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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학

소리없이 찾아오는 봄 속에 ‘회운’의 밝은 기운 넘실

주역으로 풀어보는 신월령가>
 
올 계사년 입춘 설(구정)전에‘회운’ … 일양시생 양기 태동
인생의 봄‘회춘’, ‘정반합일’ ‘고진감래’ 철학적용어로 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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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소리
 
양력으로 1월 30일까지가 음력으로 동짓달이다. 이 동지달을 주역의 12개월에 배대하면 지뢰복
(地雷復) 괘가 된다. 이 괘는 위에 순음들이고, 맨 밑에 양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일양시생(一陽始生)이라 한다. 일양이란, 양기운이 이미 저 땅속 깊숙이 태동하고 있음을 말한다.
 
양이란, 봄기운을 말하는 것이므로 회춘이 되고 있음을 뜻한다. 봄을 맞이하는 자세를 지뢰복괘의 괘상에서는 이렇게 적어 놓고 있다. “동짓날에는 국경의 관문을 걸어 잠그고 장사꾼들도 출입을 못하게하며, 임금님도 지방을 순시하지 않는다”라고 되어있다.
 
이만큼 동짓날과 동짓달을 맞이하는 자세는 진지했고 정성이 깊었던 것이다. 그것은 왜일까. 아마도 일양(一陽)의 태동과 잉태를 경외(敬畏)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많은 초목들은 혹한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잎새를 떨어뜨리고 나목이 된 맨몸으로 혹한에 노출되어 있다.
 
잎이 달려 있으면 추위와 싸울 수가 없고, 또 거추장스러워서 탈엽과 낙엽으로 견뎌내는 것이다. 우리사람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옷을 두텁게 입고 또 껴입으며 덧입는다. 그리고 짐승들은 속털을 돋우고 파충류들은 땅속 깊이 숨어서 지낸다. 초목이나 짐승,그리고 우리 사람은 철에 맞는 삶을 경영한다.
 
올해는 특이하게도 음력 설 전에 입춘(立春)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2월 4일이 입춘이고, 설날이 그 월 10일이다. 입춘이 되면 정식으로 한해가 바뀌고 계사년이 되는 것이다. 입춘일이 되면 입춘방을 써서 기둥이나 곳간 문에 붙이며 또 대문간에도 붙인다. 그만큼 입춘, 봄이 돌아옴을 환대하고 예찬하며 락희해 한다. 그것은 겨울의 추위에 시달리고 힘들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봄이 돌아오는 것을 ‘회운’이라 하고 또 다른 말로 ‘회춘’이라고도 한다. 가을은 가는 운이요,봄은 오는 운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노인이 젊어 보일 때 회춘했다고 예찬한다. 봄의 회운은 1년4계절로 윤회하지만 인생의 회춘은 단 한번 뿐이다. 그러나 회운은 무시로 찾아오기도 하고 또 물러가기도 한다.그래서 운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를 두고 불운(不運)한 사람이라고 하고, 또 운을 만나지 못한 사람을 두고 불우(不遇)한 자라고 한다. 때문에 지자는 운을 만나기 위해서인내하고 감내하며 세월을 보내면서 초연하고 유유자적하게 지낸다.
 
운이나 복이 없는 사람은 “가을도 봄이로다.” 하면서 한탄하게 된다. 반면 운과 복이 있는 사람은 “시절인연이 도래했다”라고 하면서 즐거워한다. 봄이 가장 민감하게 감지되는 크리스톨은 바로 연못가 물기가 있는곳이다. 가을이 가장 민감한 것은 오동나무 잎새이다. 그런가 하면복이 가장 잘 닿는 것은 부지런함이요, 운이 가장 잘 만나는 것은 부단한 노력과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래서 “참는 것이 덕이 된다”라는 고사도 있다. 옛날 주나라의 국사가 된 강태공은 80평생을 은둔과 낚시질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만년의 행운을 만나게 되어 영화를누리게 된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늦복 터질까봐 죽고 싶어도 못 죽겠다”고 했다. 인생의 봄이란, 언제 올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구름에 비들어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는 속담도 행운이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는 것이라는 말이다.
 
봄이 소리 없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어디서 오고 있을까. 저 남쪽에서 차츰차츰 북상해 오고 있다. 봄을 가장 우아하게 점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매화나무이다. 그래서 “한 가지에 꽃이 피니 천하가 봄이로다”라는 시구가 있다. 또 이런 시구도 있다. “봄을 찾아서 모름지기 동쪽으로 가지 말라. 서쪽 동산에 차가운 매화가 이미 눈을 부수고 피었도다.” 소리 없이 찾아온 봄은 벌써 매화를 터뜨리고 있다는데서 천하에는 온기가 흐르고 있었음을 느끼는 것이다.
 
