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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목숨걸고 지킨 나라 통일되는 것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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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쳐서 지켜낸 우리나라가 아닙니까? 독립과 성장은 이루었지만 이제 남북한이 통일되는 것만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어요.”
 
국내 몇 되지 않는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90) 애국지사. 26일경남 통영시에서 열린 제15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아흔의 나이에 또렷한 정신력으로 광복70년 특별세션 토크 무대에 오른 그는 80년여 전의 세월을 더듬어 14세 어린나이에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1990년에야 겨우 업적과 활동을재조명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지만 그는 나라 독립을 위해 남녀가릴 것 없이 당연히 해야 했던 일로 기억한다.
 
“1939년 4월 열 네 살 어린 나이에 중국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일본군의 정보수집과 일본군 중 한국인 사병에 대한 초모(적지에서 인원을 모집하는 말), 그리고 연극 무용 등을 통한 대원의 위안 사업에 종사했지요.”
 
3대가 애국지사 가족
 
오희옥 여사는 1905년 을사늑약이후 국권회복의 일념으로 의병항쟁 활동을 한 경기 용인 의병장 출신 할아버지 오인수, 서로군정서 별동대장과 경비대장으로 활동, 독립장을 받은 아버지 오광선,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하여 맹활동해 애족장을 받은 어머니 정현숙,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광복군 참령으로 복무한 형부 신송식과 함께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와 한국광복군 제3지대 대원으로 활동, 애족장을 받은 언니 오희영까지 온가족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지사 가족이다.
 
오희옥 여사는 “3대가 독립운동을 했던 집안이었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하는 일을 자연히 따라하게 됐다”고 회고한다. “오직 나라를 찾기 위한 일념으로 도왔다”는 그는 여장군 같았던 어머니는 광복군의 어머니라고 호칭할 만큼 열성적이었다”며 “건장한 체격에 당시 여성으로서는 키도 컸었고 하루에 열두 가마씩 독립군의 밥을 하고, 뒷바라지를 하셨지요.”
 
중국 광동 유주 등지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원으로 광복군 활동을 하며 직접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고. 특히 어린 오여사의 역할은 젊은 청년들과 함께 가도 선전, 중국 사람들에게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선전활동, 군자금 모금 등 정보수집과 편지 전달과 같은 긴밀한 역할을 맡았다.
 
정보수집 문서 전달 선전활동
 
오여사가 활동했던 중국 유주 등지의 경우 비교적 일본군으로부터 안전했지만 “비밀리에 전방으로 가서 편지 같은 것을 전달할 땐 가슴이 조마조마했고, 간혹 편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몰래 도로 숨어들어오기도 했는데 그 때가 제일 속상했다”고 회고한다.
 
당시 일본군은 앞으로만 전진했기 때문에 후방 부근에는 일본 사람 주둔이 적어 덜 위험했으나 학생복을 입고 위장, 편지를 전달하러 다녔다고 말한다. “우리 아버지도 김구 선생께서 비밀공작, 왜놈의 높은 놈들이 오면 암살하라고 시켰어요. 남경에 있을 때 아버지와 함께 북경에 갔었는데 그일이 실패해 일본 앞잡이들에게 들켜서 아버지가 투옥 당하게 됐어요. 그래서 중일 전쟁 때 헤어져 10년 후, 해방이 되어서 겨우 아버지를 만났는데 매우 고생하고 힘들게 살았지요.”
 
연합군의 지원과 도움으로 일본이 쉽게 투항하면서 독립을 맞았지만 우리의 힘으로 직접 물리치 못해 아쉬웠다는 오여사. 그는 중국에 광복군이 생기기 전에는 중국군에 들어가 일본군과 맞서 싸운 사람들도 많았고, 광복군 결성 후 우리 군의 조직과 전력도 더욱 단단해지면서 전쟁 준비를 했는데 일본이 투항해 한편으로는 아쉽고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이 많아 안타깝다”며 “이제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이웃 일본이 얕보지 못하도록 분단된 남북이 하루빨리 통일되어 강한 나라를 만들고, 우리 후대들도 항상 강한 정신으로 통일한국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기도 용인 출신의 오여사는 광복 후 1954년 수원 매산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1991년 서울 홍제동 고은초등학교에서 평교사로 정년 퇴임했다.

유순희 기자
[2015826일 제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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