국가이다. 왕이 있고 왕의 가족, 즉 로얄 패밀리들이 있다. 여자 농구팀에 이란성 쌍둥이 왕족이 뛰고 있었다. 부탄의 자동차에 번호판을 보면 일반 번호판과 왕족들은 구별이 된다. 왕족이 타고 온 자동차 번호판은 쉽게 그들의 출신을 짐작하게 만들어져 있다.

행복의 나라 부탄에서 로얄 패밀리로 많은 혜택과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부탄 곳곳에는 4대 국왕과 현 5대 국왕과 왕비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그것은 어떠한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 마음에서 우러나 하는 행동이다. 처음엔 공산권 국가마냥 눈에 거슬렸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 나라 왕과 왕비의 얼굴이 또렷이 기억나니 여행객에게도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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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국제공항을 배경으로 필자 

 

부탄을 떠나오던 날, 파로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은 2주 만에 집으로 가는 길이 즐겁기도 했지만, 그동안 정들었던 통역을 맡은 린첸, 가이드 린첸, 운전기사 도지와 헤어질 생각을 해서 그런지 맑고 아름다운 날씨가 더 슬프게 느껴졌다. 정든 이들을 두고 떠나는 발걸음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우연찮게 시작된, 어렴풋이 들었던 부탄이라는 나라를 여행하는 내내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사람들의 목표는 자신의 행복, 가족의 행복일 것이다. 행복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을 것이다.

건강한 신체와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는 필수가 아닐까. 그렇기에 75세 나이에 전 세계 170개국을 여행하고 있는 나는 건강하고 집안의 살림살이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는 마련해 두었으니 행복한 사람이 될 필수 조건은 갖춘 것 같다. 그러면 행복 한가 다시 되묻게 된다.

부탄은 여러면에서 강대국도 아니고 대부분의 국민들 삶이 풍요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들에게서 어떠한 부족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 만큼 불평불만이란 것이 없다. 그것이 부탄을 행복지수 1위로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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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3일 제97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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