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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강화 교육확대⋯작지만 강한 여성기업들로 만드는데 일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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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원기업들이 작지만 강한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기술컨설팅, 판로개척, 역량강화는 물론 여성기업들이 직면한 애로사항들을 해소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

21일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산지회 제8대 회장으로 취임한 김경조 경성산업 대표는 “역대 회장님들이 가꾸어놓은 조직의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을 과제로 맡겨진 소임을 힘이 미치는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국 17개 지회와 3천여 회원사로 구성된 한국여성경제인협회는 그동안 여성기업들의 권익도모와 국내외시장개척, 기업애로해소, 기술컨설팅, 마케팅, 경영컨설팅 등을 목적으로 국가 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전국의 BI센터를 통해 청년 및 여성창업을 지원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

신임 김회장은 “부산 여성기업회원의 경우 대부분 규모가 크지않지만 비교적 경쟁이 심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고, 빠른 속도와 변화하고 있는 국내외 경제환경을 헤쳐나가는데 어려움을 겪고있어 여러 정부기관 공공단체 경제단체 등 유관기관과 힘을 합쳐 회원기업들의 체질강화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김회장은 “여성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살리고 수평적 리더십을 강화한다면 지역의 새로운 기업문화 조성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회원기업 수적 확대를 통해 위상강화는 물론 부산경제의 성장과 안정을 위해 보다 의미있는 역할수행도 가능할 것”이라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전문지식을 더욱 함양토록하는 등 세계속의 여성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견인하겠다”고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만장일치로 8대 회장에 추대된 김 신임회장은 취임과 함께 협회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만성화된 단체의 분열과 소송분쟁 등 편나누기를 지양하고 화합과 상생의 단체로 만들어가기 위해 회원을 중심으로 한 여성기업 합창단을 자비로 조성해 아름다운 화합의 하모니를 선보였다.

또한 신임 임원단 집행부가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평화의 시대 남북교류와 화해협력을 위한 통일의 첨병, 새터민 가족가운데 생계가 어렵지만 꿈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학생 3명에게 장학금 3백만원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나눔봉사도 실천했다.

교육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는 회원으로 역량강화할 수 있도록 화합을 위한 놀거리 즐길거리 교육도 확대해나가겠다는 김 신임회장은 부경대와 협약, 비즈니스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삼성증권과 협약, 여성CEO 강좌도 적극 운영해나갈 방침이다. 신입회원을 위한 여성경제인교육도 직접 이끌어나갈 계획. 여성기업의 창업부터-성장기-마케팅 등 제조업 창업주 경험을 바탕으로 기본강의를 직접 진행해갈 예정이다.

김경조 회장은 자동차·전자·항공·철도·원자력 등에 사용되는 산업계 각종 연마제를 제조, 공급하는 제조업 ‘경성산업’의 대표. 지난 1997년 3월 3일 사상구 삼락동에서 직원 1명을 데리고 창업, 2016년 강서구 녹산 여성산단으로 확장 이전해, 지금은 12명 직원에 최대매출 70~60억 규모로 키워 유지해가며 안정적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나눔실천과 먼저 주머니돈을 푸는데 인색하지 않기로 소문난 여장부 김회장은 남성기업인들로부터도 인정받고 있는 CEO. 직원 15명 1인당 6억 매출구조 100억 목표로 일하다가 세금이 감당안돼 지금은 직원 12명에 1인당 5억원의 매출구조로 낮추어 실속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회사 창립일인 3월 3일은 김회장과 각별한 의미가 있다. 김회장은 개인적으로 숫자 3을 좋아하지만 그날이 조세의 날이고 아름다운 납세자의 상을 받은 뜻있는 날이며, 아너소사이어티 사회봉사멤버 가입 33번 회원으로 기다렸다가 가입한 의미있는 순번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자가용을 10년이나 장기로 타는 검소함을 택했고, 지난해 8월에서야 드디어 새차로 교환했다.

협회발전위해 화합과 회원기업 확대 등 합창단 운영, 교육기회 확대
전주이씨 종가집 종부 일년 9~13회 제사, 가사 기업 병행한 워킹맘
국산 기술력 향상에 주력 연구매진...고급화 차별화 전략으로 성공해

김회장은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많은 사회단체 봉사활동을 하기도. 외국인 근로자 돕기, 초록우산, 부산구치소교정위원회, 수영구장학재단 등의 활동을 통해 아름다운 나눔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그동안 김회장은 여성벤처기업 부산경남지회 초대 지회장(2006~2010년 )과 ㈔ 부 산 벤 처 기 업 협 회 회 장(2011~2018년)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과 부산경제진흥원 이사, 부산과학관 이사, 부산지방법원 조정위원회 부회장 등 40여 개의 직책을 두루 수행하고 있다.