돌에 붙어서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던 ‘석창포’ 타래가 파리한 기색이 가시고 감윤한 기미가 오른다. 그리고 곁에서 지켜보던 ‘버들강아지’ 눈도 두꺼비 눈덩처럼 볼록하게 부어오르고 있다. 이렇게 봄기운이 여기저기, 군데군데에 점지되고 있다. 봄이 점지하는 손 놀림도 분주해 지고 있
다. 점지할 종류가 자꾸 불어나기 때문이리라.
 
사람도 운이 돌아오면 바빠진다. 손대야 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회춘과 운이란, 생명체를 역동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나무에 수기가 오르듯이 인생에는 양의 기운이, 즉 양기가 오르는 것이 이 봄의 진면목이다. “무슨 봄, 무슨 봄이 좋다고 하지만 인생 봄, 청춘만큼 좋은 게 없다”라는 고시의 구절이 자꾸만 되뇌어지고 곱씹어진다.
 
사계절의 봄, 인생의 봄. 정말 좋고좋다. 봄을 좋게 느끼는 것은 차가운 겨울에 당해본 그 매운 맛 때문이지요. 인생의 봄이란, 청춘시절에는 봄이 그렇게 좋은 줄을 모른다. 그러다가 노쇠기에 들어서 회춘됨을 느낄 때 참으로 ‘청춘이 좋은 것이로다’라고 모름지기 느끼게되는 것이다. 이것은 심하게 궁핍한 가운데 재운이 들면 좋은 줄을 절실히 느끼는 거와도 똑같은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정반합일(正反合一)’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게된다.
 
그래서 계절의 봄이란, 정반합일인 것이며 인생에 있어서 봄도‘고진감래’라는 철학적 용어로 압
축되어진다. 고(苦)가 겨울이라면,감(甘)이 봄이다. 냉혹한 겨울이 봄을 잉태하고 춥듯이, 고도 감을 잉태하고 진행되는 것이다. 공초 오상순 시인의 첫날밤이라는 시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밤은 새벽을 배고 침침이 깊어간다” ‘잉태하다, 배다’하는 구절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비나 보리가 결실을 예고하는 알맹이를 밴다. 사람도, 일반아녀자도 나라를 세우고 천하를 바로잡을 위대한 인물을 잉태한다.그것은 한 대(代)가 바뀌면 새로운 가운과 행운이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이렇게 혹한이 지속되고 많은 눈이 내려서 아직도 응달에는 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지만 봄은 그 속이나 그 밑에 이미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천신만고’를 경험하거나 겪게 된다. 그래서 맹자는 이런 말씀을 남겼다.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책임을 지우기 위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에 고통을 주고, 그 힘줄과 뼈에 애를 먹이며, 그 신체와 피부를 배고프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해서 그 하는 바에 어긋남을 행하게 하나니 마음을 움직이고 본성을 참게해서 일찍이 그 불가능한 일을 보태게 된다.” 라고 되어있다. 만고불변의 진리라 하겠다.
 
그래서 ‘인격도야(人格陶冶)’라고 한 말도 있다. 인격이 도야되기 위해서 엄청나고 가혹하리만큼 큰 담금질이 필요하다. ‘도’자를 풀어 보면 도공이 한 덩어리의 흙을 가지고 수비를 하고 걸러서 반죽을 하고 성형을 해가지고 초벌구이와 유약을 발라서 1300도의 고온에 구워낸다. 그래야 견고하고 맛있는 그릇이 탄생되어진다.
 
그리고 ‘야’자를 풀어보면 풀무쟁이 야자이다. 풀무라는 것은 쇠덩이를 녹여서 성형을 잡아서 수
천 번을 두드리고 단련시켜 물에다 담금질을 잘해야 하나의 농기구가 탄생된다. 한없이 두들겨 맞고, 물에 담가서 쇠의 성질을 최대한 강하게 만들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도 인격이 도야되는 과정이 저렇게 지독한 고통을 통과해야 한다. “매화꽃은 차가운 고통을 지내야 향기롭다”는 말을 이 봄을 맞으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깊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봄, 운이 돌아오고 있는 산야를 바라면서 차 한 잔을 머금고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는 것이 이때의 별미가 아닐는지!
 
/글 그림
추전 김화수(소설주역저자,화가)
[2013년 1월 25일 제3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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