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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컨벤션사업의 성공은 변화와 과감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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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연관 산업의 효과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마이스산업. 지식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촉진하는 지식기반 산업으로 흔히 굴뚝없는 고부가가치 친환경 산업이라고도 일컫는 MICE산업은 최근 각 지자체마다 앞다투어 관심과 지원을 쏟아 붓고 있는 미래형 산업이다.
 
마이스 산업은 기업회의, 인센티브 관광, 컨벤션, 이벤트와 박람전시회를 융합한 새로운 산업.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부가가치 유발,대외수지 적자 만회 등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부산은 바로 이러한 마이스산업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인프라를 갖춘 도시. 최근 10여년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가져온 마이스산업은 그야말로 숨은 일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중 부산의 국제회의 전시 행사기획 전문으로서는 업계 독보적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주)리컨벤션의 이봉순 대표이사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4년여간 국내외 160여회 이상 행사 실적을 쌓으며 동시에개최도시 부산 행사에 핵심역량을 집중, 부산 행사를 세계적인 행사로 만드는데 선두에 서 온 부산의 대표주자다. 그도 그럴 것이 벡스코에서 개최되는 국제종합컨벤션 국내 최다 실적을 자랑한다. 근래 개최된2012FAO국 제 심포지움, 2011세계항만총회, 제3회 WHO어린이건강과 환경국제컨퍼런스, OECD 기후변화와 수산워크샵, APEC초청 리셉션주관, UNEP지속가능한 관광프로그램 관련 아태지역컨설팅회의, 세계 물총회 전시주관,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 5만5천여명이 다녀간 제95차라이온스 부산세계대회 등 평균 수천~수 만 여명이 움직이는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왔다.
 
비전이 없으면 “체인지”하라
 
부산 마이스산업발전에 일조해 온 이봉순(52) 대표이사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 졸업후 1년여간 번역일을 했다. 어릴 때부터 글쓰는 게 꿈이었던 지라 다양한 번역업무 외에도 간간이 좋은 책을 번역하면서 창작활동의 아쉬움을 대신했다. 이후 5년간은 하이얏트 호텔에서 홍보 및 마케팅 업무를 보다가 부산항 신선대 컨테이너터미널 홍보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터내셔널 체인인 하이얏트호텔 오픈 멤버로 입사해 근무하던 시절, 이 대표의 인생에 결정적인터닝 포인트가 될 동기를 부여해준 외국인 멘토가 있었다.
 
"정기적 미팅을 위해 왔던 마케팅이사를 접하며 그로부터 경험과역량이 풍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인생이 재밌고 세상이 재미가 있는 것은 '체인지'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변화를 계획해야 한다는 거예요."
 
일하기 바빴던 당시 그 말을 듣는 순간 과연 입사 10년차가 되는 5년 후의 내가 이 호텔에서승부수를 걸만큼 비전이 있는가, 머룰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떠난다면 미리 준비를 해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 '직장이 비전을 주지 못하면 떠나야 된다'는 그의 말에서 용기를 얻었다.
 
당시 회사를 다니면서 결혼을 했고 매니지먼트까지 가려면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스스로 비전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 과감히 인생에 변화를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때마침 항만청에서 일하던 후배가 항만업계에서 마케팅 전문가를 공채한다고 말해 어떤 회사인가 보러 후배를 따라 갔다. 신선대 컨테이너 터미널이었다.
 
"인사부장을 만났고 바로 이사님을 소개받아 인터뷰를 한 후 사장님을 소개받았죠. 단순히 회사가 어떤 곳인가 보러갔다가 즉석 면접과 인터뷰가 이루어지고 사장까지만나 서류하나 안 갖고 하루만에 일사천리로 채용이 결정되었는데 참 난감했어요. 당장 입사하라고하는 거예요. 아직 회사를 그만두지도 않았는데..."
 