부산울산벤처협회 회장 8년여 역임하면서 투명한 운영으로 벤처타운을 성공적으로 준공, 전국최초 회원의 힘으로 설립한 기념비적인 사업을 성과를 만들어낸 주역이기도. 산업계 표면연마제 제조회사를 시작하게 된 경위는 남편 친척중 한분이 이러한 분야 종사하고 있었고 지인이 퇴직 후 해보라고 권유하기도해서 우연찮게 시작한 사업이다.

친정 부친이 과거 엔지니어로 철공 제조업(PNA)을 직접 경영, 어릴 때부터 아버지 공장에 나가 따라다니며 선반·밀링 기계 등이 있는 공장에서 놀이터삼아 놀아 사업 아이템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고.

IMF(국제통화기금) 경제한파로 창업열기가 꽁꽁 얼어붙은 1997년, 남자도 어렵다는 제조업 분야에서 불혹을 갓 넘긴 전업주부가 직접 창업해 여성기업으로서 온갖 수모와 경제적 한파를 견뎌내 회사를 든든한 반석에 올려놓은 입지적인 경영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손에 물한방울 안 묻혔을 것 같은 고운 모습에 두 아들의 어머니이자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종부(宗婦)이기도 한 그는 일년에 종갓집 종부(宗婦)로 손수 장을 보고 상을 차려 1년에 13차례 제사사도 꼼꼼히 챙겨왔다. 한때 어려운 경제상황 탓에 1998년 6월 회사를 폐업하려고도 했으나 곧 바로 남편이 퇴직하는 바람에 계속 사업을 하라는 계시로 여겨 이를 물고 사업을 이어갔다고.

김회장은 기업현장에서 또는 관련기관에서조차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녹록치 않아 더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1990년대 후반에만 해도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별로 없던 때라 거래처에서는 저를 동물원 원숭이 쳐다보듯 하기도 했지요. 여성은 유통, 보험, 교육 등 특정 분야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있어 거래처 경비원에게 보험사 직원이나 잡상인으로 취급 받기 일쑤였다.”고.

이렇게 일을 하면서도 주경야독도 멈추지 않았다. 기업경영전 정수사 자폐아 봉사를 나갔다가 먹는 건 많이 들어오는데 라이센스있는 돌봄봉사자는 없어 유치원 경영을 목표로 유아교육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소규모 창업의 창업의 경우 3년안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지요. ‘맨땅에 헤딩’이 힘들다면 관련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

저는 창업 후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팔려야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는 생각에 대학원에서 마케팅(경영학석사)을 공부했고 여성기업은 약하다는 편견을 깨려고 박사 공부를 하면서 관련 논문을 쓰기도 했지요.” 무슨일이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온 김회장은 힘들 때마다 매일 3,000배를 올리며 생각을 바로 잡고 더욱 겸손하고자 노력했다.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컸다. 거래처에서 계약을 성사시킬 때면 속상했던 기억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는 김회장은 주경야독하며 기업경영과 배움도 멈추지 않았다. “여성 사업가들에게 주어진 일과 가사의 양립문제는 숙명과 같았다”는 김회장은 “요즘 일하는 엄마, 워킹맘이 대센데 ‘워킹맘’은 우아한 표현이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즉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 등은 여성의 경제활동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이자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 탄력근무제, 재택근무, 아이 돌봄 서비스 등 각종 지원책이 있지만 실효성 부분은 사회가 더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공감대 확산을 위해 여성들의 경제활동 범위도 더 넓어져야 한다”며 “서비스 업종, 카페 창업 등 한정된 범위만 고집하지 말고 제조업 등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도전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20여년 넘짓 김회장은 해외 장기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직접 실무를 챙기고 거래처 관리를 하는 현역으로 손에서 일을 놓은 적이 없다.

일본 등 전세계 전시를 관람하며 시장을 구상하고 동종업계 차별화 전략을 통해 평생 먹거리를 만들어냈다. 산업재 치열한 경쟁속에 고급화 차별화 전략은 주효해 전량 독입수입에 의존하던 산업재 표면처리분야 국산화에 성공, 국내기술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다.

앞으로도 기업 본연의 일에 충실하면서 기업 이윤을 작은 사회 환원으로 이어가는 봉사활동과 더불어 기업도 내수시장에 집중해, 안정적인 기업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한편 미국, 일본,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수출비중도 7~8% 수준으로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순희 기자

[2019123일 제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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