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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학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를 가로막은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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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망국이 비단 일본 탓만이었을까. 청나라가 서양과 일본에 대항해중화제국의 부흥을 시도하며 조선을 침략한 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이웃한 중국은 유사이래 끊임없이 군사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침탈은 물론 내정간섭을 일삼았고, 조선의 실질적인 근대화를 가로막은 나라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중국통 여성 사학자의 집념어린 역사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끈다.

‘감국대신 위안스카이’(이양자 저, 한울, 2만8천원) 즉, 청대 감국대신 원세개를 중심으로 한중근대사를 명확하게 진단한 이 책은 ‘좌절한 조선의 근대와 중국의 간섭’이라는 부제를 달고 최근 출간됐다.

현직 은퇴후 꾸준히 연구 집필활동에 매진해온 이양자 동의대 명예교수는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취득후 영남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평생 후학을 육성하는 교육자로 살아온 사학가다.

중국사학회와 한중인문학회, 중국근현대사학회, 동양사학회 평의원 등 학회 회장과 고문을 역임하며 관련 학회를 이끌어온 국내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중국통 학자다. 사학자로서의 양심과 바른 사관의 발로에서 다시 필을 들었을까.

10여년전 ‘조선후기 대외관계 연구’ 책을 내면서 원세개에 대한 내용을 다룬 바 있는 저자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대내외적 상황과 환경이 자국의 이익과 세력화를 위한 전략의 하나로 19세기와 다름없이 전개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역사를 통찰할 수 있는 방향 제시의 일환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원세개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수년 전부터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패권 경쟁이 표면화되고 있으며, 현재 미중간의 무역전쟁은 극한의 상황을 내달리고 있고, 한반도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경합은 그야말로 치열하다”며 “종신 임기를 획득한 중국의 시진핑은 마오쩌뚱 시대의 전체주의로 역진하면서 ‘중국몽’ 구호아래 중화제국의 부흥을 시도하며 한반도를 남북에 걸쳐 전통적 세력권으로 확보하려는 공세를 표면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이 교수는 “사드문제를 들고나와 우리를 홀대하고 괴롭히고, 북한을 애 다루듯 어르고 구슬리면서 대미 출구전략으로 최대한 이용하고 있고, 흔들리는 한미동맹과 일본의 대규모 경제전쟁 선포 또한 우리를 힘들게 하는때”라고 밝혔다. 이같은 상황은 마치 과거 세계정세에 어두웠던 부패한 고종과 민비정부당시와 다를 바 없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청국의 조선속국화 주도 국권침탈 및 내정간섭
일본제국주의 국권유린보다 더 큰 해악의 사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시 청나라를 불러들여 주체성 없는 외교적 선택으로 빈약하고 어리석은 약소국이 직면해야만 했던 고립무원의 망국사례를 귀감으로 삼을 것을 충고하고 있다. 임오군란 이래 갑신정변 진압의 공적으로 1885년 조선의 내정과 외교를 감시하는 요직에 오른 26세의 젊은 출세주의자 원세개는 이홍장의 속국화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집행함으로써, 조선고종 정권의 외교적 자주화와 자립적 내정시도를 사사건건 봉쇄해 조선의 국권을 유린한 장본인이다.

뿐만아니라, 조선의 수도 한성과 내지를 청 상인이 영업할 수 있게 개방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강력히 집행하고, 심지어 청국 상인의 조선 내지 밀무역까지 지원하는 파렴치한 침탈행위를 자행함으로써, 당시 세계 제국주의의 불평등조약 가운데서도 전례없는 이권 침탈의 선례를 만들기도 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원세개는 또 일본과의 경쟁을 위해 청의해관과 전신, 기선, 항운을 조선까지 연장해 독점하려한 국권침탈은 중국 양무운동의 부속으로 내정을 통한 종속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며 여기에 “차관교섭과 구미에 외교관 파견을 위한 조선 조정의 노력조차 봉쇄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무엇보다 이 책을 다시 펴내는 이유에 대해 “원세개가 집행한 청국의 조선속국화 정책은 1905년 일본의 ‘한일협상조약(을사조약)’ 이전 시기에 가장 강도 높은 외세 침략의 형태로, 이러한 사실들을 학문적으로 소상히 밝혀보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었고,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저자는 이 책에서 1882년부터 1894년 중국의 내정간섭이 극에 달한 제국주의 격랑속에서도 비록 고종정권의 소극적이지만 끈질긴 저항과 국권확립을 위한 근대화 추진과제를 시도했으나, 조선이 자주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마지막 천금같은 기회가 바로 원세개에 의해 유실되었음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그야말로 대한제국 망국의 책임이 청국과 원세개에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게 근거를 제시하는 책이다. 미, 중, 러, 일본 등 4대 열강의 패권다툼은 여전하고 열강의 고단수에 휘둘리고 있는 한반도의 위정자들이 어느 때보다 과거 역사를 거울삼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때임을 직시하게 해준다.

최근 중국 시진핑이 방미 당시 트럼프를 만나 ‘한국은 우리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한 귓속말은 치욕적이기까지한 상황에서 이 책은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을 깨우쳐준다. 다시 속국으로 전락할 것인지, 현명한 외교로 국권을 회복할 것인지 위정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유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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