그러나 후임자 업무인계 등 나름 절차가 있어 어쨌든 입사는 모든 절차를 마무리한 후에 하기로 했다. 당시 신선대에서는 계장급 간부로 여성이 온다니까 말들이 많았지만 그의 실력을 간파한 임원들의 만장일치 입사결정으로 항만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후에 컨벤션 일을 하면서 항만에 관한한 전국에서 그 어떤 업체도리컨벤션 이봉순 대표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따라 올 수 없었다. 심지어 외국까지 직접 현장을 쫓아다니며 행사를 유치하고 기획하며 행사마다 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항만 일의 경험 덕분이다.
 
90년대 초반 신선대에서 일하면서 그는 홍보팀장, 해외 마케팅 팀장 겸 인터넷 팀장, 비서실장까지 1인 4역을 맡아 일하면서 많은 해외출장을 다녔다.
 
"당시 싱가폴 등 해외 업무시 많은 외국친구들을 만났는데 당시만해도 생소하던 이메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고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컨벤션에 눈을 뜨게 됐죠." 2년마다 각 나라를순회하며 열리는 세계항만총회에 대표단으로 참가하다보니 글로벌 네트워크가제대로 생기더라는 그는 회의 때마다 만나는 새로운 외국친구들이 자산이 됐다.
 
값비싼 컨테이너 플랜 장비부품에 대한 각 나라별 가격조사와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싱가폴 뉴욕파리 등 모든 외국친구들에게 일정한 폼을 만들어 보내 부품교체시기, 단가 등을 알아냈다. 이것을 장비과에 넘겨 가격협상 정보로 활용케 해 예산절감에 크게 기여했고 덩달아 승진도 잘하게 되었다고.
 
해외국제행사에서 컨벤션산업전망
 
"한번은 영국 런던에서 열렸던 국제항만협회(IAPH) 총회에 참석했는데 밤마다 열리던 만찬과 주요명소에서 식사를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알게 됐고 더불어 많은 것을 느꼈죠. 우리는 돈 쓰면서 국가브랜딩을 하는데 그들은 돈을 벌면서 하더라구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돈을 줘가며 문화를 흡수해가는것을 보고 '컨벤션'이야말로 글로벌사회 떠오르는 산업이고 점점더 그기대와 수요가 커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정보, 비즈니스, 문화를 알게 되는 엑기스이고 고감도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는 그는 "엘리자베스여왕 초청 궁정 야외가든 만찬에서 비를 맞으며 오케스트라를 듣고 불꽃을 구경하면서 컨벤션의 정수를 본 느낌이었다"며 "감동과 정서를 나누며 격조높게 교류하는 고품격 비즈니스에 반했다"고 당시의 감동을 전했다.
 
그당시 신선한 문화충격은 그에게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왔다. "그래, 바로 이런 일을 해야겠어." 새로운 욕구와 도전이 솟구쳤다. 어찌보면 그가 거쳐 온 일들은 컨벤션과 꼬리를 물고 있었다. 호텔에서도 중요한 비즈니스가 세미나였다. 먹고 자고 머물면서 쓰는경비가 매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 항만 일도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외국업체와 교류해야했고 많은 국제회의에 참가, 마케팅을 확장해야 했다.어쨌든 컨벤션 일은 도시민들이 벌어서 내는 세금보다 각 나라 사람들이 와서 쓰고 가는 돈이 훨씬부가가치가 높아 도시를 부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용기를 냈다. 9년간의 항만일을 접고 홀로서기를 선언한 이유다.
 
"정부 투자기관으로 공기업이나 마찬가지였던 신선대 터미널의 민영화가 거론되던 시점에 급여도 높았고 승진도 잘됐으며 그야말로 항만에서 잘나가고 있었는데 돌연 사표를 쓰고 나가리란 것을 아무도 생각 못했죠. 벡스코 완공 1년을 앞둔 해 사표를 낸 것은 컨벤션 시설완공후에는 이미 늦다는 생각에서였죠."
 
