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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 이이효재 선생 별세

한국 여성운동 선구자 이이효재 선생 별세.JPG
                                      고 이이효재 선생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로 우리나라 여성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했던 이이효재 선생이 4,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한국의 ‘1세대 여성운동가로 한국 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어왔다.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이이효재 선생은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수료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사회학회장, 한국가족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1980년 광주민주항쟁 때에는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시국선언으로 민주화 운동에도 앞장서 교수직에서 해직됐으나 이후 복직해 1990년 퇴임했다.

이이효재 선생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마친 후인 1977년에는 이화여대에 한국 최초의 여성학과 설치에 힘써,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을 도입했고, 한국여성민우회 초대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한국여성사회교육원 창설 등 학자이자 여성운동가로 평생을 바쳤다.

부모 성 같이 쓰기 선언, 호주제 폐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례대표제 도입, 50% 여성 할당, 차별 호봉 철폐 운동 등을 이끌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구성, 1991년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드는데도 주도적 역할을 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이이효재 선생은 또 분단이 여성과 가족, 사회 구조에 미친 영향에 천착해 분단사회학을 개척했고, 수많은 연구와 업적을 남겼다. 또한 1990년대 초 북한 방문으로 남북한 여성들의 교류의 장을 만들고 여성들이 주도하는 통일 논의의 토대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군축과 통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에도 힘썼다.

1997년 귀향한 이이효재 선생은 가족 연구에 매진하는 한편, 지역 여성들과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어 지역의 문화운동을 이끌었다.

유족으로는 딸 이희경, 동생 이은화, 이효숙, 이성숙, 올케 이부자가 있다. 장례는 여성장으로 치르며 빈소는 창원경상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박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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