항만업계 일하면서 잦은 해외출장 컨벤션에 눈떠

매순간 비전앞에서 과감한 “체인지” 인생의 모토로


 
시행착오 겪으며 황무지개척
 
그러나 2001년 막상 컨벤션사업을 시작하고 보니 부산시장에는 한계가 많았다. 컨벤션 시장이 없었고 국제행사도 서울업체가 내려와서 하는 정도였다. 중앙 부처에서 관장하다보니 모두 수도권 업체들이 함께 내려와 일을 했다. PT도 서울에서 해야했고 이 역시 지방업체라는 꼬리표 때문에 경쟁을 뚫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스스로 기획하고 성공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무리하게 시작했던 게 세계 음식문화박람회였다. 외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내적으로는 실물경제 때문에 회사가 망할 뻔도 했다. 몇 달치 직원들 월급도 못줬지만 모두 견뎌주고 직원들이 용기를 줘 판로를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
 
"해외로 나가야겠다 생각한 거죠. 리더사에 해외 사업계획서를 보냈더니 런던에서 연락오기를 싱가폴에 있는 부회장을 만나보라고해서 현지에서 만났는데 여성 부회장이었어요. 2시간 동안 미팅하는동안 일에 대한 열정을 높이 샀는지 당신한테 너무 반했다. 일과 관련해서 그는 결혼을 하고 싶으나 일단 약혼부터 하자며 사업제의를 받아들였어요."
 
그 분 덕에 해외시장을 열게 했고 그것은 리컨벤션에게 큰 행운이었다. 이후 2002년부터 12년간 꾸준히 해외실적 역량을 쌓아 한국입찰에도 적극 참여 부산개최 행사를 집중 공략하며 국제행사를 따냈다. 행사도 특화했다. 항만 해양쪽 전문 기획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발휘해 큰 성과를 냈다.
 
"리더사로부터 세계적인 매뉴얼을 배웠고, 회사로서는 해외 실적을 쌓을 수있는 큰 계기가 된 터라지금도 감사하다"는 이 대표이사는 "우리나라는 조선 항만 해양물류 등 항만해양산업에 관한한 세계 상위권이고 세계적인 시장을 갖고 있어 채널만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에서 뛰었고, 해양수도 부산과 리컨벤션의 주력 이미지로 강화시켰다"다고. 이제 부산은 물론 서울여수 제주 각 도시에서 열리는 해양 관련 생사는 거의 도맡아하고 있으니 차별화를 둔 건 잘한 것 같다고 말한다.
 
해양에 관한한 국내외 많은 네크웍 정보 자산을 갖추고 있는 그는 "부산에서도 인정받고 지방도시 부산의 기업으로서도 인정받으려면 차별화에 주력하는 게 주효할 것으로 봤고 해양도시 부산의 업체야말로 서울 업체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한다.
 
이제 리컨벤션의 자체 협력업체만도 40여 개. 패밀리업체 대부분부산업체로 하고 있다. 14년 전 시작할 때만해도 장비 시스템 등 부득이 서울업체를 활용했지만, 그동안 많은 행사를 열어오면서 참여했던 부산업체의 역량도 웬만큼 커져 협력사를 차츰차츰 전환하고 있다. 지역업체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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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브랜드행사 개발주력
 
지금도 여전히 결핍부재를 느끼며 자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이대표이사. 남들과의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담금질과 경쟁의식이 필요하다며 나태해질 때마다 열악한 황무지에서 출발, 시행착오를 겪으며 힘들게 개척해온 지난날들을 떠올린다.
 
"안심할 수 없어요. 언제나 위기는 올 수 있고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죠. 변화에 맞는 혁신도 필요하구요." 인생 10년마다 변화의 화두를 던지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던 이대표이사는 질적 성장과 내실을 다지기 위해 지금도 해외시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현장을 직접 발로 뛴다.
 
그는 지금껏 대행위주였다면 이제 시장을 직접 만들고 개척하고브랜드행사를 개발, 하나씩 새로운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주력사업으로 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한편 현업 PCO중 부산개최 국제회의 최다 실적,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리컨벤션은 2013년 대한민국MICE산업대상수상, 해양수산부장관 표창, MICE우수기업 선정 부산시장 표창, 국제항만협회국제본부 표창, 세계항만협회 총회 부산시장 표창,여수세계박람회 기상청장 표창 등
을 수상한 바 있다. 
 
 
유순희 기자
[2014년 5월27일 제5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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